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로케 성당을 뒤로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온 카르모 수녀원. 겉보기엔 티켓 박스만 보이는 것이 마치 박물관을 들어가는 듯했다.
카르모 수녀원 Info.
카르모 수녀원은 1755년에 있었던 리스본 대지진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내부에 지진으로 인해 유실된 부분과 기반이 되었던 돌들에 대한 전시가 함께 있으니, 리스본에서의 시간이 많다면, 추천한다. 입장료는 성인 4유로, 학생 3유로 (2019년 기준).
카르모 수녀원 내부
"여기서 뭐 하나 봐."
카르모 수녀원으로 들어서니 무대와 가운데에 길게 줄지어 놓여있는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유럽에서는 빈번하게 이런 유적에서 오페라 같은 큰 공연을 하는데, 이날도 그런 걸 준비하는 듯했다. 유적지의 느낌과는 상반된 느낌이라 이질감이 느껴져 아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위대한 곳에서 공연을 볼 익명의 누군가들이 부러웠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아름다운 무대를 본다면 그 경험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또 비 온다."
리스본과는 참 날씨 운이 맞지 않았다. 머무는 내내 거의 비가 왔다. 잠시 대피했다가 신트라에서 샀던 방수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수녀원 한가운데에 섰다. 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대로 느끼며 한없이 큰 천장을 바라보니, 남아있는 뼈대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수녀원이 가진 슬픈 역사를 극대화시키는 느낌이었다.
카르모 수녀원 윗부분
"어떻게 지었길래 이렇게 남아있을까?"
마치 취재라도 하는 듯 하늘을 바라보며 공중에 남아있는 뼈대 하나하나를 찍었다. 대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천장은, 원래 야외 공간이었던 것으로 착각할 만큼 뼈대가 깔끔하게 남아있다. 지진의 강도가 약 9.0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뼈대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대단할 뿐. 심지어는 이 모습이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된 것처럼 자연스럽다. 수녀원 현재 모습이 더 특별하고 특이하게 느껴지니 관광산업이 발달한 이곳에선 오히려 잘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당시엔 종교와 아주 밀접했던 그들에게 재앙과 같은 일이었겠지만.
영광의 순간이 가득한 곳, 제로니무스 수도원
우연히 트램 타고 내려서 갔던 성당이 문을 닫고 가깝다는 이유로 갔던 카르모 수녀원은 생각보다 우리의 숙소와 가까웠다. 자주 걸어 다니던 길 바로 뒤편에 있었던 것. 순식간에 리스본 한 바퀴를 다 돌아버렸다는 생각에 갑자기 할 일을 모두 잃은 느낌이었다.
"여기 조금 멀긴 한 데 갔다 올까?"
결국은 멀다는 이유로 제외시켰던 벨렘 지구까지 트램을 타고 왔다. 리스본 시내에서 30분이 걸렸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외관
"진짜 화려하다"
생각보다 훨씬 컸던 수도원은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었다. 높지는 않지만 가로로 굉장히 길었던 수도원은 존재감이 엄청났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동쪽 입구
"근데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글쎄."
"비 온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은 두 개인데 분명 다른 곳 같았다. 잠시 서서 고민하는 사이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급하게 보이는 곳으로 대피를 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수도원 입구가 있는 곳이자 옆에 붙어있는 산타마리아 성당을 구경하는 곳.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대피하기 위해 달려들어왔고 입장 티켓 없이 방황하던 우리는 등 떠밀려 무료인 성당 내부부터 구경했다.
성당 내부에는 바스코 다 가마의 무덤을 시작으로 대항해시대에 활약했던 탐험가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성당이 규모가 작아 금방 다 보고 나온 우리는 또다시 갈 길을 잃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 매표소는 보이지 않고 안내판도 없는데 티켓이 있어야 한다고 하니 그저 혼란스러웠다.
"티켓 옆쪽 입구에서 사야 하나 봐."
그렇다. 우리가 방황하던 곳은 수도원 입구고, 고민하던 다른 곳이 매표소이자 해양박물관이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Info.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바라본 상태에서 서쪽에 있는 입구가 매표소, 동쪽에 있는 입구가 진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곳이며, 수도원에 관심이 없다면 동쪽 입구의 성당만 보는 거도 좋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유로 (2019년 기준). 온라인으로도 판매되고 있다고 하니 참고.
제로니무스 수도원 회랑
화려한 기둥이 돋보이는 회랑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거대한 문 사진도 찍고, 성당을 다니며 익숙해진 것들 사이에서 새로움을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회랑 기둥들
"이거 기둥 봐봐. 어떻게 이렇게 만들까?"
소박한 느낌이 많았던 포르투갈 양식들만 보다가 갑자기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수도원을 보니 화려함이 극대화되어 느껴졌다. 실제로 수도원은 마누엘 1세 양식으로 지어져 포르투갈에서 가장 화려한 양식을 자랑하고, 이 수도원을 만드는 데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이 전성기를 누리지 않았으면 아마 이 수도원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돈을 들인 만큼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보였다. 기둥 하나만 봐도 장식이 다채롭고 정교한 것이 카메라 셔터를 자꾸 누르게 만들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2층 및 산타마리아 성당
"비가 와서 조금 아쉽긴 한데 생각보다 괜찮다."
해가 들어오면 더 예쁠 것 같은 회랑이 아쉬웠지만, 붐비는 바깥 상황과 대비되게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1층만 있던 앞서 봐 온 성당들과 다르게 2층 회랑도 있었고, 그러다 마주한 아까 그 성당의 모습까지. 2층에서 바라보는 회랑은 직접 위를 걸으며 바라보던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무료로 봤던 성당은 처음엔 뻔해 보였는데 2층에서 내려다보니 찬란함이 가득했다. 늘 아래서 위로 바라보며 형체를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던 스테인드글라스도 눈높이가 같은 곳에서 보니 색달랐다. 여러모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하면서 많이 본모습들인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다른 모습이 많았다. 덕분에 생각보다 더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대항해시대 전성기의 흔적, 발견 기념비
포르투갈이 전성기를 누렸던 대항해시대의 흔적이 담긴 기념비. 대서양으로 원거리 항해를 나가며 포르투갈이 전성기를 누리는 데에 1등 공신이었던 엔히크 왕자가 새겨진, 포르투갈인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보일만큼 가까운 곳에 있어 먼 곳까지 온 김에 보기로 했다.
"우리 갈 수 있어?"
"가까이는 가지 말고 멀리서 보자."
그런데 비가 오다 못해 거세게 바람이 부는 상황. 바다 바로 앞에 있는 기념비로 물이 위로 세게 부딪치며 육지를 덮치는 모습이 위력적이었다. 가까이 갔다가 물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발견 기념비
결국 탑까지 갔지만 오랜 시간 머물며 자세히 보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을 잠깐 안고 살짝 뒤편에서 사진을 찍은 게 가장 가까이 간 순간이다. 사람이 생생하게 새겨졌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가볍게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기념으로 세운 탑이니 더 볼 것도 없겠지만, 빨리 돌아가라며 거세게 덮치는 파도를 보니 조금은 원망스럽고 섭섭했다.
"어? 세계지도다."
"한국도 있어? 찾아봐."
거세게 부는 바람을 등지고 돌아가는 와중에 바닥에 있는 세계지도를 발견했다. 아마 대항해시대 때 본 지도지 않을까 싶다.
발견 기념비 앞 지도
"여기 있다! 생각보다 크네?"
세계 육지의 면적을 고려하면 코딱지만 한 대륙인 한국인데, 그 지도에선 눈에 띌 만큼 컸다. 한참 멀리 있는 포르투갈에서 만난 한반도의 모습이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명확하게 튀어나와 있어 국경선 표시가 없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한반도의 모습이 자랑스러워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28번 타고 목적지 없이 리스본 한 바퀴를 돌기로 하며 시작한 마지막 날의 여행은,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 포르투갈이 세계사에서 크게 흔적을 남긴 부분들을 둘러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포르투갈 역사에 대해 더 알고 보면 좋았겠지만, 여행 오기 전까지 포르투갈에 대해 거의 몰랐던 사람으로서 그들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