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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Oct 01. 2019

저희 육신은 저희 것이 아니옵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은 섬과 성의 사람들에 대한 소설이다.

성은 밖에서 보면 동경의 상징이자, 질시의 대상이다. ‘부르주아’의 뜻이 성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르주아는 착취의 대명사, 사람을 권력을 동경하고 질투한다. 닫힌 성은 외부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 밖으로 쫓겨난 사람은 있어도 성 안에 갇힌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섬은 다르다. 섬은 성과 달리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사방은 열려있고, 오가는 자를 환영하지도 않고, 쫓아내지도 않는다. 섬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 그래서 섬사람들은 섬을 성으로 만들기 위해 울타리를 세웠다. 하지만 섬은 성이 될 수 없다. 탈출의 속성은 가진 섬은 다른 세상으로 존재하게 됐다. 그 울타리의 세상은 천국이기도 하고, 지옥이기도 하다. 또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었다가 동시에 천국이 되기도 했다.


“저희 육신은 저희 것이 아니옵고 주님의 것이옵니다.”


섬사람 모두는 파스칼 도박의 중독자였다. 파스칼의 도박, 신을 믿으면 모든 것을 얻을 가능성이 있지만, 믿지 않았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배반과 절망, 질투와 의심은 조금이라도 베팅액을 올리려는 서로의 눈치싸움에 불과했다. 그렇게 그들은 도박의 판돈을 높여가고 있었다. 이제 끝에 다다르고 다 같이 죽는 수밖에 없다.


이 도박판에서 승자는 없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은 함정에 빠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들마저도 천국에 저당 잡힌 채 축복까지도 가불하여 이 도박판에 쏟아부었으니까. 그리고 도박판을 알아본 자는 탈출하거나 죽는다. 중독의 대가였다. 섬사람들이 건강인이 되고 싶다는 인간적인 소망과 자기 생의 욕구는,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변질되어 병자로서 자기부정의 오류를 가져왔다. 이는 건강하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다는 순서만큼 필연적이다. 그러나 열망은 건강인의 것이고, 섬사람은 이미 병자이기에, 다시 그들은 스스로 섬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어리석음의 바탕에는 믿음이 있으니, 그것은 불쌍하고 안타까운 그들을 위한 섬을 천국을 만들고자 하는 구원자의 믿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언젠가는 시련도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동상’의 다른 말이다. 섬사람들은 존재하되 살아있지 않는 동상이 되어버렸다. 동상을 세웠던 이유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동상을 세우지 않았던 이유는 더 이상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추락하고 나서야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인간, 바로 현재 우리 모습이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 자체가 갇힌 섬이자 돌무지의 성이다.


지드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니.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거나 또는 그대가 주위와 흡사하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란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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