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백](후지모토 타츠키)을 ‘읽고’
챗GPT 등의 AI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었다. 소위 지브리풍으로 뒤덮은 프로필 사진이 탐탁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잠시나마 무료로(일단은) 즐길 수 있는 유행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떠올린 건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막 그림을 그리려는, 글을 쓰려는, 작곡을 하려는, 외국어를 배우려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그럼에도 재능을 찾으려는 이들.
무엇이든 숙련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내면의 무언가를 찢어내는 고통의 과정 역시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런 찢어내는 고통 없이도 이미 AI는 몇 번의 클릭으로 80점 정도의 결과물을 내고 있었다.
AI와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숙련이 필요하다. (AI를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글과 그림의 구현 정도를 뜻한다) 그러나 몇 초만에 숙련이 필요한 그림을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AI 앞에서 우리가 이렇게나 유한한 몸으로 숙련을 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것도 개인 맞춤형으로 온갖 것을 생산하는 일을 당해낼 수 있을까?
우리가 [룩백]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컷은 만화가가 되려고 분투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구부정한,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의 등이다. (그럼에도 스툴을 써서는 안된다….! 의자를 교체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장면은 숙련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필요한, 그래서 결국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이다. 책을 다 읽고서야 비로소 제목인 ‘룩백’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아직 영화로 보지 못했는데 꼭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