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올바른 산을 오르고 있는가?

AGI라는 하나의 목표와, 우리가 잃어버린 '지능'의 정의에 부쳐

by 알고리C


요즘 AI 업계의 소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끔 숨이 찬다. 마치 거대한 산악 등반 경기를 관람하는 기분이다. 모두가 'AGI(범용인공지능)'라는 이름의,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단 하나의 봉우리를 향해 깃발을 꽂으려 경쟁한다. 8,000미터 고지를 누가 먼저 넘었는지, 정상까지 몇 걸음이 남았는지, 그들의 들뜬 열기가 모니터 너머로도 전해져 온다.


솔직히, 그들의 열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공학자로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과도 같을 것이다.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들을 해결해 줄 완벽한 지성을 만들겠다는 숭고한 목표도 모르는 바 아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그 첫 번째가 되겠다는 야망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거대한 경주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지난 글에서 나는 '하나의 거대한 나무'가 아닌 '무성한 숲'의 지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의 경쟁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하나의 완벽한 지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나의 불편함은 단순히 그 속도 때문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혹은 잘못된 정상을 향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첫 번째 불편함: 잃어버린 '인간다움'의 정의


AGI의 정의는 암묵적으로 '인간처럼, 혹은 인간보다 더 잘' 생각하는 지능을 의미한다. 그런데 과연 그 '인간처럼'이라는 정의가 지금 올바르게 쓰이고 있을까?


지금의 경쟁은 AI가 얼마나 복잡한 코딩 문제를 푸는지, 얼마나 어려운 수학 시험을 통과하는지에 집착한다. 인간도 풀기 어려운, 극소수의 전문가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정작 보통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어쩌면 더 본질적인 '인간적인 일'들은 이 거대한 등반 루트에서 빠져있다.


지금의 AI는 우리와 함께 회의에 하루 종일 참여하며, 말로 표현되지 않은 진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 한 팀의 동료로서 몇 달간 함께 일하며 전문성을 쌓고 신뢰를 구축하지도 못한다.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지도 못한다. 지난 번외편에서 이야기했듯, 그들은 심지어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인간이 가장 어려워하는 몇몇 문제는 기가 막히게 잘 풀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가장 쉬운 소통과 관계 맺기는 전혀 하지 못하는, 기이하고 비인간적인 지능을 '인간을 닮았다'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번째 불편함: 왜 '하나'여야만 하는가?


나의 두 번째 불편함은, 왜 이 모든 것을 '단 하나의 AI'가 해내야 한다고 가정하느냐는 것이다. 왜 우리는 모든 악기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단 한 명의 천재 연주자를 기다리고 있을까?


6편에서 상상했던 디자이너 마리아의 곁에는, 건축가 AI, 환경공학자 AI, 회계사 AI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협업했다. 하나의 AI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문 AI들이 '숲'을 이루며 협력하는 '초-생태계'를 꿈꿨다.


그런데 지금의 경쟁은 오직 하나의 존재가 의사이자 변호사, 코더이자 수학자, 그리고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 누가 이 지도를 그렸는가?


이 두 가지 의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가 오를 저 'AGI'라는 산의 지도를 과연 누가 그렸느냐는 것이다.


지금 그 지도는 소수의 거대 테크 기업 연구실과 몇몇 저명한 학자들의 손에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이 만든 벤치마크 점수가 AGI의 정의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공학자의 가치관이 담긴 지능은 당연히 '효율'과 '정확성', 그리고 '수치화 가능한 문제 해결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간호사를 위한 지능은 '공감'을, 예술가를 위한 지능은 '영감'을, 부모를 위한 지능은 '인내심'을 더 중요한 가치로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상호존재'의 숲은 지능의 개발뿐만 아니라, 그 '정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다양한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지능의 정의가 필요하다. 획일화된 지능은 결국 40억 년 자연의 역사가 증명한 '단일경작(Monoculture)'의 실패를 되풀이할 뿐이다.


나는 이 거대한 깃발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내 삶의 모양과 꼭 닮은 나만의 작은 산을 그린다. 누가 더 빨리 정상을 정복하는지 응원하는 대신, 내 삶의 곁에서 함께 걸어 줄 작지만 다정한 지능을 상상한다.


초지능이라는 하나의 정상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일까. 어쩌면 우리 각자는, 우리 삶의 모양과 꼭 닮은, 우리만의 작은 산을 오를 각자의 동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상에 꽂을 깃발이 아니라, 그 길을 함께 걸어갈 당신의 '동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