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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28. 2019

울리지 않는 경보

피터 버그의 <딥워터 호라이즌>

피터 버그의 <딥워터 호라이즌>은 침몰하는 시추선의 단면을 잘라내 내부를 그린다.


처음에는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아류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예상은 무너졌다. 뻔했을 복선은 불안을 더했고,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은 분노를 쌓았고, 거대한 쇳덩이가 우그러들며 내는 소리는 절망을 예고했다. 2017 아카데미 시각상, 음향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하니, 영화 보는 내내 멈칫하고 긴장했던 이가 나만은 아닌듯하다.


물론, 따지려면 문제는 많다. 미국주의 한껏 담기고,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 한가닥 없이 책임 회피를 일관하며, 메시지 또한 모호하다.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 유출 사건을 그리려면 시추관이 파고 들어간 깊이만큼, 멕시코만에 퍼진 원유의 면적만큼 – 한반도보다 넓었다 – 거대하고 진지하게 다뤄져야 했다. 그러나 영화를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저 모든 비(批)의 의견을 접어두고 감독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 잊어가던 두려움을 깨워줬다. 영화 내내 그날의 바다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 세월호를, 기울어진 갑판을, 철제 계단을, 긴 복도를, 선실의 칸칸을 그려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둠을 다시 빚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304명 아니 더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움직일 수 없었던 한 학생은 아직 꿈이 있다고, 살고 싶다고 외쳤다. 꿈을 가진 동생을 잃은 언니는 앞으로 행복해지지 않겠다고 슬픈 다짐을 했다. 우리는 아직 잠겨있다.


피터 버그 감독은 세월호에 대해 알고 있을까? 세월호 역시 ‘어떤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는 것을.(1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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