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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만 가면 다 될 줄 알았다

— 그런데 먼저 무너진 건, 아이의 마음이었다

by 팬지


요즘 부모들은 다들 대치동으로 향한다.

아이 교육 잘 시키려면 거길 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아이 네 살부터 ‘4세 고시’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된다.


영어유치원 테스트를 준비하려고

기저귀 찬 아이가 과외를 받는 사회.


강남 3구, 좋은 학군, 의대 루트…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해야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부모도, 아이도

버티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얼마 전, 아이를 다 키운 선배와 교육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도 국내외를 오가며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자녀 교육에

온 힘을 쏟았던 분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잘할 줄 알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공부를 놓아버렸다고 한다.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대치동으로 돌아와서는

적응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은 스스로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건, 대학에 가서야

비로소 자기 속도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시간을 잘 견뎌준 아이가…

지금은 그저 고마울 뿐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켠이 조용히 아려왔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견디기 힘든 구조 속에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통계에 따르면

강남 3구에 사는 9세 이하 아동의

우울·불안장애 진단 건수는

4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들 이렇게 하니까, 너도 참아야지.”

그 말로 아이의 신호를 무심히 덮고 있진 않는지.




만약 아이들이 우리를

직업, 자산, 학력으로 줄 세운다면?

상위 1% 자산가가 되라며

매일 다그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매일

아이에게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런 건 아닐까.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 대단한 걸 해주긴 어려울 수 있다.


비싼 학원에 보내고

유명 강사 찾아 붙이는 일은

사실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은 일이다.

많은 노력과 시간, 돈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부모,

그건 누구나 될 수 있다.


줄 세우지 않기.

성적표로만 판단하지 않기.

아이의 속도를 다그치지 않기.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기.




성적과 스펙으로 줄 세우는 세상 속에서,

아이를 하나뿐인 존재 그대로 바라봐주는 일.

그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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