brunch

전략은 고독에서 태어난다

전략기획 팀장 일기 13편

by 초연

전략기획팀장이 된 이후

나는 이상한 경험을 반복한다.


회의에서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실행 과정에서는 모든 팀과 연결되어 있고,

보고 라인에서는 가장 중심에 서 있는데—


정작 마음은 자주 ‘외딴 방’에 있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그 고독함이

유난히 크게 다가온 날이었다.


---


1. “팀장님, 이건 팀장님이 결정해주셔야죠.”


아침부터 네 건의 메시지가 동시에 들어왔다.


- 영업팀: “이 방향으로 가면 매출 흔들립니다.”

- 재무팀: “이건 비용이 과합니다, 조정이 필요합니다.”

- 생산팀: “현장은 도저히 못 따라갑니다.”

- 해외법인: “베트남 일정 다시 난항입니다.”


각자 말은 다르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팀장님이 결정해달라.”


모두가 판단을 요청하고,

모두가 결론을 기다리고,

모두가 내게 묻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의 무게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리더의 고독은

책임을 떠맡는 순간이 아니라,

책임이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순간에 온다.


---


2. 전략기획은 결국 “혼자 견디는 시간”의 연속이다


오전, 팀원 두 명이 함께 와서 말했다.


“팀장님, 이 안건은 팀장님 판단이 맞아요.

근데… 임원들이 반대하면 어떡하죠?”


이 질문에는 두 겹의 의미가 있다.


- “우리는 팀장님을 따른다.”

- “하지만 책임은 팀장님 몫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반대해도 다시 설득하면 돼.”


그 말이 팀원들에게는 든든하게 들렸겠지만,

사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조금 저릿했다.


전략기획팀장은

늘 두 세계 사이에서 버틴다.


- 데이터와 현실 사이

- 이상과 현실 사이

- 임원과 팀원 사이

- 조직과 개인 사이


그리고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매일 혼자 균형을 잡는다.


그 고독은

누가 옆에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


3. “팀장님, 너무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오후 5시 무렵,

한 팀원이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

요즘 너무 혼자 짊어지시는 것 같아요.”


나는 웃었다.


“혼자 해야 할 일들이 있어.”


그는 대답했다.


“근데 팀장님 얼굴 보면 알아요.

혼자 버티고 있다는 거.”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가슴이 덜커덕 내려앉았다.


전략기획팀장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을 한다.


그래서 고독은 선택이 아니라

직무 자체에 내장된 구조다.


하지만 그 날 팀원의 말이

약간의 온기를 남겼다.


“그래도요,

팀장님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을 때가 오늘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다.


---


4. 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퇴근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여러 개의 보고서 초안,

미뤄둔 일정표,

내일의 시나리오 파일이

모니터에 나란히 떠 있었다.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전략이란 사실 혼자 앉아 ‘판단의 고립’을 버티는 시간에서 나온다.”


누구도 대신 판단해줄 수 없고,

누구도 대신 책임질 수 없고,

누구도 대신 답을 줄 수 없다.


하지만 그 고독을 견디는 순간

비로소 조직을 이끌 판단이 만들어진다.


나는 조용히 모니터를 끄고

이 문장을 메모장에 적었다.


“전략은 고독에서 시작되지만

혼자 끝나는 일은 아니다.”


고독은 전략을 만드는 과정이고,

사람은 그 전략을 움직이는 힘이다.


---


오늘의 한 줄

리더의 고독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그 고독을 견딜 때 비로소 전략이 태어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략은 ‘언제’ 말하느냐에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