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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이 있다 없다

뒤끝이 있는 그와 그냥 참는 그녀

by 그림책미인 앨리

'또 시작이군, 시작이야.'

잊을만하면 그는 서운했던 일들을 기억 서랍장에서 꺼내 상대방 허파를 뒤집어 놓는다.

스스로는 장난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안다.

그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가 처음으로 그녀 집에 간 날, 장모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케이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 아픈 말은 하지 않길 바랐지만 장모는 그녀가 아깝다는 듯 놓치기 아까운 자리를 이야기하며 그의 자존심을 뭉개버렸다.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는 아직까지는 그때 일을 잊지 못하는지 한 번씩 농담 삼아 꺼낸다.

경제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싫을 때마다 "그때 장모님 말 듣고 다른 공무원이랑 결혼했으면 지금보다 편안하게 살지 않았겠어?" 하며 괜히 그녀 속을 긁는다.

순간 일그러지는 그녀는 차디찬 얼굴로 그를 쏘아본다.

"이제, 그만 좀 해.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거야!" 그녀 눈치를 살피던 그는 "농담이야, 농담" 하며 어긋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저장했다가 툭툭 도로 내뱉어 그녀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이사 가자는 이야기에 버럭 화를 내며 남들은 아내가 알아서 집도 넓혀가는데 그것까지 자기가 신경 써야 하냐며 씩씩 거린다. 그 뒤로 이사 이야기는 그녀 마음속에 담아 버렸다. 대출받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는 그였기에 현금이 없는 현재 이사는커녕 리모델링도 꺼내지 못한 그녀다.

한 번은 집을 좀 넓히고 싶어 안방 침대를 옮겨놓다가 집이 발칵 뒤집어졌다.

마음대로 옮겼다는 이유로 정해진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버럭 화를 내는 그에게 한 소리 한 그녀는 도로 원상복귀를 해야 했다. 침대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에 그녀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켰다.

그 뒤로 그녀는 그에게 스쳐 지나가는 일도 말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녀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남편한테 한 소리도 못하는 그녀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괜히 말해봐야 그녀만 손해고 그를 고치지 못하기에 그려려니하며 사실 포기한 상태였다.

그녀라고 뒤끝이 없었을까? 넘쳤지만 참았다. 왜?

그래도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했기에 참는 방법을 택했다. 대신에 그와 대화를 자연스럽게 줄였다.

그와의 대화보다는 책 읽기에 집중했고 혼자 지내는 시간을 즐겼다.

혼자 잘났다는 듯이 생각하는 그에게 그녀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말해도 그에게 그녀는 설명을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핀잔만 들어 그녀만의 방법으로 부딪히는 일을 줄였다. 하지만 그녀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참다가 참다가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그녀이기에 최대 용량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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