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는 것도 같고, 아직은 아니라고 우기는 것도 같은 이런 계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온도를 가지고 있다. 쿨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런 온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불 때문이다.
아침에 눈뜰 때나 밤에 잠들 때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며 느끼는 그 감촉이 좋다. 그러려면 온도가 좀 낮아야 한다. 그래야 이불을 목까지 덮었을 때 더 포근하니까.
결국 차가운 공기가 좋은 이유는 이면에 따뜻함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 아닐까.
손과 발이 차가운 나는 청소년기 이후로 가끔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손발이 따뜻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나게 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손이 차가운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굳게 믿기도 했다.
더불어 털이 많은 여자가 미인이라는 둥, 흠. 그런 이야기를 왜 그렇게 당당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스스로 미인이라 여긴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연애시절 남편은 "우리 집 시월드는 괜찮을 거야. 우리 엄마 엄청 쿨하거든."이라고 말했지만 남편이 틀렸다. 시어머니는 절대 쿨하지 않다. 따뜻함이 넘쳐 뜨거울 정도다.
사실, 자식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작지 않음이 느껴질 때면 그 부담감을 일부러 모르는 척 '빙썅' 버전을 시전 하곤 하는데, 그걸 아마 다 눈치채고 계시는 것까지도 나에게 전해올 때면 냉랭한 한기가 느껴진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것은 쿨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한기가 느껴지는 뜨거움이랄까.
그리고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임신이 잘 되었다. 손발이 차가워도 애 낳는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주변에 난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인생은 그렇게 딱딱 떨어지는 정답 따위는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더불어 시어머니의 쿨함과 뜨거움 사이의 온도차이는 아직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정답은 없으니까 그렇다. 남편에게는 쿨하다는 게, 나에게는 냉기로 다가오는 일이 많았다.
살아보면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시절이 있는데, 마음이 헛헛할 때는 가끔 사람이 그립다. 원래 사람들과 같이 무엇인가는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이런 계절은 함께 먹는 밥이 그립고, 함께 나누는 대화도 그립다.
뭐든 따뜻한 것이 좋다.
따뜻한 글을 쓰고 싶지만, 서늘한 인류애가 넘치는 스릴러작가가 꿈인 것처럼 삶은 모순적이다. 쿨한 시어머니는 없다는 것쯤은 아는, 결혼 십 년 차지만 남편은 여전히 "우리 엄마는 안 그래"같은 말을 하곤 하니까, 누군가에게는 그게 정답일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바꿔줄 생각도 없다.
생각해 보면 낙엽을 좋아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내가 낙엽을 좋아한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또 나보고 별나다, 이상하다고 말하겠지. 나는 늘 이상하고 별난 사람이었으니까 이제는 그런 말을 들어도 감흥이 없다.
이렇게 한 해가 또 저물어 가니까 멜랑꼴리 해져가지고 낙엽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나는 여전히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다가도 역시 독특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그래도 낙엽비가 내리는 계절은 짧아서 좋고, 쓸쓸해서 좋다. 쿨하던지 웜 하던지, 그런 게 정해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사실 봄도 좋아하고 여름도 좋아하고 겨울도 좋아한다. 그저 이 계절도 좋아할 뿐이니까. 모순투성이의 인간이라서 모순적인 글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계속 쓰고 있는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를 뿐이다.
그냥 좋은 게 제일 좋은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