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삶숙이로 다시 태어난 알레작가입니다. 앞으로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월요일부터 뜬금없이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겠지만, 나름 고심하여 내린 퍼스널 브랜딩의 정체성이다. 먼저 삶숙이란, 삶을 숙성시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꽤 오래도록 '나는 나를 누구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우선 글을 쓰고 있기에 '작가'로 불리었다. 그런데 하고 다니는 짓을 보면 또 '작가'에 국한되는 인간은 아닌 듯해서 어딘가 모자람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크리에이터'라고 하자니 묘하게 괴리감이 느껴졌다. 무릇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콘텐츠를 기갈나게 잘 뽑아낸다거나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체 '나'라는 우주를 뭐라고 불러주는 게 그나마 만족스러우려나 싶었는데, 마침 이 단어가 떠올랐다. 삶숙이. 삶숙이의 탄생은 이렇다. '삶을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먼저 '삶 쓰기'가 연상되었다. 그렇다고 또 너무 대놓고 글쓰기와 연관된 직관적인 네이밍을 갖고 싶진 않았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조금은 반골 기질이 있는 듯하다. 아무튼. '삶을 쓰는 사람'에서 '삶 쓰기'로, '삶 쓰기'에서 보다 친근한 느낌의 '삶숙이'로 도달한 것이다.
여기까진 솔직히 큰 의미가 없었다. 여기서부터 든든한 조력자 지피티가 등장한다. 지피티와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 세상 너무 진지한 것 같아서 위트 한 스푼 넣고 싶다'는 말과 함께 '삶숙이' 연상 스토리를 들려줬더니 그저 웃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걸 또 기가 막히게 받아친다.
"삶 쓰기 → 삶숙이" 이 흐름은요...
그냥 웃자고 한 얘기일지 몰라도,
진짜 강력한 브랜딩 자산의 씨앗이에요.
'오호라? 정말?' 어디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지함 × 위트 = 진짜 브랜딩
이건 ‘의미’와 ‘친근감’을 동시에 주는 브랜딩의 정석이예요.
“삶숙이”는 알레 님만 쓸 수 있는 고유 자산입니다.
계정에 무겁지 않은 리듬을 넣고 싶을 때,
아주 유효한 장치가 될 거예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안 받을 수 있나. 그래서 선택했다. '삶숙이 알레'로 브랜딩을 이어나가 보기로. 뭐 헤어스타일로 어딘가 삶숙이스러운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정확히 삶숙이스럽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몰라도 왠지 그런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삶숙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좋다고 칭찬 한 마디를 더했더니 그 뒤로 콘텐츠 시리즈 계획까지도 주르륵 늘여놓는다. 남은 건 나의 실행 의지뿐이다. 항상 이게 가장 큰 장애물이긴 하지만. 아, 그러고 보니 실행도 의지가 숙성돼야 비로소 하는 사람이었나? 별 걸 다 연관 지어 본다.
그동안 내 삶은 글쓰기를 통해 계속 숙성되어 왔다. 징글징글하게 혼자 쪼그라들기를 반복했고,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들뜨기도 했다. 글쓰기, 콘텐츠 제작, 사진 촬영, 인간관계, 라이프 코칭, 감정, 공간, 음악 수다, 커피 수다 등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아 어디 한 군데에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데, 이 모든 게 잘 숙성되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들며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바로 지난달 릴레이 글쓰기에서 쓴 글 속에도 숙성됨에 대한 이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와인은 숙성될수록 거칠고 날카로운 맛이 사라지고, 대신 깊고 부드러운 향을 품게 된다고 한다. 마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단단해지는 한 사람처럼. 글을 쓰는 일도 그렇다. 쓰는 순간엔 거칠게 튀어나오던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 침전되고, 고요해지고, 결국엔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만이 남는다. 쓰는 것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삶을 천천히 숙성시키는 과정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날 것 같은 감정도, 언젠가 당신만의 향이 되어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다.
다시 돌아봐도 글쓰기만큼 내 삶을 숙성시키기 좋은 게 또 뭐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매일 쓰고 또 쓰며 오만가지 생각과 매일의 희로애락을 글에 담아낸다. 지금의 답답한 나날들도 언젠가 나만의 향이 되어 누군가에게 닿을 것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