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이 원서를 '깊이' 읽는다고?

번역가 엄마의 '깊이 읽기' 이야기

by 연필

초등 4학년인 우리 딸의 친구 엄마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마음이 급한지 간단한 안부 인사도 건너뛸 기세로

곧장 이렇게 묻는다.


"애가 원서를 너무 대충 읽는데,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읽힐 수 있는 거야?"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서는

영어 원서를 아예 접해본 적도 없는 친구들도 있지만,

어릴적부터 엄마와 또는 학원을 통해

책으로 영어공부를 해온 친구들도 있다.


그중에도 원서를 어느정도 읽을 수 있게 된 아이들은

'글'을 써야하는 위기에 처하고

(부모의 권유나 학원의 요구로)


소위 '퀴즈'라고 불리는 이해력 질문은 어떻게든 통과했던 아이들이

원서를 제대로 읽고 자기 생각을 써야하는

'글쓰기'에서 진짜 '읽기 실력'을 드러내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원서를 제대로 읽는 법'

내식대로 말하면, '깊이 읽는 법'에 대해.


나도 그게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없던 그때는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실력 있는 번역가가 되고 싶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글자를 옮기는 일, 마음을 옮기는 일


나는 번역가다.

영어로 쓰인 책을 읽고, 해석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한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땐

'문장을 정확히 번역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문장으로 글을 옮기며

단어 하나하나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책을 번역하고

완역본을 출판사에 보내고 나면

성취감보다는 의심과 불안함이 나를 찾아왔다.

그 원인을 고민하다가 알게 되었다.

책은 단순히 글자를 옮긴다고 '옮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책을 온전히 내 생각과 마음, 정신으로 받아들여야만

진짜 번역이 시작된다는 것을.


어린이책을 공부하며 '깊이 읽기'를 다시 배우다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그 무렵

뱃속에 아기를 품은 나는

우연히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였다.


처음엔 아이를 위한 정보나

도서목록 정도 얻을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얻은 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책을 깊이 읽는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었다.


매주 책 한 권을 읽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어 나누고,

다른 이들의 전혀 다른 시선과 감정을 들으며

나는 점점

책을 '읽는 이유'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서

책을 통해 느낀 나만의 감정,

내 안의 질문과 혼란,

그리고 그걸 세상과 연결해보려는

작은 시도들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시작했다.


책을 읽는 나의 몸과 정신 모든 과정이

내 안에서 의미있는 사유가 되어갔다.




깊이 읽기란 무엇인가


그때 나는 '깊이 읽기'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갖게 되었다.


책을 깊이 읽는다는 건,

그저 정보를 얻거나 교훈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나만의 감정과 생각을 인지하고,

그것을 세상과 연결하며,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깨달음이 내 독서의 중심을 바꾸어 놓았다.

책을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책이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모르는 세계를 향한 감각을 열고,

때로는 책이 던지는 메시지에 반문하는 일.


그 모든 것이 바로 나에게 '깊이 읽기'였다.


슬로리딩클럽의 시작


깨달음을 얻고 내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니,

과연 '영어 원서'도 이만큼 깊이 읽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 혼자서는 안되었다.

내가 질문을 던지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동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 문을 두드려 작은 원서 북클럽을 열었다.

이름은 '슬로리딩클럽Slow Reading Club(SRC)'.

원서를 읽는 속도보다는 깊이에 집중하자는 의미였다.


우리는 원서를 천천히 읽었다.

책 표지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고,

한 챕터만 읽고 모여 2,3시간을 꼬박 대화를 나누고도

시간이 모자랐다.


줄거리보다도

책 속에서 느낀 불편함과 의문, 감정의 진동을 나누는 데 집중했다.

문장 하나를 두고 한참을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영어로 된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해석을 넘어 그 나라의 문화와 작가의 철학까지 파악해보기도 했다.


책 속 인물이 던진 말 한 마디에

어떤 이는 위로를 받았고,

어떤 이는 상처를 드러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시간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깊이 읽기는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도 가능하다.

어쩌면 더 풍부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결코

어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리라는 것도.


아이에게로 이어진 깊이 읽기의 길


슬로리딩클럽을 시작할 무렵

내 곁에는 아장아장 걷는 어린 딸이 자라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이 아이는

다른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가만히 있어야 하는 일보다는 몸으로 놀기를 좋아하고

책보다 영상에 더 약했다.


책을 펼치면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엉뚱한 이야기와 질문으로

페이지를 넘기려는 내 손을 막았다.


지루함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태도와

산만한 움직임을 다독이다가

그림책 한 권을 읽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은 '선천적인 슬로우리더Slow Reader'라는 것을.


그리고 아이에게도

내가 슬로리딩클럽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읽다가 우리만의 그림을 그리고,

노래가 나오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이야기 중간에 멈춰

"나는 이 친구 싫어!"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기발한 작가의 아이디어를 따라

우리만의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책을 빨리, 끝까지 읽는데 집중하기보다

책을 천천히,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는 과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조금 더 크자,

우리는 질문과 대화라는 걸 나누기 시작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인물, 문장을 나누기도 했지만

읽는 과정에서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지점에서 멈추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저 새들이 억지로 끌려온 거면 어쩌지?"

"산타 할아버지도 속상했을 텐데 누가 그 마음을 위로해줬을까?"

"난 아무래도 저 코끼리가 마음에 안 들어. 왜냐하면..."


아이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책이 다양해지는 만큼,

우리의 대화도 더 성장하고 다양해졌고,

깊어졌다.


그렇게 내 딸아이는 책을 '깊이'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애가 원서를 너무 대충 읽는데,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읽힐 수 있는 거야?"


이 질문에 나는 반문했다.

"혹시, 애가 책을 읽는 중이나 읽고나서 아이 생각을 물어본 적 있어?"


아이가 대충 읽었는지 깊이 읽었는지는

아이가 진정으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 전에,

아이가 책 속의 요소요소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인식하고

느낀 것을 정확히 표현하는 경험이 없으면

진짜 제대로 읽었어도 그 사실 여부를 알 수가 없다.


깊이 읽는다는 건,

많은 단어를 아는 게 아니라,

책 속에서 자기 마음이 움직인 지점을 알아채고,

그걸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일이다.


그걸 그대로 발화한다면 자기만의 '말'이 되고,

그걸 그대로 종이에 적으면 자기만의 '글'이 된다.


하지만 그 깊이 읽기를 혼자하기란 쉽지 않다.

그 시작 지점에는

아이의 마음을 들어줄 누군가,

함께 질문을 던지고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원서를 깊이 읽는 법을 연구하는 번역가이자,

수년간 그 방법으로 아이들을 지도해온 교육자이고,

딸과 함께 실천해 온 엄마다.


그리고 이제 그 방법을

이곳에 적으며

기록하고 나누어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3번째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