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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Dec 16. 2019

고전을 찾는 이유

토마스 트로터 오르간 독주회

무엇이든 고전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순간 현대와 멀어진다. 현대는 고전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고전은 무해하다. 현대가 뭐라 하든 고전의 길은 달라지지 않고, 시간에 기대어 소리를 낼 뿐이다. 그것은 시간의 허탈함을 깨달은 사람이, 혹은 그것이 두려운 사람이 고전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오르간을 찾는 이유도 이와 같다.


삶의 피곤함이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굴레는 아닐 것이지만, 잠실역 통로를 걸어가며 웃고 떠들며 즐거운 사람을 볼 때마다 박탈감은 심하다. ‘저들도 나만큼이나 고될까’라는 부질없는 물음을 던지며,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라는 반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삶을 통과해 고전으로 가고 있다’며 안심한다.


대리석으로 반짝이는 롯데월드타워 1층 거리, 한없이 높은 천장 아래 구두 닿는 소리가 울린다. 콘서트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전용’이라는 말에 안심한다. 중간에 멈출 일은 없었다. 이내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가 다가왔다. 그들은 “이거 3층은 안 가나요?” 묻더니, ‘안 간다’라는 대답을 듣고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고전은 삶으로부터 멀다는 걸 한 번 더 깨닫는다.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모습을 처음으로 본다. 신에 닿기 위해 높게 세우고, 신을 찬양하기 위해 거대하게 지었다는 중세의 신앙적 건축이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쯤 크기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책하던 한윤정의 한탄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이 신의 소리를 닮기 위해서라면 허락할 수 있지 않을까? 신성의 의미가 한정된 시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이었다면, 구원을 바라는 인간의 소리가 오르간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그 영원의 소리를 담기 위해 높고 깊게 건축한 것이라면 어느 피곤한 현대의 관객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토마스 트로터의 오르간은 현대를 고전으로 보내줬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음의 향연 속에서 단선율에 익숙해진 귀는 방황했다. 오르간의 음악은 감당할 수 있는 멜로디가 아니었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시각은 사라지고 귀는 인식의 통로를 차지한다.


공연은 끝나고 부질없는 소리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다시 삶의 길. 걸어갈 그 길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조금 넓어진 느낌이다. (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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