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숭구리당당 Sep 21. 2024

[불안형으로 사는 법] 프롤로그_문제는 나였다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닌걸!

나는 불안형이다.

이 사실을 어렴풋이 느낀 지는 10년, 뼈저리게 느낀 지는 2년 정도 된 것 같다.


불안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이렇다.

“연애를 할 때면 머릿속에 항상 위기 경보가 울리고 있는 사람”


연애를 할 때면 매사가 나를 힘들게 했다.

느리게 오는 카톡, 만나지 않는 주말, 줄어든 대화, 여사친.. 모든 요소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적절한 수준의, 조절할 수 있는 불안함이었다면 관계를 돈독히 만들어줄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상대방의 카톡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날이면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내가 42분 뒤에 답장했는데, 왜 1시간 23분째 답이 없는 거지..’

내가 바로 그 미친 X였다.

빠르게 뛰는 심장, 좁아진 시야, 앞뒤 분간 없이 우울감은 마냥 파고들었고, 결국 상대의 기분까지 상하게 해서야만 끝이 났다.


그렇게 내 마지막 연애도 끝이 났다.

‘우리가 그냥 헤어졌어? 너 때문이잖아! 난 너랑 만나는 게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끝으로 차였다.

한때는 나한테 10번을 차여도 11번째 고백하던 호기로운 사람이,

나의 끝나지 않는 불안에 지쳐 내 손을 놓았다.

좋은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내가 그 손을 절단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는 점이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명상, 법륜 스님의 말씀, 김창옥 교수의 심리 강의, 온갖 심리학 서적,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유튜브 클립들..

심지어는 어느 날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까지도 완독 했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어떤 노력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나를 고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광명처럼 깨달음이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내 불안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사는 동안 내내’ 조절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

어릴 적부터 뼛속에 새겨진 불안을 내가 부정하는 순간, 더 뼛속 깊이 새긴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20대 초반엔 나의 이러한 불안감이 어쩔 때는 이기심으로, 미성숙함으로 치환되어 읽혔다.

(하지만 그 당시엔 다들 연애에 열정적이기에 ‘그냥 질투 많은 연인’ 정도로 소화되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나의 자존감은 매 순간 깎여 나갔던 것 같다.

‘넌 너무 너만 생각해 ‘ ’넌 어떻게 매사에 이렇게 안 좋은 해석만 해‘ ’자의적으로 해석하지마’

모든 연애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대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다른 사회생활은 거뜬히 잘 해내는 내가, 어느 곳에서도 그냥 무난한 ’재빠른‘ 사람이었던 내가,

이렇게 연애 문제에만 있어서 바닥을 기는 것은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자기 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내 뼈에 오롯이 새겨진 과거의 경험들 때문이다.


매 순간 나의 불안은 0.0001초의 재고의 여지도 없이 나를 덮쳤다.

아마 머릿속의 전개는 아래와 같았을 것이다.

안정 애착이 마음속에 잘 새겨져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더욱 잘 이해된다.


(안정형 애착)

‘카톡이 안 오네’ > ‘바쁜가?’ >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니까, 연락할 수 있을 때면 언제든 연락해 주겠지, 기다리자.‘


(불안형 애착)

‘카톡이 안 오네’ > ‘바쁜가?’ > ’옛날에는 아무리 바빠도 이럴 때 카톡 하나라도 남겨줬었는데‘

> ’그렇다면 이전과 마음이 달라졌나봐‘ > ’마음이 달라진 증거는 이전에도 많았어...‘

> ‘하.. 역시 이제 곧 나는 차이고 말 거고, 이렇게 또 차이는 내 인생은 이제 망했어‘


하지만 이 모든 의식의 과정은 0.0001초 만에 습관처럼 벌어지기 때문에 불안형 본인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불안형 애착은 한순간에 카톡 답장이 오지 않아서 인생이 망한 사람이 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었다.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엔 가족이, 파트너가 존재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행복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매 순간 불안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내가 서있는 곳을 불구덩이로 만드는 일은...

그만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0대엔 구두를 신고 바쁘게 전화를 받으며 돌아다닐 것이란 내 어릴 적 기대와는 다르게,

30대 초반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심리적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질, 달라지고 있는 불안형의 일기를 통해

다른 불안형도 희망을 갖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