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신간 '술래바꾸기'(낮은산) 김지승 작가
오마이뉴스에 8월 5일자로 신간 '술래바꾸기'를 쓴 김지승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링크: https://omn.kr/2519r) 짧은 인터뷰 기사에서 못 다 풀어낸 전문을 작가의 동의를 받고 브런치스토리에 게재합니다. 해당 인터뷰는 7월 27일 마포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진행했습니다.
- (인터뷰를 진행한) 오늘은 7월 27일이죠. 책이 나온 지 보름 정도 됐습니다. 인상 깊은 독자의 반응이 있나요.
"모든 책은 저자들의 삶하고 연결이 돼 있잖아요. 특히 이 책은 제가 아픈 동안에 썼다는 특이한... 어떤 삶의 기억과 연결돼있어요. 책이 나왔을 때 '수고했어', '축하해' 정도로 끝날 말을 그 (아팠던) 시기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 감회가 새로운가 봐요. 다른 말 없이 '너무 애썼다', '수고했다'고 해주기도 하고요.
'짐승일기'를 같이 했던 (출판사 '난다'의) 유성원 편집자가 신기한 경험을 했대요. '짐승일기' 때는 본인이 일을 해야 하니까 감정을 억압하고 있다가 이 책은 울컥하더라는 거예요. 그럴 수 있겠다. 자기가 '짐승일기' 편집자로서는 감정적이면 안 되니까. 그런데 다음 책이 나오고 '울컥하더라고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닌데! (웃음)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어요.
보통 칭찬들이니까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 민망한 것들이 많은데 '아, 앞으로 글을 쓰는 데도 이런 지향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던 반응이 있어요. 이 책을 읽고 변하지 않기가 힘들겠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정말 큰 말이잖아요. 내가 그런 글을 썼어!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앞으로 글을 쓰는 데도 앞에 세워놓고 생각해야겠구나, 라고요."
- 유성원 편집자님은 정말 프로시군요.
"네. 자기 업무니까 '짐승일기' 때는 그냥 '수고하셨어요' 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해를 해요. 저도 제 글에서는 그렇게 하니까."
- 글을 쓸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궁금해요. 저는 사실 어떤 부분은 작가님께서 울면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긴 했거든요.
"일단은 이게 굉장히 좀 특수한 상황에서 쓰였다는 걸 오마이뉴스 독자 분들에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일다'에 사전에 진행했던 '술래바꾸기') 연재가 정확히 그 시기랑 겹쳐요. 다들 아시는 머리 다 빠지고 토하고 못 먹고 그 시기에 연재를 '짐승일기'를 일주일에 한 번, '술래바꾸기'는 삼주일에 한 번씩. 어떤 감정으로 썼느냐보다 제 인생을 망치고 또 한편으로는 계속 재건하는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책임감이라는 걸 알았어요. 마감을 맞춰서 해야 돼, 그게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어요.
쓸 때는 통증이라는 감각이 저를 에워싸고 있으니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계속 아파요. 그런데 글을 써야 하니까 약으로 통증을 누른 상태에서 쓰는 거죠. 통증이 둔해지는 얼얼한 느낌 있잖아요. 그렇게 썼기 때문에 읽으실 때의 접근과 너무 다른 거죠. '이 부분은 슬프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 보통은 그 정도로 아프면 연재를 미루거나 글쓰기를 못 하게 되진 않나요.
"일단 약속했고요. (웃음) 사실 제가 이번에만 아팠던 게 아니라 인생 전반적으로 좀 많이 아팠어요. 몸의 변화나 통증이나 질병에 대해 견디는 법을 창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더라고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물론 어느 시기에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보낸 적도 있었고 어떤 때에는 스스로에게 숙제를 주고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적도 있어요. 글 하나도 안 쓰고 언어를 가까이 두지 않고 만다라를 열심히 그렸던 적도 있고요. 이번 시기에는 연재가 아프기 전에 약속이 잡혀 있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이 시기는 쓰면서 버텨야 하나 보다'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전제는 늘 있었죠. 편집자 분들이 독한 분들은 아니셔서 힘들면 그만두는 것이 조건이었고요. 그래서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물론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 전작인 '짐승일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아프고 나서 예전에 쓰셨던 글은 다 수정했다고 들었어요. 그 아프고 난 이전과 이후의 글쓰기가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우리가 평소에는 이런 곳에 앉아서 과거의 나나 어떤 다른 장소에 앉아있는 나를 상상하기 좀 수월하잖아요. 그런데 몸이 아프면 그 상상의 힘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이전에 썼던 글은 그 시기에는 진실이었는데 몸이 아프고 지금 어떤 시간을 버티고 있는데요. 그 글은 제가 쓴 게 아닌 거예요. 그건 현재의 제가 쓴 게 아니고 마치 남이 쓴 거를 읽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면 남이 쓴 걸 내가 굳이 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현재 나의 목소리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수정을 꽤 많이 했죠. 구성도 거의 새롭게 만들었고요. 그 시기를 통과하면서의 진실이라는 걸 새롭게 찾은 것 같아요."
- 아깝지 않으셨어요?
"언젠가는 우리 삶이 다 스쳐 지나가는 것 같고 되게 허무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을 때라도 어떤 시기에 계기가 되고 어떤 관계에 의해서 까맣게 잊었던 어떤 순간의 기억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잖아요. 글도 그런 것 같아요. 그게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가 '너 그때 썼던 글 있잖아', '내가 그런 글을 썼어?'라고. 새롭게 다시 과거의 내가 나를 위로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래서 기록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에는 담지 못하지만 남아있으니까. 그 순간의 내가 뭐라도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는 느낌. 지금 내가 가진 어떤 것들을 독려해준다든지.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지금이 아닐 뿐이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죠."
- 저희가 이메일에서 오늘 '아픈 몸이라는 수신기'라는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주고받았었어요. 실제로 아프고 난 이후에 듣는 일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수신기'라는 것은 타인의 일부를 수용해서 자신의 몸을 거치는 거잖아요.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가 궁금해요.
"굉장히 달라지죠. 코로나 같은 경우도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언어가 다르잖아요. 안 아픈 사람들은 그냥 피해 다니면 안 걸릴 거로 생각하고 자기랑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걸리는 순간 이전에 아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고 아픔에 대해 계속 표현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통증이나 질병에 대해서 우리가 언어화하는 것이 학습 안 돼 있죠.
그러니까 진짜 언어가 없어요. 아시잖아요. 아픈 몸을 표현하는 데 언어가 너무 없어서. 버지니아 울프도 에세이 <아픈 것에 관하여>에서 쓴 적이 있는데요. 거기도 그런 말이 나와요.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아니면 무언가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는 고전에서도 언어를 찾을 수 있고 참고할 만한 언어들이 너무 많은데 아픈 몸에 대해서는 너무 없다는 거예요.
정말 그래요. 병원에서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라는 말이 너무 어렵지 않나요. 묘사가 안 돼요. 아픈 몸에 대해서 수신을 하는 것이 그런 언어를 예민하게 수신하는 거죠. 사람들이 아픈 몸에 대해서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우리가 보통 잘 안 보이면 '답답하다'고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만난 분은 전혀 다른 언어를 쓰시는 데 그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보이는 건 차갑고 귀찮은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병원에서 주로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어디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일은 병원에서 대부분 일어나는 일이니 병상에 누워서 간호사 분들에게 어디가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경상도 사투리에 '우리하다'는 표현이 있어요."
- '우리하다'요?
"신체의 일부가 뭐랄까요. 둔하고 얼얼한 느낌인데요 이게 잘 묘사가 안돼요. 병원에서 여성노인 분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저도 아프면서 '저거 기록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말이 너무 잘 들리는 거예요. '짐승일기'의 많은 부분은 그렇게 수신을 해 저의 언어로 바뀌어서 나오는 통증과 질병의 언어였던 셈이에요.
그리고 다른 분들과도 아프면서 이뤄지는 의미화라고 해야 할까요. 재위치화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보통 아프다는 건요 가만히 생각하면 원래 살던 대로 제자리에서 살면서 몸만 아픈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람하고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픈 동안에도 내 위치가 계속 바뀌는 거예요. 과거의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알아듣지 못했던 말이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다시 찾아가서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죠. (웃음) 그렇게 역동적으로 자리가 바뀔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예요."
- 그거야말로 정말 '술래바꾸기'네요.
"맞아요. 그래서 편집자님이 제목을 잘 잡아주신 것 같아요."
- 관계에 대한 말이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책에서 되게 중요한 대목 중에 하나가 에필로그의 '보이지 않지만 큰 기척 없이 이 세계의 작고 약한 것들을 연결하는 데 기여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시적이고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 맺고 유동적인 몸으로 비인간, 사물과 만난다. 내게는 몇몇 여성노인들이 그런 존재로 남았다."는 부분이에요.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를 맺을 때에는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게 참 말씀드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지로서의 윤리'가 힘들거든요. 이런 거 있잖아요. '나는 윤리적으로 살아야 돼. 맨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윤리적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윤리라는 것이 관계 속에서 늘 유동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내게 어떤 위치가 주어지고 그 사이에서 발생이 되는 거죠. 결국 윤리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어떤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할 것 같고요.
우리가 도덕이라는 윤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인 질문은 '내게 주어진 내 것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에요. 여기서 '어떻게'를 결정하려면 우리 주변의 세계를 돌아보면서 하죠. 어떤 삶이 가치 있는가. 예를 들면 주디스 버틀러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삶이 애도 받을만한 것인가. 존중받을 만한 것인가. 이 세계는 지금 어떤 존재들을 보게 하고 있는가. 그런 걸 보게 되죠.
그런데 가치 있는 삶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저도 포함이에요. 아픈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고 많은 여성들이 그렇고요. 내게 소수자나 약자라고 하는 자리들이 주어지고. 그렇다면 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라는 질문이 '우리를 구조화하는 어떤 삶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가 되잖아요. 이 질문이 굉장히 아픈 질문이에요.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이 세계에서 내가 어떤 위치인지를 보여주죠.
'나는 애도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아니라는 걸 알고 그 질문으로 인해서 내가 내 앞에 등장하죠. 굉장히 베이기 좋은 질문인데 이럴 때에 누군가는 세상에서 애도받을 만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언어로 나를 확립시키는 선택을 해요. 자기계발 같은 것으로요. 그런데 또 누군가는 그 가치를 설정하고 범주를 만드는 기준을 대항하는 언어를 만들어요. 저는 후자들 덕분에 어떤 가치는 좀 무시하고 살 수 있게 됐어요.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급박하고 베이기 쉬운 질문에서 힘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세계를 봐야 해요. 나, 그리고 나 외의 어떤 이들이 있고 내 주변을 둘러싼 타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봐야 하고 손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봐야 하고요. 그랬을 때 묶여서 함께 실천하게 되는 것이죠.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주변을 둘러보고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가 타자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데 타자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타자를 내 이해의 범주 안으로 끌고 오는 것이 폭력이란 말이에요. 어떤 관계는 이해 불가능의 영역에 두는 것이 훨씬 나아요. 기본적으로 나와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 존중하는 거지요. 그저 위치가 다르니 내가 조금 더 노력해서 귀를 기울여야 되는 사람이구나, 그 정도의 관계.
그래서 타자와의 관계도 사실 안전한 사람하고만 맺고 싶어하고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상처와 베이는 순간이 있죠. 그래서 사실 저는 윤리적이려면 되게 용감해져야 하는 것 같아요. 지영님께서 그런 (윤리적인) 관계가 가능할까요, 라고 물었을 때 가능 여부는 당연히 '나 혼자 가능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건데 내가 조금 더 용감해지면 그 가능성은 올라가지만... 굉장히 힘들죠.
누구도 불편하려고 하지 않아요. 여성노인들을 뵈러 갈 때에도 내 기준에서 그런 평가를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현실적으로 여성노인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분들이세요. 일단 가난 자체가 구조화돼있고 수명은 남성 노인보다 8~9년이 길어요. 그리고 만성 질환도 남성 노인들보다 훨씬 많아요. 그런데 돌봄 노동도 책임져요. 최악인데 그런 조건으로 갖고 가서 앉아있으면 '어떡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저는 실컷 웃다가 오거든요.
그분들의 삶은 내가 판단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실 맨날 뒤통수 맞고서 와요. 나는 엄청 오만했던 거야. 그 타자 앞에서 오만한 사람이 된 거예요. 계속 '엄청 힘들겠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웃기지 않은 할머니를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인생의 끝에 요양원을 가는 것이 비참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여성노인들은 요양원 안에서도 웃어요. 다들 항암하면서 힘도 하나도 없는데 낄낄거려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세계를 너무 모르는 거예요.
내가 두려우니까 타자화해서 제대로 안 보려고 하고 그저 내가 그 가난한 노인만 안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는 높은 확률로 가난하게 살아요. 그렇다면 그 나이의 삶을 좀 재밌게 살도록 지금부터 실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는 그걸 여성노인한테 배울 수밖에 없는 거죠."
- 사람을 대할 때 개인 대 개인으로 대하는 노력. 진짜 노력이 필요한 거잖아요. 이야기 듣다가 그런 노력들이 생각났어요. 또 다른 질문은요. 책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시공간이 분명하지 않은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2010년대의 일인지 1990년대의 일인지. 그리고 한국인지 외국인지가 분명하지 않아요. 혹시 의도한 걸까 궁금했어요. 이런 서술이 실은 기사의 문법이랑은 완전 다르잖아요. (웃음) 완벽히 역전된 글을 보는 게 재밌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공간이라는 것도 문법을 가지죠. 그리고 글에 따라서 되게 중요한 배경이 되고요. 그런데 아픈 몸이라는 건 일상적인 시공간의 문법을 벗어나 있어요. 남들 출근할 때 출근 안 하잖아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솔직히 중요하지 않아요. 어느 날은 좀 덜 아프거나 더 아픈 날이고 이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죠. 어디에 있든 내가 있는 곳이 아픈 곳이고 있는 시간이 아픈 시간이에요. 과거와 현재, 외국과 한국의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을 계속 연결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흔들리고 기억이 반드시 선형적인 시간과 특정 공간 안에서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게 계속 보이는 것 같았어요.
장르에 대해서도 나와요. 처음에 책이 나오고 얼마 안 됐을 때 '짐승일기'를 어떤 분이 '소설'이라고 소개하는 걸 들었어요. 또 '산문시'라고 읽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서 저는 '술래바꾸기'도 어떻게 읽으실까 너무 궁금했어요. 그러나 제가 특정한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아요.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데 있어 어떤 장르의 문법이 적합한가라는 고민을 하고 특정 장르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술래바꾸기'는 에세이인 것 같아요. 에세이의 어원인 프랑스어 동사 에세이예(essayer) '시도하다'와 '처음 사용해보다', '경험하다', '한 번 시험삼아 해보다'와 같은 의미가 있어요. 몽테뉴가 처음 그 말을 사용하고 쓴 책 '에세'에도 철학적인 각성을 담아낸 글이 담겨 있죠. 삶의 이질적인 요소들과 관계를 맺어보기를 시도하고요. 우리가 정말 순간에 잠깐 접속했다가 헤어지고 지영님과 저도 이렇게 만났다가 각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만나곤 하잖아요. 근데 우리는 서로 정말 다른 사람들인데 어쨌든 연결해보려고 하는 시도를 하잖아요.
제가 한 시도는 그것이에요. 되게 이질적인, 세대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존재들을 한 번 연결해볼까, 연결했을 때 분명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한 번 시도해보자고. 그걸 굳이 장르로 보자면 에세이가 맞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 이 에세이는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연재됐던 '여성과 오브젝트'라는 연재를 묶어서 낸 책입니다. 목차는 모두 사물로 이루어져 있어요. 구성에 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연재는 여덟 꼭지를 했고 거기에 책에 들어갈 여섯 꼭지를 새로 썼어요. 책으로 묶일 때 다른 부탁은 안 드렸고 목차를 처음에는 의자로 마지막에는 설탕과 얼음으로 해달라고 나머지는 편집자님의 마음대로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의자'는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로 여성들이 내어주는 의자에 앉아서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초대하는 거였어요.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여성들을 앉게 해서 의자를 내어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소멸될 설탕과 얼음에 대한 것. 남은 우리가 어떤 애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글이에요."
- 의자 이야기는 완벽히 '메두사'를 구현한 것 같은데요(나는 2020년부터 '말과활 아카데미'에서 이어진 강의 '메두사의 웃음으로 -여성적 글쓰기는 가능한가'의 수강생으로 김지승 작가를 처음 만났다).
"제가 얼마 전에 제주도에 북토크를 하러 다녀왔는데 최근에 의자를 내어준 경험이나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메두사의 웃음으로'가 제가 의자를 받은 강의였어요. 저는 제도권에서 계속 공부하다가 튕겨 나와서 비제도권을 헤매고 다녔어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과 상황이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어요.
갈증이 여전하니 서울 시내의 웬만한 인문 강좌를 다 쫓아다녔어요. 특히 철학에 관심이 많으니 철학 강좌가 있으면 맨날 쫓아가서 맨 앞에 앉아 정말 열심히 들었어요. 그런데 '말과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분이 좀 눈여겨 보셨던 모양이에요. 매번 와서 맨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들으니까요. 그 분이 강의 기회를 주셨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의자를 내어주신 거죠. 지금도 '그때 뭘 믿고 저에게 강의 자리를 주신 거예요'라고 물어봐요. 정확하게 설명을 못하세요. 그렇게 의자를 받았으니 제가 또 내드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역에서도 비슷한 강의를 해보고 싶다고 요청을 하시면 커리큘럼을 짜서 드리기도 하고 도움을 드리기도 하죠. 정말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 마지막 목차인 '설탕과 얼음'은 작년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를 주제로 한 글인데 이태원 참사라는 이야기는 책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누구든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상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구조적으로 예견돼 있었잖아요.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이 벌어진 건데 저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그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말을 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거기 산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멀쩡히 앉아있다가 칼이 날아오는 거예요. '이제 거기는 못 가겠어. 찝찝해'라고요. 아니, 내가 거기 산다니까?
심지어 거기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고요. 한동안은 교통이 통제돼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택시를 타고 다닐 수가 없는 거죠. 갑자기 자기가 살고 있던 땅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 감각은 멀리서 뉴스를 보는 사람하고 너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당사자들과, 그걸 매일 봐야 하는 사람들과요. 그런데 그 누구도 배려하지 않고, 한마디씩 얹어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점점 층이 쌓이는 거예요.
추모의 일상화, 라고 하죠.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한국 사회는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인데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언니가 있는데, 언니 자녀의 같은 반 아이가 죽은 거예요. 그때 죽은 학생들의 부모들이 유골함을 아직 안고 있대요.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까 갈무리가 안 되는 거죠. 애도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거예요. 이태원 사거리에서 말하면서 서로 막 울다가 헤어진 적이 있어요. 그 마음이 어떤지 너무 알 것 같아서, 해결되지 않고 애도조차 시작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이야기하고 너무 빨리 울고 너무 빨리 끝내요. 그래서 책의 마지막 문장을 "듣고 있어요"로 끝내야 했어요. 왜냐면 우선 좀 들어야 하니까. 아직 듣기조차 시작되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도 누군가 들어줘야 애도를 시작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다들 그냥 발산하고, 그러고 잊어버리고 지나와요.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면서요. 그 추모의 속도는 적어도 애도의 속도에 맞춰줘야 할 거 아니에요.
(어떤 유가족 분께서) 아무도 내 이야기를 안 듣는다면서 우시는데, 비슷한 또래의 어머니이신 것 같은 분이 그분을 껴안으면서 내가 듣고 있다고, 듣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자면 내가 결국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그걸 들으려면 각오해야죠. 아픈 이야기니까요. 괴롭고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라 의자를 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힘들겠어요? 같이 괴로워지고 불편해지면 돼요. 제가 몸이 힘들 때는 피하고 싶은데요, 그런데 안 불편하게 이 세상을 살 권리가 나에게는 없어요. 같이 사는 세계에서 어떻게 안 불편하겠어요. 그리고 내 불편함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이태원이라 책에 쓰지 않은 이유는 한국은 사실 모든 곳에 사람들이 죽고 있기 때문이에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고 있죠. 어떤 사람이 존중받고 어떤 사람이 애도 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분은 이태원을 떠올릴 수도 있고 다른 일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서 굳이 적지 않았어요."
- '짐승일기'에 이어 '술래바꾸기'까지 가볍지 않은 무게의 책을 내고 계세요. 최근의 일상은 어떻게 돌보고 계시나요.
"최근에는 친구가 사는 곳에 다녀오느라 외국의 낯선 공항에 들른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그곳에서 '짐승일기'를 읽고 있는 걸 봤어요. 타국의 공항에서 저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책을 읽는 한 여성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어요. 그 표정을 떠올리면 얼굴에 약간 열이 오르는데요, 부끄러워서도 있지만 들뜨기 때문이에요. 내가 가지 못해도 책은 가는구나, 하고요. 저처럼 집 밖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최근에는 일주일에 2~3일은 병원에 가고 있고 항암 부작용으로 오는 장기들의 증상에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그러느라 내 몸은 점점 느려지는데요 책은 저보다 빠른 것 같아요."
-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술래바꾸기'는 어떤 분들이 읽어주면 좋겠어요?
"지금 누가 일방적으로 술래인지를 좀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약자들처럼 계속 끊임없이 존중받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술래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술래도 돌아가면서 하다 보면 그 의미가 바뀔 수 있어요. 주체적으로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지금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술래를 하니까 술래 자체가 피하고 싶은 무언가가 되잖아요. 그런데 사실 술래는 돌아가면서 해야 하고 놀이는 계속되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