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나다운 삶을 위한 노트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를 읽고

by 알벗


김부장들을 위한 위로와도 같은 책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니? 수식어가 아닌 나를 찾기 위한 질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얼마 전 꽤나 큰 인기를 끈 <김 부장 이야기>는 현실적인 스토리라인으로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 드라마로 등극했었다. 한국에서 대기업 근로자의 비중은 14%라고 하는데, 상위 10%대에 속하는 이들 또한 직장에서 ‘생존’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닌가 한다. 한국을 ‘소용돌이 사회’라고 분석한 작품이 있는데, 즉 하나의 중심(서울 자가, 대기업, 승진과 출세 등)으로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조금 다른 삶도, ‘나다운 삶’도 추구할 용기도 기회도 없이 소용돌이의 압력에 이끌려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사회. 그런데 상위 15%조차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기업 생활을 마치고 허무와 의미없음에 시달리며 그 후의 막막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나라. 이쯤에서 한번쯤 질문을 던져볼 일이다. 나는 어떤 인생을 욕망하는가, 그리고 원하는 나날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가.


한국에서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내며 유명 작가의 대열에 선 야마구치 슈는 내가 좋아하는 경영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후 광고대행사와 컨설팅 회사에 다닌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철학과 인문 교양을 강조하는 저술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가 오랜 기간 경영 컨설팅을 하며 얻은 지혜와 경험에 기반해 경영학을 일반인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저술한 책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다.


이 시대 굉장히 중요한 화두를 들고 나온 이 책은, 내 생각에는 저자가 긴 저술경력동안 쌓아온 시각을 담고 있는데, 즉 (일본) 자본주의의 고성장 시대는 이제 끝났으며, 저성장 시대를 대비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업과 개인이 움직여야 한다는 관점을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이다.


야마구치 슈의 책이 특히 반가운 이유는 위와 같이 저자 나름의 철학과 관점에 기반해 신선한 주장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아노미가 극단화되고 기존의 사회 규범이 무너지며 혼란스러운 사회가 펼쳐지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어디서 의미를 찾을 것이며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인생에 경영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일본 사회의 상황과 연관지어 세 가지 배경을 제시한다. 내 의견을 덧붙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성장 사회의 ‘평균 올려치기’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역시 경제적 성장의 활력이 사그러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빠르게 성장한 과거의 경험에 익숙해져 미래의 성장과 향상된 삶의 수준을 바라는 관성은 이제 비행기가 연착하는 것과 같이 ‘바닥’ 수준의 성장률 구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성장률 1%대에 진입했으며, AI 및 반도체 산업, 중공업과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적 역량이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지만, 그 수혜를 입는 것은 일부의 기업과 종사자일 것이며 앞으로 빈부 격차를 비롯한 사회 혼란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마치 빠르게 달리던 기차의 브레이크가 작동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관성은 그대로 작용하는 것처럼, ‘평균적인 삶’에 대한 기대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계속 높아져만 간다. 임금 성장률은 개선되지 않았는데 결혼에 기대되는 경제적 수준은 이제 상위 일부 계층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고, 인스타그램이나 미디어에서는 성공한 사례, 부유하고 멋진 사례가 강조되기 때문에 일종의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엔 평범한 삶의 모습이 실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AI로 예고되는 더 파괴적인 기술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는 정말 급진적인 수준의 각자도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에서 주거비 상승과 노숙자, 안전 문제의 대두, 불평등 심화와 계층화, 계급화로 인한 갈등과 고통이 이 땅의 예정된 미래로 보이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맥락에서 양극화하는 인생론과 직업론이다. 한편으로는 ‘초현실주의’라고 불러야 마땅할 경제적 생존 및 번영을 꿈꾸는 기회주의적 사상이 포착된다. 비트코인, 해외주식, 부동산 투자를 통해 탄생한 신흥 영앤리치와 파이어족이 그렇고, 창업이나 기업 활동으로 빠르게 부를 축적한 일부 젊은 세대의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에서는 이제 회사나 임금에 기대지 않고 빠르게 부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에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하는 일종의 ‘영웅서사’가 유통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나다움’의 흐름인데, 보통 ‘나다움’으로 상징되는 것은 물질적인 부와 높은 소비 수준과 연관이 깊은 취향 세계이기 때문에 부를 빠르게 확보해야하는 위와 같은 전략과 관련이 없지 않다고 하겠다. 소비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나다움’도 멋지게 추구하고 소셜미디어에 전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셋째, 개인의 활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문화 트렌드가 발굴되고 K문화가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개성’인지, 아니면 불안함 속의 자기 표현 욕구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인생을 프로젝트처럼 경영하라!


야마구치 슈는 이런 맥락에서 일반 사람들도 경영학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기업의 경영학이란 MBA와 같은 소수의 엘리트층에게 교육되는 고도의 학문으로서, 말하자면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준 기술이다. 저자는 이 학문을 평범한 사람들도 배우고 자신의 삶에 적용해 나름의 전략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게임은 시간을 나의 역량으로 바꾸는 게임이다.’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를 키워내는 것처럼, 이 책에서 한 개인은 시간을 활용해 경험치를 쌓아 자신을 키워내고, 이렇게 얻은 개인적인 능력치를 통해 삶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모델이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역량으로 요약되는 ‘인적 자본’을 쌓아야만 사회적 명망도, 부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행복한 삶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실력에 기반해야만 좋은 평판과 네트워크도 쌓을 수 있으며, 금융자본도 축적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통상적인 의미의 ‘실력’이 없이도 투자를 통해 빠르게 자산 증식이 가능한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섣불리 결과를 바라지 말고 먼저 자신의 실력부터 쌓아야 한다’는 교훈에는 공감한다.




“젊은 시기에 양질의 학습이나 의미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면, 시간자본은 지식, 경험, 기술로 구성된 인적 자본으로 전환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환경에 몸을 두느냐, 아니면 정체하거나 쇠퇴하는 환경에 머무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다.”
“시간자본을 밀도 높고 의미 있는 경험을 얻는 일에 투자하면, 그 시간은 고스란히 인적 자본으로 전환된다. 반대로 질 낮은 일에 시간을 쓰면, 투자한 시간자본은 그대로 낭비되고 인적 자본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인적자본, 사회자본, 그리고 금융자본을 쌓는다고 해서 바로 행복한 삶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인적자본과 사회자본에는 두 가지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업무에 유용한 자본 즉 회사에서의 역량이 있는가 하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자본도 있다. 취향, 문화, 개인적인 관계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업무에 유용한 실력과 네트워크는 돈을 통해 간접적으로 행복한 삶에 기여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취향이나 문화생활 영위는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즉 위 모델에서는 커리어나 투자에 올인해야만 삶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적절히 배분해 지혜롭게 활용해야만 행복한 삶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나다움'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저자가 제시한 행복한 삶의 모델은 몇가지 이유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첫째, 단일 요소에만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삶을 제시한다. 보통 극단적인 방식으로 커리어나 투자에 올인하는 것을 강조하는 부류의 담론도 있고, 완전히 나다움만을 중시하는 논의도 있는데, 야마구치 슈는 균형잡힌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라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고민하다 보면 개념적이거나 이상적으로 빠지기 쉬운데, 현실적이고 유용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김 부장’의 삶에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삶의 현장 속에서 행복과 만족감을 찾고 있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두 가지 제안이 떠오른다. 첫째는 ‘키워드의 교차점 찾기’다. 이 책을 두고 진행한 최인아 대표의 북토크에서 제시된 개념인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주요 영역의 키워드를 찾아 그 교차점에서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영전략’이 주요 키워드 중 하나라면 충분한 실력을 쌓기도, 성과를 통해 행복을 찾기도 어렵다. 그러나 ‘경영전략’이 ‘인문 교양’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연구해 자신 나름의 뾰족한 관점을 도출한다면, 차별화를 하기도 쉽고, 자신만의 작은 영역에서 명망을 쌓고 성과를 창출해나갈 수 있다. 이러한 주요 키워드 중에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나 취향, 라이프스타일 요소가 포함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웰니스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면, 해당 업계에 종사하거나 프로젝트 경험을 쌓아서 다른 키워드, 기획이나 콘텐츠, 컨설팅이나 마케팅과도 연결해나가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적당한 나다움’이다. ‘나다움’을 정체성 정치의 맥락에서 해석하면,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기보다는 오히려 좁혀버릴 가능성이 있다. 젠더나 인종과 같은 요소에 제한되는 삶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실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나를 행복하고 보람있게 하는 것들을 어떻게 연결해서 ‘적당히’ 나다운 삶의 방식으로 수입과 행복을 모두 창출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볼 일이다. 내가 앞으로 5년,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가져갈 가치는 무엇인가? 나에게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면서도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욕망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어느 정도 잘 만족시켜줘야, 행복한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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