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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튼 Jul 19. 2022

망설이게 되는 이유

데일리드로잉 #4 2022.07.11 - 2022.07.15


어제보다 나아지지 못했을까 봐 어제의 실수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했을까 봐

그런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인터넷 방송을 켜놓고 반나절이 지나도록 멍 때린다.

그림은 그리지도 않는다.

간신히 캔버스를 열고 브러시를 긋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이대로 간다면 내가 그렸다고 어따 말하기도 창피한 그런 그림이 나올게 분명하다.

손을 더 움직여 본다 한들 손목만 아플 뿐 나아질 게 없다.

밖에 나가 바람을 쐰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그렇게 못 봐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쫌만 다듬으면 괜찮은 게 나올 거 같다.

그러나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내 판단이 틀렸음을 확인한다.

파일을 지우고 휴지통까지 비운다.

내가 한 건데 그게 구리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마음 아프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는 관심을 주지 않으려 애쓴다.

다시 새 캔버스를 연다.

하지만 조건반사처럼 곧장 알트 탭. 웹브라우저로 자리를 옮겨가

남이 그린 그림들을 관음하며 시간을 때우다

맘에 드는 이미지를 발견하면 다른 이름으로 저장 저장 저장

강박적으로 수차례 반복

바탕화면에 빼곡히 찬 파일들의 뭉테기

날이 저물었는데 아직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뜻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객관적인 퀄리티도, 내 주관적인 기준도, 내가 지금 어쩌다 왜 이러고 있는지 그 이유마저 헷갈리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음악을 켜고 과정을 작게 쪼개기로 한다.

러프 다음은 라인이고 라인 다음은 채색이고 채색 다음은 보정.

마지막에 완성 비슷한 뭔가 나오긴 나온다.

온종일 이런 잡념들과 치다꺼리를 하며 정이 들다 보니 내가 그린 게 구린 건지 좋은 건지 아예 판단할 수가 없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그리고, 그러다 하나 괜찮은 게 얻어걸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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