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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Dec 13. 2019

배신의 역설

주제 사라마구의 『 카인 』 은 배신에 관한 서사다

주제 사라마구의 『 카인 』 은 배신에 관한 서사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세계를 9단계로 만들고 아래로 갈수록 가혹한 벌을 받는 것으로 그렸다. 지옥의 맨 밑바닥은 제9지옥, 거기서도 4개의 지역으로 나뉘는데 그중 하나가 ‘카이나’, 혈족을 배신한 자를 수용한 곳이다. 성경에서 동생을 죽인 카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배신자는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그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벌을 받는다. 이것이 배신자가 겪는 서사의 결말이다.


사라마구의 ‘카인’은 기존의 배신자 서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배신의 서사를 구축한다.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한 여호와의 오류를 스스로 증명하며, 과연 누구의 배신인지, 누가 진정 배신자인지 되묻고 있다.


사라마구의 ‘카인’은 반박한다. “여호와, 당신의 살인과 나의 살인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창조하고 자신이 방조한 인간들을 단지 당신의 질투로 말미암아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가. 그것에는 명분이 있는가. 모두 예정된 당신의 계획인가. 죽일 계획이라면 왜 만들었던가. 죽이기 위해 생명을 주었나. 그들이 당신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가.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나야말로 당신이 아닌가. 몸을 탐미하고 죽음을 방관하며 살인을 하는, 나야말로 당신이 아닌가.”


종국에 가서 카인은 자신의 씨를 가졌던 노아의 여자들을 모두 죽이고 만다. 자신이 자신을 죽여버린 셈이다. 오이디푸스의 죽음처럼 카인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자신이야말로 여호와의 자식이며 분신이었음을 증명해낸다. 바벨탑에서, 소돔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배신했음이 아니라 여호와가 그들을 배신했음을, 죽을 수 없으나 죽어버린 ‘카인’은 자신의 존재 자체로 말해낸다.


배신은 배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속죄의 서사이기도 하다. 여전히 존재하는 ‘카인’으로 인해 인류는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후, 배신과 속죄는 반복되어 브루투스의 배신이 카이사르의 로마를 구하고, 유다의 배신이 예수를 십자가에 오르게 하여 메시아의 재림을 완성한다. 배신은 죽음으로 속죄와 구원을 창조한다.


2000년 후, 다시 사라마구의 ‘카인’은 신은 죽음을 선언한 니체를 통해 살아 돌아온다. 기독교로 대표되는 인류의 정신적 재산에 대한 폐기였다. 기독교는 신의 시종의 자처하며 인류애에 대한 학대를 자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의 서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니체는 안티 크리스트에서 말했다. “나는 기독교를 단 하나의 엄청난 저주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가장 내면적인 타락이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복수 본능이라고 부른다. 기독교를 인류의 단 하나의 영원한 오점이라고 부른다.”(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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