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이 만든 우리의 얼굴
“그냥 클릭했을 뿐인데.”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어요.”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우리는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변호한다.
하지만 그 짧은 말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져 있었다.
처음 이 에세이를 시작하며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왜 우리는 타인의 하루를 이렇게 쉽게 망가뜨릴 수 있게 되었는가?”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를 쌓아올리며 질문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나는 언제부터 그들 중 하나였을까?”
클릭 하나가 죄가 되는 순간은 단순하다.
그 클릭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가 되어버릴 때다.
허위 주문, 노쇼, 별점 테러, 악성 리뷰. 댓글, 짤, 공유, 조롱. 유행, 놀이, 챌린지, 실험.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이는 이 모든 행위의 공통점은, 큰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성보다 해명을 먼저 내놓았고, 책임보다 정당화를 먼저 떠올렸다.
‘나도 그냥 한 사람일 뿐’이라는 자기 위안으로, 사라진 누군가의 얼굴을 지워버렸다.
이 시대의 폭력은 더 이상 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칼보다 카메라가 먼저 들리고, 주먹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직접 밀지 않는다.
그 대신 ‘말로 밀고’, ‘짤로 조롱하고’, ‘클릭으로 내몬다’.
그래서 폭력은 점점 손에 묻지 않지만, 그 자국은 감정 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에 더 무겁고, 익명 속에 숨어 있기에 더 집요하다.
책임은 언제나 ‘나 말고 누군가의 몫’이 되었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에요.” “그냥 퍼온 거예요.” “다들 하길래요.”
하지만 그 말의 뒤에는 항상 누군가의 흔적이 지워져 있었다.
사라진 사람, 망가진 하루, 끝내 남지 못한 목소리.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책임을 추궁하는 사회’가 아니다.
‘책임을 나누는 사회’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가해자가 아닌 사람’이 되는 법만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가해자가 되지 않는 법보다, 피해자가 사라지지 않도록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웃기 전에 잠시 멈추고, 퍼뜨리기 전에 잠시 멈추며, 사라진 자리 위에 남겨진 침묵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 물음을 다시 묻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결론은 명확하다.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이야기다.
30편 동안 우리는 누군가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그 과정에는 늘 말이 있었고, 클릭이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침묵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가벼운 죄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누군가에게 너무나 무거운 인생이 되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다음 클릭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