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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Dec 22. 2017

브랜딩에 필요한 침묵의 미학

때로는 침묵이 더 강한 울림을 준다




문학평론가 김화영은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책을 번역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썩지 않는 비닐로 표지를 씌운 가벼운 책들을 쉽사리 쓰고 쉽사리 빨리 읽고 쉽사리 버린다. 재미있는 이야기, 목소리가 높은 주장, 무겁고 난해한 증명, 재치 있는 경구, 엄숙한 교훈은 많으나 '아름다운 글'은 드물다." 브랜드 디자이너인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거리마다, 빌딩마다, 매체마다 차고 넘치는 브랜드에 대해 떠올렸다. 오늘날 무수한 브랜드가 그럴싸한 이미지와 개성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린다. 그 많은 브랜드들의 무리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목청껏 자신을 어필하는 그 모습을 보노라면 나는 그것이 차라리 병적인 발작이거나 임종 직전의 마지막 발악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브랜드들이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제 논리에 충실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점차 피로감을 느낀다. 브랜드에 대해 민감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람들의 감각과 욕망을 자극하려 드는 그 끊임없는 외침은 사람의 감각을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무디게 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짙은 피로감만이 남을 뿐이다.



나는 이 시대의 갈증이 경탄이나 흥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침묵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가, 이미지가 차고 넘치는 이 시대는 그것들을 다 소비해야만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이 공허한 갈증을 유발한다. 차고 넘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비워내었을 때 비로소 풍성해질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분명 느끼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황폐해진 공간을 다시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침묵의 힘이다. 이제는 마땅히 침묵의 디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일이다. 침묵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침묵은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에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미감을 넘어 내면에까지 울리는 감동이 있다. 이를테면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그렇다. 온통 경제적인 효율에 충실한 건축물들과는 달리 그의 건축물에는 자본주의의 윤리에 위배되는 공간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도심 한복판에 지어진 좁디좁은 건물을 지을 때조차도 그는 빛과 물, 바람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를 포용할 수 있는 공백을 고집했다. 어떤 이들은 그 무용한 공간을 낭비라고 비난했으나 결국 그 공백이 지닌 고요함에서 사람들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는 어떤 경건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텅 빈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그 침묵의 공간들이 사람에게 깊은 평온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의 미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브랜드로는 무인양품이 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외치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디자인으로 경쟁을 할 동안에 무인양품은 오로지 제품 자체에 집중했다. 무인양품의 성공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해석이 있지만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무인양품이 추구했던 침묵이 지닌 가치이다. 나는 몇 년 전 상해에서 처음 경험한 무인양품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화려한 외관의 명품 매장들 건너편에 위치한 무인양품 매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마치 고요한 자작나무 숲 한가운데 서 있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인양품의 디자인이 깔끔하고 모던하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션을 담당한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무인양품에서 추구하는 디자인이란 단순히 깔끔하다거나 모던한 것이 아니라 텅 비어있는 것, 즉 여백의 미의식이라고 말한다. 무인양품이 지닌 침묵은 너무나 많은 것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의 삶에 작은 여백이 된다. 그것이 침묵이 지닌 힘이자 또한 이 소란한 시대에 무인양품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 시대는 너무 소란하여 때로는 깊은 침묵이 절실하다. 그 끊임없는 소음에는 브랜드의 외침도 포함되어 있다. 광고와 디자인이 브랜드과 사람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고 했을 때, 침묵은 비단 미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소통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로는 온갖 화려한 수사들로 치장한 문장들보다 침묵 속에서 다듬어진 단정한 한 문장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침묵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그다음에 오는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이러한 침묵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오로지 안도 다다오나 하라 켄야와 같이 특별한 인물들에게나 가능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지녔다면 누구라도 침묵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다.



침묵은 인간이 지닌 본성이다. 누구든 침묵의 경험이 필요하다. 긴장과 이완으로 움직이는 몸을 생각해보자. 긴장이 가득한 몸에 이완이 필요한 것처럼 이 시대의 소란에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인간의 감각은 너무나 많은 자극에 황폐해졌고 더 이상 무엇도 감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태양이 뿜어내는 풍만한 생기를 느낄 수도, 바람이 연주하는 나뭇잎의 울림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 침묵이 아닌 경험의 과잉은 인간 본연의 능력을 퇴화하게 만든다. 결국 인간이 원하게 될 가치있는 것이란 침묵이다. 침묵은 이미 지쳐버린 감각, 끊임없이 소진되는 삶을 회복시키는 생명력을 지녔다. 이 시대는 침묵의 시간을 낭비라고 규정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다면 삶에 놓인 충만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도 무수한 전단지 속에 파묻혀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끊임없는 움직임만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삶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직 무용한 침묵만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침묵은 아름답다.     



브랜딩에서도 침묵은 특별한 가치가 될 수 있다. 모든 브랜드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에 바쁘지만 소음이 되어버린 브랜드 보이스 사이에서 고객에게 가치있게 여겨지는 경험은 브랜드 고유의 침묵이다. 그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고 자연스러운 욕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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