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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숭구리당당 Sep 23. 2024

[불안형으로 사는 법] 01_원인 분석은 큰 소용없다

그 이후가 훨씬 중요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인 분석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변화에 핵심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알게 된 이후다.

그 원인에 맞는 조절법을 찾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20대는 ‘대체 내가 왜 이 모양인가‘를 아는 데에 거의 모든 시간이 흘러갔던 것 같다.


그래서 여실히 느꼈다.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 나의 가족 역학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내가 편안해지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하는 과정은 맞다.

그래서 10년을 바쳐 깨달은, 내가 왜 불안형 애착이 되었는지에 대한 해석을 적어보고자 한다.


왜 불안형 애착이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애착 이론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애착 이론은 과거 유아와 보호자 사이에 형성되었던 관계성인이 되어서 낭만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 재현된다고 이야기하는 이론이다.


재현되는 방식에는 3가지가 있는데, 모두 다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안정형

주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유형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적, 생리적 욕구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이게 반응해 줘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야’라고 믿게 된 유형이다.


불안형

주 양육자가 아이의 욕구에 ‘간헐적’으로 반응한 유형이다. 어떤 때에는 아이의 욕구에 잘 반응하였지만, 어떨 때는 그렇지 못한 양육자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래와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은 불안정해. 나는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어.’ 이로 인해 유아가 가지게 되는 불안감은 생존의 위협이 되는 수준이다. 양육자가 자신의 욕구에 반응해 주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회피형

주 양육자가 아이의 욕구에 반응하지 않아 ‘독립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유형이다. 혼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고,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시 자신의 안정감이 깨진다고 믿는다.


불안형의 정의만 살펴보아도 왜 한 사람이 불안형 애착을 가지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주 양육자가 본인의 심리적, 혹은 현실적 문제로 인해 ‘간헐적’으로 아이의 욕구에 반응한 경우다.


인간은 호르몬의 동물이다. 그리고 결국 그 호르몬에 의해 느끼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좌우된다.


엄마 혹은 아빠의 사랑을 간헐적으로 느껴본 아이는, 행복 호르몬이 간헐적으로 방출된다. 그리고 이 행복 호르몬의 방출을 위해, 결국 어떻게 하면 이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 골몰하게 된다. 마치 도박에 중독되는 것과 같다.


결국 자신의 생존과 행복에 직결되어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내가 지금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에 촉각을 세우게 된다.


어느 날엔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내 심리적 문제들 어쩌고 저쩌고.. 괴롭다, 또 헤어졌다.. 구시렁구시렁..

엄마를 이제 원망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살아있었던 게 기적이야. 엄만 그때 너무 힘들었어.”


그렇다. 나를 낳았을 때 엄마는 아빠로 인해 막 경력이 단절된 참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아빠와의 사이가 기가 막히게 좋지 않았다. 아빠 하나 보고 한 결혼인데, 집에 들어온 남편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 잠만 자니.. 하루종일 갓난아기와 방 안에 갇혀있었을 30살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그 와중에 아빠는 가출(?)도 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아빠는 5일을, 6일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기를 반복했다.


정말 똑똑했던, 대학 등록금도 혼자 벌어 다닐 만큼 주체적으로 살았던 한 여자의 좌절.. 정말 ‘고작’ 30대 초반인 엄마의 과거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훔쳐본 엄마의 다이어리 속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내가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을까?”

“나를 도구로만 대하는 그와의 관계가 너무 힘이 들다”

“매일매일 찬 바람이 나를 에워싼다”

“오늘도 아이가 갑자기 ‘엄마 가지 마’라는 말을 했다. 예민한 아이는 내가 우울해 있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울거나, 웃거나, 안긴다..”


그렇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를 통해 이런 세상을 배우게 됐던 것이다.


나에게 제시된 최초의 세상은 아래와 같았다.

“세상은 내가 노력해야, 내가 애쓰고 울고 웃어야 나를 사랑한다. 살아남으려면 아등바등하자.”


여기에 아버지가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가?’하는 신뢰 이슈가 더해졌다. 나에겐 너무도 쿨한, 잘 나가는 아버지였지만 좋은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의뭉스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 역시 엄마, 아빠 사이의 관계라 믿기에 더 캐묻지 않았다. 두 타인의 관계는 그럼에도 나에게는 큰 상흔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형성된 애착은 영원히 ‘유지’되진 않는다.

여기에 (희비가 갈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후의 시간이 쌓인다.


어린 시절 만들어진 이 불안한 믿음은 시간을 거쳐 겪는 사건들 속에서 강화되기도 약화되기도 한다.

안정적으로 애정을 주는 누군가가 나타나 일정 기간 이상 함께 한다면 믿음이 약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불안한 믿음(난 노력해야만 사랑 받을 스 있어)을 색다른 방식으로 강화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믿음이 더블, 트리플 된다.


나는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10대 불안한 어머니와 갈등을 반복하며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믿음은 강화되었고,

20대 엉망진창인 연애를 반복하며 ‘모든 인간은 변한다’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그 마지막 어퍼컷으로 마사지 업소남을 만남으로써(이전 글에 있다) 온전한 K.O. 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얄팍했던 ‘남성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그래서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을 안고 온갖 솥뚜껑들에 소위 ‘지랄’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서두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러한 원인 분석은 나에게 어떤 위안이 되어주지 못했다.

이 이후가 중요했다. 이 많은 사건들을 나열해 놓고 들여다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안에서 나를 위로하고 조절하는 법은 후에 이어 적으려고 한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 끝에 꼭 필요한 문장이 있다.

‘아, 나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네, 나 그냥 잘 살고 싶었던 거구나’

원인 분석 이후 꼭 깨달아야 할 것은 내 모든 순간에 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조절되지 않는 감정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버텼을 나를 먼저 알아주어야 한다.


누구나 다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누구도 완벽히 행복한 가정에 살진 않는다.

각자의 구멍을 메우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그렇기에 원인을 분석하면 자신에게 꼭 토닥여줘야 한다.


‘오..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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