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운 것 말고, 네 생각 말이야.
Critical Thinking 이 중요한 이유.
20년 전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던 내가 가장 처음 놀란 점은 공항이 너무나 한가롭고 시골스럽다는 것이었다. 공항, 하면 관제탑과 활주로를 분주히 드나드는 비행기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뉴질랜드, 그것도 북섬이 아닌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은 한가롭다 못해 전원적이기까지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안으로 들어가자 더더욱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이 너무나 자유(?)스럽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유스럽다 함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자유분방함이나 캐주얼룩 이라는 뜻이 아니고,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한 옷차림이라는 뜻이다. 머리카락은 전혀 빗질이 되지 않은 채 바람에 나부껴 엉켜있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마저 간간이 보였다. (정말 길에서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6개월간의 랭귀지스쿨을 마치고 고등학교로 편입해서도 놀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선생님(어른)들이 학생들을 존중해 준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바보같은 질문을 해도 타박하지 않고,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일단 That’s a good question. 이라고 응답해준 뒤 대답을 시작했다. 어떤 의견을 제시해도 That’s a good idea 라고 해주고 숙고할 가치가 있음을 시사해줬다. 이건 시험에 안 나와/ 그런 생각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해, 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는 언제나 please 를 붙였다. 이건 아이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네댓살짜리 꼬맹이 아들, 딸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 명령조가 아니라 항상 please 를 붙여서 말한다. 어린 자녀라 해도 무언가를 지시할 때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아이들도 그 지시에 두말없이 따라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존중을 알려주는 차원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아이한테 절절 매서가 아니라, 내가 예의를 갖춰서 방을 치우라고 했으면 너도 네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질문하라고 할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재깍재깍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학생들도 내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지? 물어볼 게 뭐가 저리 많지? 난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그렇게까지 궁금한 게 없던데. 질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학교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나는,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물어보길 주저하지 않는 이 아이들이 참 신기했다. 우리의 경우, 물어보고 싶은데 창피해서 참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관절 뭘 물어봐야 할지 딱히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정보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면 뇌가 풀가동을 하지 않게 된다. 이해 못해도 달달 외우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해할 필요도, 더 알려고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손윗사람이 말하는 것에는 토를 달지 말라고 배워왔다. (조)부모님, 선생님, 손윗형제, 선배, 상사 등의 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견을 제시하면 반항적인 사람이라는 낙인을 감수해만 했던 것이다. 반항이라는 말에는 손윗사람의 말은 이의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율이 숨어 있다. 이런 억압적인 규율에 순종하는 것이 오랜 세월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Critical Thinking Skill 이 부족하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Critical Thinking 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Critical thinking is making reasoned judgments that are logical and well-thought out. It is a way of thinking in which you don't simply accept all arguments and conclusions you are exposed to but rather have anattitude involving questioning such arguments and conclusions.
Critical thinking is the intellectually disciplined process of activelyand skillfully conceptualizing, applying, analyzing, synthesizing, and/orevaluating information gathered from, or generated by, observation, experience,reflection, reasoning, or communication, as a guide to belief and action.
Critical 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비판적이라는 뜻이 들어가니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critical 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관찰, 검색, 경험, 비교/ 분석의 과정을 통해서 도출한 결과물로서의 판단을 의미한다.
Critical thinking 은 그저 상대의 의견에 반박하기 위한 언쟁과 다르다. 무조건 받아들이기 전에 의문을 가지고, 이게 최선일까,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라는 비판적이고 발전적인 생각 체계를 갖추는 지적 활동, 그것이 바로 critical thinking 이다.
나이나 직함 등으로 상호간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우리 나라 문화에서는 아무래도 critical thinking 을 북돋우기 위한 교육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부모 자식간에 소통만 잘 되어도 막힌 생각이 조금 자유로워 질 것이라 생각한다. 가정에서 이런 분위기가 생기지 않으면, 아무리 학교에서 critical thinking 가르친다고 토론 수업 해봐야 이것을 이용한 고액 과외와 학원들만 활개를 칠테니 결국 사교육을 부추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학생들은 과중한 학업과 부모의 기대, 진로에 대한 걱정 등으로도 너무나 벅차다. 나도 우리나라에서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끝나면 학원 셔틀버스를 타고 자정까지 수업을 들은 뒤 새벽에 귀가하곤 했다.
“자율”학습이라는 이름도 아이러니하지만 한창 삶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아이들에게 천편일률적인 목표를 지향하게 하고 천편일률적인 교육으로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은 더더욱 아이러니하다.
인공지능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 길은 오직 인간답게 사고하고 인간답게 창조하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뇌에 잠자고있는 “진짜 나”를 깨워야 한다. Critical thinking 을 통해 우리는 남의 지식을 달달 외우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학업과 업무에 지쳐 무엇에 대해 깊이 관찰하고 사고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발견하고 발명하고 이해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실제로 이것을 실험해본 적이 있다. 아무것이든 좋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물을 유심히 바라보라. 익숙한 물건이어도 좋고, 생소한 도구라도 좋다.
무조건 구글에 검색어를 치기 전에, 그 사물의 외관, 특징, 사용법, 작동 원리, 유래, 이런 이름이 지어진 이유, 이 사이즈로 존재하는 이유, 예상 수명 등을 깊이 생각해보라. 한 시간만 그것에 대해 생각해도 이미 그 물건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없는 것처럼 무엇에 대해 골똘히 나만의 힘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에 큰 도움이 된다. 나중에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검색이나 독서 등으로 충분한 공부를 하면 된다. 누군가를 이기거나 시험에 합격하기 위함이 아닌,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나 스스로에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끔 해보면 재미있기까지 하다.
결과가 맞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생각의 줄기를 다채롭게 뻗어나가는 것만이 사회 구석구석 막힌 혈관을 뚫어내고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서로를 존중하는 의사소통 문화까지 자리 잡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거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