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름날이 간다



여름, 여름날에 집착했다.

서른 아홉이 시작되던 봄부터다.

노래 한 곡 탓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온 노래 한 곡.

스무살에 만났으니 곧 이십년지기가 되는 친구들과 당일치기 봄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봄나들이는 기차가 어울린다며, 기차 노선을 보며 셋의 중간 지점, 익산역을 찍었다.

셋 다 익산은 처음이었다.

낯선 도시 익산에서 익숙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고 다시 뿔뿔히 흩어진 하루.


다시 기차로 돌아와 역 앞에 주차해 둔 차에 올랐다.

20년 된 장롱 면허증을 사용한지 겨우 두 달이 된 나의 첫, 밤, 운전.

시동을 걸자 평소에 고정되어 있는 KBS1 클래식 채널의 라디오가 틀어진다.

말 소리가 많은 방송이 듣기가 싫어져 클래식 채널만 틀어 놓고 지낸지 몇 년이 됐다.

그런데 일상의 소리인 클래식이 듣기가 싫은 밤이다.


서른 아홉에서야 해 보는 첫, 밤, 운전.

두려움으로 전환되는 썰렁한 분위기가 싫어서 라디오 채널을 MBC FM으로 바꿨다.

이 시간대에 MBC FM을 켜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다.

언젠가의 나는 밤이면 무조건 이 채널을 틀어 놓고 살았었는데.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 언젠가의 내가 존재하긴 했었나 싶게 어색하다.

차가 집을 향해 정상적으로 달리기 시작하고, 약간 긴장이 풀려서 창문을 살짝 내렸다.

봄 밤 공기가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그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가 차 안을 함께 채웠다.

노랫말은 시작되지도 않았고 전주만 흐를 뿐인데 눈물이 왈콱 쏟아졌다.

운전 중에 눈물이라니.

그것도 첫 밤운전 중에.



바람 결에 실려 들려오던 무심히 중얼대던 너의 음성
지구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봐
혹시 어쩌면 아마도 설마 매일 매일 난 이런 생각에 빠져
내일이 오면 괜찮아지겠지 잠에서 깨면 잊지 말아줘 어제의 서툰 우리를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 걸까?
문득 얼만큼 걸어왔는지 돌아보니 그곳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파란 미소의 너의 얼굴 손 흔들며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내게 달려오고 있어)
그토록 내가 좋아했던 상냥한 너의 목소리 내 귓가에서
안녕 잘지냈니 인사하며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어
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내 마음 도착했는지 니가 숨쉬는 니가 꿈꾸는 매일 그안에(나는 살아 숨쉬는지)
어느새 계절은 이렇게 내 여름날과 함께 저물고 시원한 바람 그 속엔 내일 또 내일
너도 가끔 기억을 할까 (눈부시게 반짝 거리던)
푸르른 지난 여름날 우리들

유희열 '여름날'


1만장 한정판으로 2008년에 발매된 유희열의 소품집 <여름날>에 실린 곡 '여름날'.

발매 후 수도 없이 반복해 들었던 이 앨범의 모든 곡을 좋아했는데, 이 곡은 아니었다.

다른 곡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듯한, 소품집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곡이었다.

그런데 서른 아홉의 봄, 벚꽃 잎이 비처럼 내리는 밤에 듣는 이 곡이 나에게 왈콱 다가온 것이다.


이 곡을 만든 유희열은 당시 서른일곱에서 여덞 즈음이었을 것이다.

2008년 그는 여름날이 지나가고 있다고 느꼈고, 나는 여름날을 보내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그는 이런 눈부신 곡을 만들었지만, 그의 모든 곡을 좋아하면서도 이 노래만큼은 품지 못했던 이유가.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 노래를 제대로 듣게 된 건-

나의 여름날이 이 순간 지나가고 있다는 뜻일까?



여름날에 집착하며 한해를 보내다 또 다른 새해를 앞두게 됐다.

마흔이 될 예정인 내게 아직 여름날을 보내고 있는 동생들이 물었다.

"마흔 되는 소감, 어때요?"

망설이다 답했다.

"내 여름날과 이별하고 있어."


사람마다 여름날의 유효기간은 다르다.

그저 나란 사람은 서른 아홉의 어느 봄 밤, 첫 밤운전을 하다 여름날이 끝났다.

그렇게 내 여름날과 이별하며, 마흔을 마주했다.

마흔이 된 소감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