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남짓 되려나.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고 화면을 바라본 체 가만히 머무르는 얼마쯤의 시간이 있다. 는 그 시간을 글문을 두드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어떤 날엔 일찌감치 글문이 활짝 열려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문이 닫힐세라 초 집중 모드로 글을 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문을 두드리고 열리기를 기다린다. 10분이면 짧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3년간 글을 쓴 덕에 10분이 되었지 그전에는 하염없이 기다린 적도 참 많았다.
언제나 상상해 보는 건 마치 눈앞에 글자가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들을 주워 담듯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현실은 매번 '오늘을 뭘 쓸까?'라는 질문 앞에 선다. 1월 한 달 동안 주말도 쉬지 않고 매일 글을 쓰며 느낀 게 하나 있다. 오늘 쓸 거리에 대한 고민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직장인들이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저마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잠시 하루를 훑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좋아하는 음악과 늘 글을 쓸 때 켜두는 조명 불빛으로 은은함이 더해진 방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면 그날의 장면이 빠르게 흘러간다. 먼저 사건을 중심으로 생각을 더듬어 본 다음 하는 것은 인물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오늘 만났던 사람들이나 오늘 내가 관찰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또는 정말 스쳐 지나갔는데 인상적이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도 다시 비춰 본다.
사건과 사람까지 훑고 나면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곳은 감정이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하루 나를 이끌고 간 감정선은 무엇이었는지, 각각의 사건마다 어떤 감정 상태로 머물러 있었는지 되짚어 본다. 누군가를 만났다면 만나기 전후의 감정 변화는 어땠는지 까지도 생각해 본다. 정말 아무런 이벤트가 없이 그저 집안에만 머무른 하루였다면 그럴 땐 하루의 시간대에 따른 감정 변화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약 10분 남짓의 글문을 두드리는 시간 동안 '사건, 사람, 그리고 감정'의 3요소를 검토하다 보면 그 안에서 글감을 발견하게 된다. 더 정확히는 사건과 사람을 토대로 감정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글감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단지 그것을 글쓰기로 연결 짓는 게 아직은 어색할 뿐이다. 또는 일기 정도의 글쓰기에 최적화되어 있거나.
만약 일상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그것으로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글문 앞에 머물며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추천하고 싶다. 아침에 글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 전을 돌아보면 되니까. 언젠가 읽었던 책 속에 인상적인 표현이 떠오른다. 글쓰기 소재에 대해 고민이라면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꾸준히 쓰다 보니 이 표현의 의미를 알겠다.
결국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 낯선 시선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똑같은 하루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도 방법은 잘 모른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글을 많이 쓰면 어느 수준까지는 자연스럽게 습득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꾸준히 써보자. 그리고 쓰기 전에 잠시 오늘 하루를 보낸 나의 감정에 머물러 보자. 당신의 글문이 열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