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음조> 한병철/ 최지수
*모든 아름다움은 모순입니다. 모순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저는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진실은 이러한 아름다움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의 음조 역시 이러한 모순입니다. 저는 제 생각의 음조를 ‘어두운 빛’ 또는 ‘어두운 영롱함’ ‘밝은 슬픔’과 같은 역설적 표현으로 부릅니다.
*저는 신이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꽃을 내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끊임없이 스스로를 생산합니다. 이런 자기 생산은 시끄럽습니다. 고요해지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고요함은 이름없음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의 주인도, 내 이름의 주인도 아닙니다. ‘나’는 내 집에 머무는 손님일 뿐입니다. 이 이름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많은 소음을 발생시킵니다. 강해지는 자아는 고요를 파괴합니다. 고요는 내가 뒤로 물러나 이름 없는 채로 있을 때, 내가 완전히 약해질 때, 또는 평화롭고 친절해질 때 존재합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기억 속에서 느리게 나타납니다. 아름다운 것은 즉각적인 자극, 찰나의 반짝임이 아니라 고요한 여운입니다.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서야 느껴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물은 그것이 지닌 향기로운 본질을 드러냅니다. 그러한 본질은 나중에서야 천천히 빛을 내뿜는, 시간이 지나며 축적된 것으로부터 나옵니다.
*신체적 접촉은 공동체의 결속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의 손을 마주 내어 잡는 것이 신뢰를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는 갈수록 자기애가 강화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리비도는 자신의 주관성에 우선적으로 투자됩니다. 우울증은 자기애적 질병입니다. 지나치게 긴장한, 병적으로 과도하게 통제된 자기참조가 우울증을 초래합니다. 자기애적이고 우울한 주체에게 세상은 없습니다. 그는 타자로부터도 벗어나 있습니다. 에로스와 우울은 서로 반대됩니다. 에로스는 우울한 주체를 그 자신으로부터 떼어내 타자에게로 끌어옵니다. 반면에 우울은 그 자신 안에서 붕괴하게 만듭니다.
*절망과 희망은 계곡과 산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망이 지닌 부정적 특성은 희망에 새겨져 있습니다. 희망하는 사람은 담대하게 행동하며 삶의 갑작스러움과 힘듦에 굴하지 않습니다. 희망에는 무언가 관조적인 것이 있습니다. 희망은 앞으로 몸을 숙여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가진 이러한 수용성은 희망을 섬세하게 만들고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갖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 희망이 맹목적이라면, 그건 희망이 환상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잘 모르는 보물, 앞으로 도래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아직-아님’은 희망이 가진 시간의 양식입니다.
<삶의 격> 페터 비에리/ 문항심
*일을 하면 타인에게 빌붙을 필요도, 감지덕지하며 살아가야 할 필요도 없다. 적어도 돈에 관한 한 인생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자립의 여부 말고도 또 있다.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하느냐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능력을 통해 자신이 무언가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포함한다. 신념, 감정, 의지, 살아가는 총체적 방법 등이 이에 들어간다. 이것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짓는 능력과 용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 다른 면에서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강함을 뜻한다. 여기서 자기 존중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마지막으로 다룰 또 다른 차원의 자아 존중은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정신적 정체성이 변화를 거듭한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다. 베른하르트 빈터에게 작가 친구가 한 명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자기가 쓴 작품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중에 판매되는 그 작품을 모조리 사들인다. ---
베른하르트는 친구에게 말한다.
“이봐, 마르틴. 과거의 자네도 역시 자네야. 그래, 자네 생각은 다를 수 있어. 자신이 썼다는 이유로 옛날의 글들이 창피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편을 가르고 부정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네가 쓴 것을 좋아해야만 하는 이유를 자네는 찾아야 하네. 자네 자신을 격려하고 스스로의 편이 되어야 해.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변화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네를 말이야. 과거의 자네가 지금과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졌던 것, 그리고 그것이 변해 지금의 생각과 느낌이 된 것, 이 모두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네. 여기에는 우리가 이해해야 할 무언가가 있어. 과거에 흐르던 삶의 가락이 현재의 가락이 된 것, 이것은 나름의 논리를 가진 내적 사건으로 인한 것이야. 불투명한 지질학적 변이 같은 것이 아니란 말일세. 이 내적 변화를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며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할 수 있다네. 인생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를 뜻한다네.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인정하는 것. 그런 다음에 세상을 향해 얼굴을 돌려 이렇게 외치는 거라네. 그래, 다 내가 했어! 아니, 더 좋은 건 이렇게 외치는 거야. 이 모든 것이 내 모습이아!”
<기쁨의 책> 로스 게이/ 김목인
*맞다, 기쁨들을 미리 쌓아두는 것은 시간적 충실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방금 대문자로 쓴 단어들은 단 굿 수프의 화장실에서 손바닥에 쓰는 근사한 글쓰기로, 간단히 말해 매일 쓴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짧은 에세이들이 매일 쓰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 그를 통해 자신의 기쁨을 목격하고, 매일 자신의 기쁨 안에 있고, 기쁨과 함께하는 연습이 되기도 하는 이런 방식의 유익함과 필요성에 대해 떠올려보고 있다. 그러려면 늘 주위를 살펴야 한다. 또 기쁨이 매일 함께할 것이기에 저장해 둘 필요가 없다는 믿음도 필요하다. 기쁨이 모자랄 일은 없다는 믿음이.
이제 이런 생각에 따라, 나는 일정표를 비우고, 온갖 공책에다 비축해 둔 기쁨들의 석판도 지워버릴까 한다.
<더 나은 나를 위한 하루 감각 사용법> 러셀 존스/ 김동규
*결론적으로 무슨 내용이든 청중을 향해 발표할 기회가 오면 반드시 감각을 언급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냄새와 소리, 무언가를 집는 장면, 또는 그들의 감정을 떠올려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 말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더욱 집중하게 된다.
*연구결과 추위를 느끼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는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다시 말해 기온이 따뜻할 때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을 추운 환경과 따뜻한 환경에 각각 노출한 다음, 초콜릿 케이크와 과일 샐러드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추운 곳에 있던 사람은 두말없이 케이크를 집어 들었지만 따뜻한 곳에 있던 사람은 과일 샐러드를 선택했다. 이어서 연구진은 시내 중심가 매장의 내부 온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의류, 신발, 보석, 고급 수제 케이크 등과 같은 고가의 사치품을 취급하는 매장일수록 실내 기온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허에 대하여> 토마스 무어/ 박미경
*포틀랜드에서 보낸 그 공허한 저녁은 내게 일반적인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 작품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무덤덤해지라고, 누군가가 나타나서 칭찬을 하든 말든 자신의 작품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머니파워> 보도 새퍼/ 박성원
*돈이 별로 없는 사람은 쇼윈도 앞에 서 있다가도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느끼면 얼른 옆으로 물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행동학자들에 따르면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아무것도 구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즉, 잠재적인 고객에게 자리를 비켜준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 상징적으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단지 돈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옆으로 물러날 때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어느 부자가 쇼핑을 하러 나갔다가 10만 유로(약 1억 4천만원)짜리 자동차가 눈에 들어왔다. 동행인이 그 차를 사라며 부추겼다. 그 부자는 “자동차에 100만 유로를 쓸 수는 없지”라고 대답했다. “100만 유로가 아니잖아. 10만 유로야”라고 동행인이 정정해 주었다. 그러자 부자는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나한테는 100만 유로야. 내가 차 값으로 10만 유로를 쓰지 않고 투자하면 10년 안에 100만 유로로 불어날 거니까.”
이처럼 부자들은 제품의 가격을 ‘부풀려서 계산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그 돈을 지출하지 않고 투자한다면 얼마가 될 것인지 계산해 본다. 금리가 1.2 퍼센트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18년이 지나면 8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돈의 힘> 클라우디아 해먼드/ 도지영
*타협 효과는 손실 회피 성향과 관련이 있다. 고급 제품은 성능은 좋지만 가격이 높고, 저가 제품은 가격 경쟁력은 있지만 질이 떨어진다는 큰 단점이 있다. 중간 가격대 제품은 품질과 가격이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다. 사람은 물건을 잴 때 장점보다 단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장점을 통해 이득을 얻기보다 단점을 피해 예상되는 손해를 줄인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 교수는 친구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친구 직업과 관련된 부탁은 삼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배수관이 고장났을 때 배관공인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당신은 친구 호의에 기대 배수관을 무료로 고쳐 달라고 부탁하겠지만 친구는 그 일로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 때문에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산자들> 장강명
*장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영이 이해한 것은 조금 더 나중이었다. 장사는, 돈을 쓰려는 사람을 섬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했다.
모바일 쿠폰을 가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가게에 왔다. 점원이 자신을 우습게 보지 않을지 의식하는 사람도 있고, 처리 시간이 오래 걸리면 쿠폰을 받기 싫어 꼼수를 부리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고작 1000원, 2000원을 아끼려고 이 수고를 들여야 하나, 자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그 쿠폰은 지금 쓸 수 없다는 안내를 받으면 누구나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멀쩡한 사람도 화를 내게 만드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화는 고스란히 점원이 뒤집어쓴다.
*펜타포트나 밸리 록 페스티벌에 다녀온 밴드들은 록 페스티벌 기대하지 말라고 푸념했다.
“가 보면 엄청 열광적이야. 우리가 노래하면 밑에서 사람들이 환장하면서 좋아해. 그런데 다음 달에 CD가 한 장이라도 더 팔리느냐 하면 아니더라고. 거기 온 사람들 대부분은 음악을 들으러 온 게 아니야. 그냥 록 페스티벌에 있는 자기 자신이 좋아서 오는 거야. 온 김에 셀카도 몇장 건지고 SNS에서 자랑도 하고. 여행 상품 같은 거야.”
<루시> 저메이카 킨케이드/ 정소영
*루이스의 괜찮은 점은 바로 자신의 준수한 용모로 상대의 관심을 끌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면으로도 관심을 끌려 하지 않았다. 남자에게 그것은 훌륭한 특성이었고 난 그 점을 바로 알아봤다.
<절제수업> 라이언 홀리데이/ 정지인
*우리에게는 지켜보는 수백만의 팬이 없다. 내면의 동기를 자극할 수백만 달러도 없다. 발전을 점검해줄 코치나 트레이너도 없다. 우리 직업에 알맞은 최적 체중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일과 삶을 더 어렵게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감독이자 주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몸 상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자기가 섭취하는 것을 스스로 감시하고, 자기 기준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진정으로 헌신하는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에게 더 엄격하다.
*모든 결과는 몸에 새겨진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매일같이 조용히 그리고 때로는 그리 조용하지 않게 우리의 존재에, 우리의 외양에, 우리의 기분에 항상 기록된다.
*부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 즉 중요한 단어가 과장되고 오용되다가 결국 아무 의미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은 허술한 사고를 보여주는 표시일 뿐 아니라 나쁜 기질을 드러내는 표시기도 하다. 우리가 말할 때 그 말은 중요한 말이어야 하고 또한 무언가를 의미해야만 한다.
*자기 절제가 우리를 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일정 부분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우리의 게으름이나 나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에 못지않게 야망으로부터, 과도함으로부터, 자신과 타인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게 굴려는 충동으로부터 구할 때도 있다.
<여름어 사전> 아침달
*야행성
야행성을 지닌 사람이 된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웃어넘기는 소리, 달리는 소리, 우산 펼치고 터는 소리,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사랑한다 말하는 소리, 걷는 소리, 세탁물 돌아가는 소리, 문 열고 닫는 소리, 음악 소리, 소리 이전의 빛과 촉각도 더욱 거세진다. 온갖 야행성인 기분으로 지내는 여름. 맥주를 끼얹고 골목의 전봇대 개수를 세며 다니는 하루하루. 한밤중의 일들, 새벽의 일들,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 자발적 야행성이 되었던 시간들이 야경처럼 지나간다. 불면증과 취기에게로까지. 그래도 이 계절에는 많은 소리가 있어서 덜 외롭다. 새벽 세 시에 깨었을 때 책 한 권을 읽었고 그 책 사진을 누군가에게 전송했을 때 답장이 바로 오는 계절.
*여름사랑단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을 좋아하는 다른 누군가와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뜨리며 좋아하던 것을 한 번 더 좋아하게 되는 이상한 반복에 빠지게 된다. 주변에는 ‘여름사랑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한꺼번에 모인 적도 없이, 단지 여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마음속에 조직된 단체이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이들 모두 겨울이면 시름시름 앓는다.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여름의 고유명사를 그리워하면서. 안부를 전할 때에도 여름에 관한 응원 메시지를 보낸곤 한다. 비교적 더위를 잘 참고,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생기 있는 풍경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사람들. 여름의 제철 음식이나 과일을 잘 챙겨먹고, 매일 보는 풍경 속에서도 여름을 사유하는 생각도. 이 모든 이들이 내게는 ‘여름사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