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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예술의 거장을 따라 간 프로방스

마르크 샤갈의 생폴 드 방스, 폴 세잔의 엑상프로방스

by 녕로그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단어, 예술. 각종 유명 작품을 모아놓은 미술관들로 예술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파리와는 다르게 남프랑스는 마을의 존재 자체로 '예술'을 풍기는 곳이 많았다.


샤갈과 세잔.

고등과정까지 거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예술이 뒷전인 이들에게도 그들이 어떤 화풍을 갖고 있었는지, 무엇을 그렸는지는 몰라도, 이름은 알 거다. 반대로, 이름은 몰라도 작품은 어디선가 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디어아트 전시, 인테리어 액자 등으로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편이기 때문에.


사실 나는 이들의 작품보다는 동시대만 두고 본다면, 고흐와 모네의 그림을 더 좋아한다. 미니멀리즘 느낌이 강한 추상이 나타나기 이전의 추상작품들과는 아직 마음의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남프랑스를 방문하면서 샤갈과 세잔의 흔적을 따라 가보려 했던 건, 내 어릴 적 기억에 어렴풋이 자리하고 있던 추억 탓이 크다.


자의보다는 엄마의 뜻에 따라 미술관을 방문하던 어릴 적, 고흐, 고갱, 세잔을 비롯한 19-20세기의 화가들의 전시를 보고 산 책자 하나가 있다. 10년보다도 더 된 지금도 갖고 있는 그 책자. 미술관의 기억보다는 그 책자에 의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때의 기억 때문에 엄마와 이 시기의 화가들에 대해 함께 알아간다면 재밌을 거 같았다.



스페인에서는 미술관에서, 남프랑스에서는 마을에서 만나는 예술

IMG_1939.jpg 엑상프로방스 거리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생폴 드 방스와 엑상프로방스. 생폴 드 방스는 예술가들의 아뜰리에로 가득한 예술 마을로,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아름다운 곳이다. 생폴 드 방스는 러시아 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작품을 만든 샤갈의 마지막 작품 활동들을 하며 그가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고,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이 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생폴 드 방스와 엑상프로방스 가는 법 및 기타 Info.

생폴 드 방스의 경우는 아주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니스 여행 시 근교로 묶어서 여행하는 걸 추천하지만, 엑상프로방스는 최소 1박은 머물 것을 추천한다. 만약 엑상프로방스도 당일치기를 한다면, 니스와 엑상프로방스 간의 이동은 반드시 마르세유를 거치게 되어 있어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마르세유에서 다녀올 것을 추천한다.

생폴 드 방스는 니스의 Parc Phoenix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400번 버스를 타면 된다. 가격은 편도 1.5유로이며, 30-40분 정도 소요된다. 엑상프로방스의 경우에는 마르세유에서 L050을 타면 50분이면 간다. 편도 6유로.



샤갈의 묘가 있는 예술 마을, 생폴 드 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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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드방스


좁은 골목 양옆으로 곳곳에 있는 아뜰리에를 구경해보니 샤갈이 이 마을을 왜 사랑했는지 직접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자칫하면 답답할 수도 있는 골목인데 오히려 아기자기하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부분보다는 부분이 모여 만든 전체적인 느낌이 참 좋았다.


IMG_1285.jpg 거리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


아직 현대의 예술 트렌드를 잘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들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것인지, 지나가면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아뜰리에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뭔가 감시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구경하는 관광지이지만, 그들에게는 생활터전. 카메라를 무작정 들고 와 촬영하고 물건을 마음대로 망가뜨리는 이들이 많으니 작품이 재산인 그들은 관광객에게 무언의 견제 시선을 건넬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우린 순수하게 아뜰리에를 보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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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매장


"이건 뭐야?"

그런 아뜰리에 사이에 눈에 띄는 한 가게. 빵인지 케이크인지 알 수 없는 비주얼들로 가득한 상점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휑하던 아뜰리에와는 다르게 가게 내부에 사람들이 있었다.


"뭔가 디저트 같기는 한데. 뭔지는 모르겠네. 무슨 맛인지 쓰여있기는 한데."

"하나 사볼까?"

가게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 중 하나를 샀다. 우리나라 엿이랑 비슷하지만 더 쫀득쫀득하고 더 단 맛이 강한 이것.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 유명 디저트 '누가'였다. 스페인에서 본 뚜론이랑도 비슷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의 누가바의 주인공이었다. 생각도 없이 먹었던 누가바가 여기서 따온 거였다니. 역시 여행은 다양한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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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무덤


마을 안쪽 끝자락에 도달하면, 공동묘지가 있다. 생폴 드 방스 아래에 위치한 마을을 거닐고 있는 듯,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는 곳에. 단어만 들어도 왠지 음산할 것 같은 공동묘지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햇볕이 가득 들어와 이보다 따사롭고 화사해 보일 수 없을 정도다. 이래도 아마 밤에 오면 음산하겠지?


이곳에서 샤갈의 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거장인 그를 기리는 이들이 두고 간 동전과 돌 등의 흔적 때문에. 동전은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겠지만, 돌에는 두고 간 이들이 전하고픈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와... 장수하셨네."

향년 97세. 무덤 위에 적힌 연도를 따라 계산해보니 그랬다. 장수시대도 아닌 때에 참 오래 살다 가셨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생폴 드 방스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분수와 젊은 이들로 가득한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

IMG_1937.jpg 로통드 분수


엑상프로방스는 분수가 엄청 많은 도시다. 이름에도 고대 라틴어로 물을 의미하는 'Aix'가 들어갈 만큼 상징적이다. 여긴 상상 속에서만 그려본 유럽 공원의 벤치에 앉아 부리는 여유를 실현시켜준 우리의 특별한 추억의 장소로, 엄마와 내가 유럽 여행을 회상할 때면 절대 빠지지 않는 곳이다.


밤에 로통드 분수 앞에서 벤치에 앉아 분수를 바라보며 빵을 먹던 그 순간은 여유와 낭만의 정점을 찍었고, 특별한 걸 보러 가지 않아도 주변을 둘러보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서로가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때가 좋았다고 몇 년이 지나도 들떠 이야기하는 거 보면, 여행을 하는 이유와 목적을 완벽하게 설명해준 순간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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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동상


이외에도 여름에 숙소에 에어컨이 고장 나는 등 할 말이 참 많았던 엑상프로방스. 우리는 여기서 추억이 깃든 로통드 분수 옆 세잔 동상을 시작으로 세잔을 찾아다녔다.



1) 세잔의 단골 카페, Les Deux Garçons (레 되 가르송)

KakaoTalk_Photo_2022-02-24-13-49-54 001.jpg 레 되 가르송


엑상프로방스의 대표적인 큰 거리인 미라보 거리에 있는 카페.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의 여느 카페와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폴 세잔과 에밀 졸라가 살아생전 자주 방문했던 오랜 전통이 있는 곳이다. 무려 1792년에 지어져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곳.


KakaoTalk_Photo_2022-02-24-13-49-55 002-2.jpg 식당 내부


실내의 벽 장식과 거울이 복원이 어느 정도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일까? 세월이 흘러야만 주는 느낌은 그 무엇도 쉽게 흉내를 내지 못하니 아마 우리가 본 그 모습은 관리가 조금 잘못된 세월의 흔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실내 가운데에 위치한 커다란 샹들리에들과 거울을 둘러싼 벽 장식들이 고귀함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나이 있는 사람은 웨이터 잘 안 시키잖아. 근데 여기는 나이가 있는 웨이터일수록 좋게 생각한대."

"아~ 그래? 그럼 여기는 좀 고급진 곳인 건가?"

노련한 연세 있으신 웨이터들이 있는 나름의 고급 식당. 이곳에서 그들은 아마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보내고 있었을 거다. 우리는 배가 고프니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빠에야에 퍽퍽한 고기에 시달리던 스페인과 비교가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을 포함한 남프랑스에서 먹었던 대부분의 음식은 맛있었다.



2) 세잔의 그림 속으로, 세잔 아뜰리에

세잔이 단골로 방문했던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시내의 모여있는 관광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세잔 아뜰리에로 향했다. 걸어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아뜰리에. 버스로 타고 가도 비슷하게 걸려 소화도 시킬 겸 걸었다.


세잔 아뜰리에 가는 법 및 입장 Info.

로통드 분수에서 7, 10, 11번 버스를 타고 세잔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소요시간은 약 20분. 걸어서도 20분 걸리는 거리라서 충분히 도보 이동이 가능하지만, 생각보다 주변 볼거리는 없다. 볼거리 없이 오래 걷기 힘들다면 대중교통 이용을 추천한다.

아뜰리에 입장은 시간대별로 입장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30분 단위로 25명이 입장한다. 현장에서 구매해도 가까운 시간으로 입장이 가능했지만, 성수기에는 아닐 수 있으니 엑상프로방스 투어 오피스나 온라인 홈페이지로 선예약을 추천한다. 입장료는 성인 6.5유로, 학생 3.5유로 (2019년 기준).


KakaoTalk_Photo_2022-02-24-13-49-56 006.jpg 세잔 아뜰리에 앞


6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어느덧 중반을 지나고 있는 여행. 매일매일 오래 걸어 다녀서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해서 자면서 다음날 곧바로 회복해서 다녔던지라 힘든 걸 모르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게 너무 누적되어서 쉽게 해소가 되지 않는지 아뜰리에까지 걸어와 관람하고 나니 지쳤다. 몇 시간씩 기다리거나 오늘 입장 못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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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아뜰리에


"똑같아. 그냥 여길 그렸네. 여기다가 정물을 두고 이거랑 여기까지 같이 그린 거야."

폴 세잔의 정물화를 참 많이 본 사람으로서 아뜰리에는 정말 인상 깊었다.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넘어서, 시공간을 함께 넘어온 느낌. 정물화를 그릴 당시의 모습이 그려질 만큼 잘 보존되어 있던 아뜰리에를 보니 어디선가 그가 나타날 것 같았다.


IMG_2090.jpg 세잔 아뜰리에


처음에는 30분의 제한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지만, 한 칸 밖에 되지 않는 공간을 30분 동안 보는 건 말도 안 되게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관람객의 대부분이 나간 게 이를 딱 증명해준다. 여기까지 왔는데 10분 만에 뒤돌아 나가는 게 아쉽지 않나. 우리는 되도록이면 오래 남아 머물면서 아뜰리에를 충분히 눈에 담고 나왔다.



생폴 드 방스와 엑상프로방스 모두 각자의 매력대로 낭만이 가득했다. 생폴 드 방스는 한나절이면 다 볼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도 좋을 곳이었다. 샤갈이 왜 많고 많은 프랑스 도시 사이에서 이 작은 생폴 드 방스와 사랑에 빠졌는지 예술가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엑상프로방스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고, 세잔 외에도 프랑스 대학의 30% 정도가 모여있는 곳인 만큼 젊음을 가득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로컬들만 이용할 것 같은 시장도 구경하고, 엄청 커다란 빠에야 만드는 모습도 보고, 단시간에 기억에 오래 자리할 만큼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을 만큼 다채로웠다.


두 거장 덕에 선택한 여행지. 말로만 듣던 프로방스 매력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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