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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Oct 03. 2018

한국 엄마와 서양 엄마의 다른 점.

나의 문화 충격 체험기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나는 뉴질랜드에서 홈스테이 하숙집에 살며 고등학교를 다니는 유학생이었다. 그 때 현지인 가정에 살면서 내가 받았던 문화적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였다.


나의 홈스테이 가족은 젊고 아름다운 부부와 네 명의 아이들이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이었다. 아내인 엘시아는 요리 솜씨가 프로급이었고 남편 피터는 자상하고 해박한 회사원이었다. 열살, 일곱살, 다섯살, 세살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예의바르고 예뻤다. 현실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랭귀지스쿨과 연결된 홈스테이 가정은 단순히 방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 반경에 유학생을 어느 정도 포함시키게 되어있었다. 그들 부부는 저녁에 산책을 하거나 주말에 친척 집을 방문할 때 종종 나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엘시아가 나와 3살배기 막내 아들 코리를 데리고 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  어린 코리가 핫도그를 가리키며 먹고 싶다고 엄마 소매를 잡아당겼다. 핫도그는 겨우 2불이었고, 나는 당연히 엘시아가 코리에게 핫도그를 사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안 돼. 이건 나 커피 사 마시려고 남긴 현금이란 말야.”


나는 엘시아의 반응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국의 엄마들 같았으면 커피를 안 마시더라도 어린 아들이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핫도그를 사서 쥐어주었을 텐데. 만약 엘시아의 대답이, “저녁 먹을 시간 다 됐는데 무슨 군것질이야.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라던가, “몸에 안 좋은 거니까 먹지 마.” 였으면 차라리 고개가 끄덕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본인이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라니.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인데 당연히 커피 한잔 하면서 그 날의 피로를 달래고 싶을 것이다. 엄마도 무언가 사고싶을 수 있고,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할 수도 있는데, 그 땐 그녀의 반응이 왜 그렇게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답은 내가 자라온 환경에 있었다.


우리 집의 양육방식은 나를 ‘받는 것에만 익숙한’ 아이로 만드는 환경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와 동생에게는 무엇이든 아낌없이 해주시고 본인들은 옷 한벌 사는 것도 망설이시곤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식키우는 부모님이라면 대부분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하면 제일 먼저 “고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식구를 위해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 닳아 헤진 코트를 입으며 자식들에게는 좋은 교육을 시키기위해 고생하는 아버지.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떠올리는 부모의 모습 아니던가. 우리는 엄마, 아빠란 단어를 들으면 애틋하고 가슴이 저려 눈물을 훔친다.


핫도그 값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아닌데도, ‘자신의 커피값’이라는 이유로 당당하게 코리에게 설명하는 엘시아. 그녀의 설명에 더 이상 조르지 않고 입을 다무는 코리. 둘의 대화가 나에게는 신기하고 인상적이었다.


후에도 다른 가정에서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기에, 나는 서양 엄마들은 아이의 원함에 자신을 무조건 희생하고 맞추기보다, 아이의 원함과 자신의 원함을 때에 따라 절충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2년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로스엔젤레스와 시애틀에서 총 20년째 거주 중이다.  


미국인들 역시 뉴질랜드에서 본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네 상가에 가면 동전을 넣고 타는 회전목마나 자동차 같은 것이 있다. 고작 25센트밖에 안 하는데도, 아이들이 목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대부분의 엄마들이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며 갈 길을 재촉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현재 두살배기를 키우는 나는, 아예 25센트 동전을 넉넉히 넣은 지갑을 들고 간다. 갈 때마다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태워주는 편이다. 워낙 팔불출 엄마라, 회전목마 타는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울까 하는 상상에 못 견뎌서 내가 먼저 태워주기도 한다.


내 아이가 회전목마에서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다섯 바퀴째 타는 동안,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아쉬움의 눈길을 보내며 엄마 손을 잡고 지나쳐가곤 한다. 아이들이 “조르는” 것을 받아주지 않는 미국 엄마들의 매정함과, 한 번 안된다고 들은 것은 여간해서 떼쓰지 않는 미국 아이들의 어른스러움에 나는 매번 놀란다.


물론, 태워주는 엄마들도 많다. 그런데 웬만해서는 한번 이상 태워주지 않는다. 이유는, “25센트짜리 동전이 없다”는 것. 회전목마 바로 옆에는 지폐를 넣으면 동전으로 바꿔주는 기계가 있음에도, 두 번 태워주는 엄마를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내 아이만 신나게 여러 번 타고 있으니 가끔은 내가 아이를 너무 스포일시키는 건가 싶어  겸연쩍기까지 하다.


자식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고 내가 원하는 것은 접어두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희생을 늘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엄마들은 당연히 자기가 갖고 싶은 것에 앞서서 자식이 갖고 싶은 것을 사주는 존재라고 믿어왔는데. 엘시아를 보며, 때로는 엄마 자신의 소소한 욕구나 기쁨을 위해 아이가 원하는 것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사건. 그것은 내가 받은 첫번째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이와 살되, 아이 중심으로만 살지는 않는 그들의 생활방식인 것이다.  


두번째 문화적 충격은, 피터의 40번째 생일파티 날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갑이나 고희에 큰 잔치를 열지만 서양에서는 40번째 생일을 가장 크게 축하한다. 엘시아는 남편인 피터를 위해 큰 연회를 준비했다. 평소 요리 실력이 출중한 그녀는, 약 50 명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기 위해 며칠전부터 분주히 재료를 사들였다. 테이블과 의자, 와인잔, 접시와 포크 나이프는 전문 업체로부터 빌려왔다. 생일날 풍경은 정말 흥미로웠다. 길다랗게 배치된 테이블 위에는 깨끗하고 하얀 린넨이 깔려 있고, 정성스레 세팅된 접시와 와인, 파인애플 속을 파서 세팅한 각종 해산물과 처음 보는 요리들, 디저트, 센터피스 꽃장식 등등…… 한국에선 입시공부만 하느라 집과 학교 외엔 가본 곳이 없던 나에게 그 날의 진풍경은 완벽한 신세계였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생일상에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엘시아에게 물으니, 아이들은 오늘 하루동안 옆집에 맡겼다고 한다. 아빠 생신인데 왜 아이들을 옆집에 맡긴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바쁜 엘시아에게 캐묻고 싶지 않았으므로 궁금증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서로 껴안고 입맞추고 요란한 인사에 이어, 음악의 볼륨이 높아지고 모두들 와인에 취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역시 자유분방한 서양 사람들이라 그런가, 남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신나게 흔들어 대던 중, 깜짝 놀랄 광경이 벌어졌다.


한 여자가 춤을 추면서 갑자기 옷을 벗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음악에 맞추어 현란한 동작과 함께, 시선을 즐기는 듯 여유로운 윙크까지 해가며. 너무 놀란 나는, 저 사람이 미쳤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다른 손님들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환호를 지르며 그녀를 에워싸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던 나는,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가 손님이 아닌 쇼걸이며, 오늘의 파티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옆집으로 보낸 거였구나. 지금이야 불혹이라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테지만, 당시 17살(한국나이로는 19세) 이었던 나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울고 싶어져서 집 밖으로 나와 아스팔트에 주저 앉았다. 마침 옆집에 하숙하스위스 친구가 (랭귀지스쿨 동기, 나보다 두어살 많은 청년) 마당에서 우연히 나를 보고 괜찮냐고 묻기에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 친구는 오히려 깔깔거리며 웃는게 아닌가. 그 친 왈, 스트립쇼가 뭐 어때서 그러냐며 자기도 초대받았으면 구경을텐데 너무 아쉽다고 했다. 나는 기가 막혀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렇게 쇼가 보고 싶었으면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재워놓고 밤에 어른들끼리 클럽으로 가지, 왜 집에서 저런 파티를 하느냐고 반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화낼 일도 아니건만, 당시 나는 아빠 생일에 굳이 아이들을 집밖으로 내보내면서까지 그런 파티를 연 그들 부부에게 혐오감마저 느끼고야 말았다. 이것이 내가 받은 두번째 문화 충격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부부로서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파티를 열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사고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부부는 그저 신나게 놀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은 아직 젊었고 (지금의 나보다 젊었다), 그들이 아이들 없는 파티를 열었다고 해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매번 생일 때마다 이렇게 노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만약 아내인 엘시아의 생일이라면 다른 종류의 파티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남편인 피터의 생일이니 남자들 취향으로 깜짝 놀래켜주고 싶어서 엘시아가 계획한 것일 터였다. 결혼하기 전 총각파티 문화까지 있는 마당에, 이 정도는 애교인 것을.


엘시아도 피터도, 그날 밤만큼은 엄마아빠가 아닌 여자와 남자로서 즐기고 싶었던 거다. 그것을 죄악시하며 그들을 정죄했던 나의 이면에는, 부모란 존재는 모든 것을 아이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의 엄마, 아빠 생신 날 정작 주인공인 엄마 아빠가 신나게 즐기셨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반면 나와 동생 생일엔 엄마가 늘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주셨었다. 엄마와 아빠가 본인들의 즐거움을 자제하고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늘  최선을 다 하셨던 걸 생각하면 죄송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부모가 되면 필연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게 된다. 본의든 아니든, 한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건 내 일상을 통채로 넘겨주어야 하는 일이니까. 이전의 삶과 동일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정도 키워놓고 나서 부모가 자신들의 기쁨을 위해 당당히 즐긴다고 해서, 그걸 죄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내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라는 말은 하는 사람 입장에서만 정당하지 듣는 아이들에게는 평생 상처요 짐이다.


물론 양육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만약 엄마인 당신이 지금 지쳐있다면,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된다. 적당히 자신을 위할 줄 아는 부모가 되는 것, 이것도 연습이 필요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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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같은 인생을 살다가, 인생같은 소설을 쓰게 된 작가 배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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