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소생,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처음 해보는 일에 겁을 내는

또 그런 서타일은 아니지만서도.




그래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가야만 하는 길은

다리가 천근만근인데


그럴 때마다 외우는 주문이 있다.


"이 시간만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고 오자."


보통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만나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마음을 비우고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일단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자

생각하고 간다.



그런데 이런

내장부터 끌어올린 나의 순수한 노력을

개인적인 호감이라고 생각해서

너무도 용기를 내어 다가오면 몹시 곤란하다.




소생은 기본적으로 거리 있는 관계를 좋아하고

그 거리가 유지되어야지만 계속 재미있고 친절할 수 있다.



그 만남의 시간 동안

재미있(으려고 노력하)고 친절한 이유는


소중한 내 시간을 쓰레기처럼 버리기 싫기 때문이다.







같은 아파트 살면서

수영장 셔틀 몇 번 같이 타고 다녔다고

왜 자꾸 안 나오냐고 날마다 전화하시던 그 아줌마,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데,

걱정된다고 내 입원실까지 어떻게 알고

과일 사들고 찾아오신 그 분...


첫 만남에 할 말 없어서

인생 푸념 좀 했더니

혼자 심각하게 내 인생 짐작하고

예수인 양 친히 나의 죄를 사하려고 하셨던 그 분...


갑자기 고현정 딸 답변이 생각났다.


- ㅠㅜ부모님 이혼하고 오빠랑 그래도 힘들었을 텐데 버텨준 거 너무 기특해.

이젠 좋은 엄마도 다시 생겼으니까 계속 행복한 일만 생겼으면 좋겠어


답변: ㅋㅋㅋ 고마워 근데 니가 날 왜기특해해? ㅌㅋㅋㅋ






어쩌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거리를 두는 법을

아직도 잘 터득하지 못한 것인지도.



불혹이 넘은 나이지만

사실, 인간관계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은

불과 일이 년 전부터니까.






요즘은 많은 것을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막 사는 건 아닌데,


다음번에 또 기회는 있을 것이고

그때는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시도해 보자, 뭐 이런 마음가짐.


인생은 낱개 포장이 아니라

쭉 가는 거니까.







자신의 의도가 선하기만 한다면

상대의 취향이나 감정 같은 것은

깡그리 무시하는 그 폭력성이 가끔은 무섭다.


물론 나도

내가(나만?) 좋아하는 누구한테는 그랬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런 상황들에 대처하는

내가 깨달은 방법은

내 패이스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선을 굉장히 굵고 진하게 그어 드리는 것.

가끔 잘 안 보이는 분들을 위해.


뭐,

귀 잘 안 들리는 할머니한테

크게 소리 지르며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거다.

그렇다고

내가 할머니한테 화내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

내가 잠시 잊고 있었네.

어쩌라고 정신.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나와 맞는 사람은 적다.


그렇게 모래사장의 500원짜리 동천처럼 힘들게 찾아

아직 내 옆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고마워지는 시간.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쁜 와인도 없는 것처럼.

그냥, 내 취향이 아닌 것일 뿐.




소생, 마더 테레사도 아니고

남은 여생

홍익인간 정신으로

나에게 두루두루 좋은 게 좋은 것을 강요하며

살기는 싫다.


어쩌라고.


그러니까, 우리 진짜 선은 좀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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