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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영 Mar 08. 2020

상벌점제의 미학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

중, 고교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상. 벌점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 중에 몇몇은 상, 벌점제에 익숙해져 20대의 인간관계에 적용하고 있다. "아, 이 사람은 몇 번째 이러는 거야. 손절해야겠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선택은 가장 합리적인 것 같지만 결국은 한 사람의 인간관계 장은 굉장히 좁아지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손절의 대상이었겠지.(그렇다고 이 같은 방식이 참된 우정보다 더 열등하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닌 모든 학교의 시스템은 상과 벌이었다. 그리고 두발 단정과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을 것 등 다소 현실에 실정에 맞지 않는 조례도 있었다. 중 교교 시절, 나는 상벌점제를 굉장히 옹호했다.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통제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상벌점제를 상식으로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에 규율로 삼기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재상에 서서히 스며들어 닮아갔다. 그리고 이미 FM처럼 살아온 세월이 길어, 하루아침에 상, 벌점제 같은 규율이 없어진다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매일 교복을 단정히 입고 갔고 이름표를 챙겼으며 벌점 1점을 받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교문에 들어왔다.(그럼에도 지각 횟수는 생각보다 많다.) 8시 45분에는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고 적어도 9시 10분 안에 교문 안에는 들어와 있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생활했나 모르겠는데, 나는 벌점을 받지 않도록 생활했다.

우리는 벌점을 탕감할 수 있을까?

교내에 징계를 거쳐 많은 벌점을 받은 사람들의 학번과 이름의 일부를 가린 채 학교 게시판에 붙곤 했다. 벌점 30점은 예삿일이고 50점 이상인 벌점도 보았다. 많은 벌점의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러한 벌점에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경각과 공포심을 가지라고 붙여놓은 거기도 하다.) 나는 성실하니까 나의 인생에 징계나 다량의 벌점이라는 경우의 수가 없을 거란 오만과 함께 말이다. 성명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몇 다리 건너면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벌점자의 이름과 일탈 내용이 회자되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 그들에게 벌점을 탕감하도록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분류케 하는 흰색 역-대자보에 윤리적 의심이 생겼다. "이것의 주체는 누구일까?", "진짜로 행위의 도덕성이 상과 벌로 제대로 평가되는가?", "상과 벌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학교를 다 졸업한 지금에 와서야 이러한 글로 반성 아닌 반성을 하는가. 당시에는 지필평가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꼭 평가 위원회 같은 것은 시험 2~3주 전에 하더라.) 그리고 이러한 의심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나는 철저히 학교 내부 사람이었으니까.    

본질적으로 상벌점제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다. 벌을 상으로 상쇄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그렇게 안내하는 것.) 그리고 일정 벌점 이상이 되면 기본값 0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상과 벌은 엄연히 다르다. 상이 벌을 탕감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좋은 행위를 단지 수단으로 여기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아무개가 타인의 물건을 도둑질을 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징계 위원회에 의해 벌점 10점을 부과받았다. 아무개가 한 달 동안 상점 1점짜리 청소를 매일 하여 상점 30점을 받았다면? 그리고 도둑질에 대한 사과가 없다면 말이다. 그 사람은 타인을 두 번이나 기망한 것이다. 타인에게 도둑질을 한 행위와 낮은 정도의 수단적 선행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행동한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어떠한 개선의 의지도 없다고 판단하고 나는 아무개를 괘씸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학내에서의 시간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많은 양의 벌점이 유지된 기간이 길면 길수록 0점 이상의 상태로 가기가 힘들어진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력감을 준다. 이것은 자체적으로 본인에게 부정적인 외부의 평가를 수용하여 낙인찍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의 단점은 부정적인 편향조차도 본인과 타인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교수자들은 제자들의 행동의 개선 의지를 판단하고 그들을 격려한다. 이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나는 교습 현장이 모든 아이들의 심신을 알아채기에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셨던 분들을 기억한다.

마침,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2년 이상 학교 생활을 하면서, 못했던 것은 거의 없이(무기력해졌던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학생으로서 살았다고 자부한다. 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들도 듣고, 많은 양의 방과 후 수업도 신청하고 야자실에서 선배와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성과 보건 동아리에도 들어가고 말이다.(+택견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옥죄는 임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학생으로서 본분을 잃지 않으며 야망을 가지고 살아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더 하는 이야기:)

나는 청소년들에게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기왕에 사는 거 공연한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지지 말고, 자신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학교 안 청소년이었던 나는 성적에 대한 압박, 뒤쳐짐에 대한 불안, 가정사 등등 불행할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 실제로 이로 인해 고민도 하고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힘이 들면 자신이 믿을 만한 곳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 세상이 흉흉하니 정부기관 산하의 센터나 (약간은 부담되나 전체 금액은 아닌) 서비스를 지원받아서 고민을 풀어가도 된다. 아니면 유튜브 (무료) 플랫폼에서 고민을 털어놓거나 본인이 직접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을 알아봐도 된다.

나는 당신 앞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과 유한한 시간이 기대된다. 벌점으로 인한 죄책감이 없는 세상이라니, 이렇게 말하면 철없어 보이지만 부럽다. 나라면, 절필하지 않고, 글을 옴팡지게 썼을 텐데.(웃음)

학교 밖 청소년:좀 더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다채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는 고등 교육으로의 진학 이외에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실정에 맞게 진학을 포기 혹은 보류하거나 새로운 교육의 방법을 탐색한다.


개선 의지라는 강한 힘.

나에게는 다이어터로서 목표가 하나 있는데, 건강하게 정상체중에 도달하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래도 한 번 태어난 거 못 입는 옷 없이 원 없이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기도 한다.(웃음) 그것은 나에게 아직 먼 미래라서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더 무언가를 하려다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는 나보다, 정상체중(내가 0점이라고 생각하는)으로 건강하게 도달하는 나가 더 보고 싶다.

사실 위 글의 결론은 눈치채셨겠지만, 상, 벌점이 아니라 개선 의지였다.(작문을 수능식으로 배워서 두괄식을 못하는... 사람.)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것.

내 몸의 주인은 나, 강한 책임

요즘의 목표는 이제 다이어트를 독학으로 배워서 한계가 슬슬 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살을 빼주는 프로그램(!)에 지원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 다운 색깔을 갖는 것이다. 톤 앤 무드의 중요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패션감각!) 나만의 서사를 가진 창작물을 낼 수도 있겠다.

제 글을 정주행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도 처음부터 음울한 기운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그래서 개선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퇴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2020.3.2.(월) 85일차~2020.3.8.(일) 91일차

이번 주는 식단이 단순해서 (고기+@) 사진들을 한 번에 보기 쉽게 해 놓았어요! 오징어도 보이고 고등어도 먹었네요. 별로 안 먹던 감자나 고구마도 먹었어요(곡식, 구황작 물류).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도 있었지만 제가 음식을 차릴 수가 있어서 먹을 것이 많았어요. 잡곡밥을 한 두 숟갈을 먹었는데요. 고기랑 같이 먹으니 정말 JMT!

요새, 헬스장 운동도 못하고 집에서만 있어야 하니 체중이 야금야금 상승세네요. 그래도 치팅 한 번 하지 않고 식단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가 독하다 싶어요.

일상: 개강이 2주 미뤄졌고 또 이후 1~2주 수업은 싸이버 강의로 대체되었어요. 3월 말까지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할 듯해요. 그래도 신청서나 자소서를 쓰는 등 2월에 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좋은 일들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버겁고 힘들지만 준비하는 만큼 빛을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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