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서바이버> 나가타 도요타카 지음/서라미 옮김/다다서재
유독 뾰족해진 딸아이의 말과 차가운 눈빛에 느닷없이 찔린 날이면 나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편의점으로 간다. 냉장코너로 직행하며 두툼한 몸집의 외식사업가의 얼굴이 박힌 연탄 돼지 불고기 도시락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 도시락이 있는 날에는 고민 없이 꺼내 들고 계산대로 가지만 없는 날도 종종 있다. 정오를 두어 시간 지난 오후여서 재고가 남지 않은 건지도 모르지만 또 내가 모르는 편의점의 판촉 사정이 있는 건지 돼지 불고기 대신 처음 보는 도시락이 가득 채워진 날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주 잠깐 생긴 여유시간에 급하게 들른 편의점 냉장코너에 낯선 포장의 도시락들만 보였다. 망설였지만 그중 제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새로운 도시락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역시 돼지 불고기가 주인공인 도시락이었다. 최대한 편차를 줄이고 싶은 시도였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처음 보는 메뉴라도 아주 불호가 아니고서는 꼭 먹어보는 성미인데도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 편의점도시락에 명확한 맛의 호불호가 있다는 사실에 나도 약간은 당황했다. 그 뒤로는 단골편의점에 우선 들러서 도시락코너를 확인하고 슬프게도 적당한 도시락이 없으면 조금 멀고 공간도 좁아서 앉을 좌석조차 없는 두 번째 편의점으로 간다.
물론 커피 전문점만큼이나 편의점이 촘촘하게 들어선 이곳에서 두 번째 편의점으로 선택될 만한 곳은 그곳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지만 다른 곳은 편의점 계산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계산대의 아르바이트생이나 점주는 당연히 나에게 관심이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단절된 채 도시락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까이에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다.
도시락치료
나에게 있어 신통한 치유력을 가진 편의점도시락은 반드시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돼지불고기처럼 중심이 되는 반찬 한 가지에 반찬이 서너 가지라면 아주 좋고 여덟아홉 가지 정도의 반찬이 오밀조밀 들어 있는 도시락도 나쁘지 않다.
도시락을 고르고 계산을 한 후에 비닐을 뜯어서 전자레인지에 데운 후 다 먹어치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남짓. 특히 먹는데 쓰는 시간은 매우 짧다. 쉴 새 없이 밥과 반찬을 크게 집어내어 입안에 욱여넣다 보면 짭짤한 반찬과 육가공식품 특유의 향과 맛으로 여러 가지 허기가 달래진다. 뒤이어 목이 꽉 막히고 그 뭉치가 식도를 따라 꿀떡 넘어갈 때 나는 그 뭉텅이에 집중한다.
어떤 날에는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미움이, 다른 어떤 날에는 스스로에 대한 기운 없는 연민이, 또 어떤 날에는 좌절인지 울분인지 모를 울음이 뭉텅이에 쓸려 꿀떡 넘어갈 때까지 꼭꼭 씹지 않고 도시락을 삼킨다. 싹 비워진 빈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얇은 티슈로 입을 싹싹 닦은 후 편의점 문을 열고 나서면 나는 포만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편의점에서의 식사가 나에게 특별히 해가 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폭식도 아니고 거식도 아닌 그저 잠깐의 휴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신의 곤궁함을 효과적으로 채우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저 고지혈증을 겪을 가능성이 약간 높아지거나 소화불량을 겪을 가능성이 그보다 조금 더 높아지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적어도 어제 도서관의 신간코너에서 <아내는 서바이버>라는 책을 집어 들기 전까지는.
<아내는 서바이버>의 작가인 나가타 도요타카는 아사히신문사의 기자이면서 섭식장애와 알코올의존증, 습관적 자살시도를 20년째 반복 중인 아내를 돌보는 의존증 환자의 가족이다. 단순히 가족이다라는 말로 축약하기에는 모자란 것이 아내에게는 그가 유일한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의 학대와 이후 성폭력으로 인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아내는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마주하자 정신없이 추락한다.
휴일 아침, 내가 운전해 쇼핑몰로 외출했다. 식료품 판매대에 도착하니 아내는 눈빛이 달라졌다. 도시락과 회, 빵에 탄산음료까지 정신없이 카트에 담았다. 내가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었다. 불룩해진 비닐봉지를 몇 개씩 안고 차에 올랐다. 집에 돌아오자 장 봐온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산처럼 쌓고는 말했다.
“소중한 시간이니까 방해하지 마.”
<아내는 서바이버> p.11
아내만의 방. 그녀 스스로도, 그녀를 돌보는 작가도 그렇게 말했던 그 방은 맥락 없이 먹고 토해내는 그 과정 자체였다. 머리로 밀고 들어오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생각을 멈추는 유일한 해결방법이었다고 했다. 섭식장애로 인한 저칼륨혈증, 약물과다복용, 알코올의존증과 급성간염, 반복되는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 알코올성 인지저하증, 즉 알코올성 치매에 이르는 20년간의 기록이 어떻게 겨우 175페이지에 다 담길 수 있었을까.
나는 그녀가 정신없이 먹어대는 모습에, 그것이 자신의 해결책임을 인정한 순간에 편의점의 내 모습을 잠깐 본 것 같아 흠칫 놀라며 몰입했다. 솔직히 책의 중반에 이르는 동안 책에 담긴 아내라는 이의 증상이 그저 현실도피의 수단이 아닐까 싶은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다 쓰니가 차마 다 옮기지 못한 아내의 트라우마가 담긴 부분에서는 가족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방종과 반대로 전가되는 끝없는 책임에 화가 났다. 정신병을 앓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력하게 짓밟히는 성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은 왜 의존증이나 기벽에 빠질까. 그 의문에 한 가지 답을 제시하는 것이 미국의 정신과 의자 에드워드 칸치안이 주창한 ‘자기 치료 가설’이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의존증에 빠져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칸치안은 반대로 고통 완화에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마음의 상처가 주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알코올이나 약물을 사용하는, 즉 통증을 ‘자기 치료’라고 있다는 것이다. 섭식장애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아내는 서바이버> p.168
작가가 모든 의존증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자기 치료’라는 이름으로 희석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아내가 시달리는 증상에 대해서 알아보고 공부하고 치료법을 찾아보는 과정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를 간절히 이해하기 위한 기자적인 노력 중에 하나였을 것이며 그 노력은 미약하나마 효과가 있었다.
아내에게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에게.
아내는 20년간 완만한 자살을 시도해 온 것일까.
아니다. 필사적으로 살려고 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학대, 어른이 되어 입은 성 피해. 그런 고난을 이겨내려면 과식이나 술 같은 ‘진통제’가 필요했다. 고난에서 의식을 멀리하고 다른 것에 시선을 돌려 잠깐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지금 아내는 진통제를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한 사람의 생존자로서 자신처럼 고통받는 사람이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 사회가 그런 곳이 되기를, 나 역시 바란다.
<아내는 서바이버> p.170
책을 덮고 내 쪽으로 잔잔하게 밀려오는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한다. 갑작스레 자신을 덮친 불행을 견뎌내는 몸부림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나, 내 안에 있는 통증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렇게 참기만 하면 병 생긴다며 어느 날 지인이 던진 걱정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도 떠올린다.
아무튼 편의점에서 도시락 먹기는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