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혼해” 그 문장이 남긴 자리

오늘산책 출판사 <이밍아웃> 서평, 이혼 이후의 삶과 다정함에 대하여

by 낭만앨리

우리는 이별을 흔히 ‘마음이 아픈 일’이라고 말하곤 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실존적인 사건에 가까워요. 미국의 정신과 의사 홈스와 라헤의 사회적 재적응 평가 척도(SRRS)에 따르면, ‘이혼’은 삶에서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신체와 신경계 전체가 생존의 위협을 감지하는 수준의 충격임을 의미하죠.


에세이 <이밍아웃>은 “그럼 이혼해”라는 문자 한 줄로 10년의 시간이 끝나버린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너무 짧아서 오히려 더 오래 가슴에 남는 문장. 그 파편은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이 되어 삶을 덮쳐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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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감정의 밀도예요. 갑작스럽게 무너진 관계 앞에서의 혼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분노,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까지. 그 모든 감정이 과장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이어집니다. 덕분에 독자는 어느 순간, ‘왜 이렇게까지 힘들지’라며 스스로를 의심했던 마음이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돼요.


위협을 감지한 우리 몸의 신경계는 안전과 연결, 투쟁과 도피, 그리고 무기력과 셧다운의 상태 사이를 오가며 필사적으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저자가 경험한 감정의 파동은 바로 이 흐름 위에 놓여 있어요. 분노는 버티기 위한 방식이었고, 무기력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이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글'로 쓰며 치유해온 과정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흩어진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무너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죠. 감각으로만 머물던 고통이 문장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압도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다정에 대한 사유였습니다.


결혼 생활 내내 나와 아내는 서로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p. 69)


다정은 단순히 좋은 말을 건네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내 몸처럼 아끼는 태도라는 것을 이 책은 나지막이 환기시켜 줍니다. 이 책이 깊은 정서적 몰입을 주는 이유는 이혼, 그 자체보다 ‘그 이후’를 이야기하기 때문일 거예요.



돌아보면 이혼이라는 사건보다 ‘이혼 그 후’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사소하고 조용한 마음들이 생각보다 훨씬 깊이 닿았다.(p. 98)


거창한 위로나 극적인 전환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건네진 한 끼, 말없이 놓고 간 마음 같은 것들. 그 사소하고 조용한 다정함이 결국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듭니다. 이별의 극복은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나를 다시 세상과 연결하는 다정함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이죠.


결국 이 책은 이별의 기록이라기보다, 무너진 이후에도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회복은 상처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경험까지 포함한 채 다시 살아가는 방식에 가까워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더 다정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무심코 건넨 그 다정함 한 조각이,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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