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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Dec 25. 2020

캐럴은 듣지 않고,  연락은 반갑지 않아요

괜히 옆구리가 시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락이 있다.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 더 이상 반갑지 않은 연락이다.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만 남긴 채 이별을 고했던 당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모든 연락 가능성을 차단한 상태였는데, 기억 코 어떻게 그 먼길을 돌고 돌아 내게 다시 연락이 닿게 되었을까.

SNS의 단점이 지난 사이도 쉽게 꺼내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가벼운 손 터치 하나에 평온했던 마음이 전쟁이라도 난 듯 복잡하게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연락할 용기를 내었는지, 외로움 마음에 충동적으로 보낸 건지 정확히 내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그 가벼운 손놀림은 예전만큼 유쾌하지 않다.


'심심하니까 그냥 한 번 한 거겠지.' '할 일이 참 없구나.'

라는 생각으로 넘겨온 여러 연락들이 있었지만, 유독 이 연락은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독이 든 성배였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기 전 오히려 잠을 깨운 반갑지 않은 연락이었다.


그가 커플이라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새벽에 굳이 내게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거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나도 홀로 성탄절을 맞는다고 해서 답을 할 이유는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유독 내게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괜히 들떠있기는 했지만 평범한 하루와 다름없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많은 연인들은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되고, 온 세상이 낭만적으로 보인다. 눈까지 오면 그 행복감은 배가 된다. (이번 연도엔 안전하게 집에서 보내는 게 더 좋을 듯하다.)


그런 날 나는 사랑하는 한 사람과 이별을 경험했다. 온 세상이 로맨틱하고 따뜻해져도 내 마음은 유독 차가웠고 가슴은 더 시렸다. 영하 18도보다 추운 날 같았고 180만 원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보다도 쓸쓸하고 외로웠다. 절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크리스마스의 로맨틱한 하루를 믿지 않았다. 내게 그저 평범한 하루일 뿐이었다. 그 악몽을 잊으려 그와 헤어진 후에도 될 수 있으면 여럿이, 혼자 쓸쓸하기보다 함께 활기차게 보내왔다. 지옥 같은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애써 노력한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캐럴은 듣지 않았다. 수많은 캐럴 명곡들이 있고, 크리스마스에 안 들으면 왠지 서운한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송도 종종 들려오지만 캐럴은 찾아서 들을 만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노래를 들으면 남들처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거라 상상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 성대한 둘 만의 파티를 망쳤던 사람을 원망하게 되고, 잊고 살다 상처를 줬던 날도 기억나게 했다. 여러모로 캐럴을 들어서 내게 좋을 건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길었던 일 년을 마무리하는 날처럼 느껴진다. 그 시간들을 내려놓기가 마음이 한결 더 무겁다. 한 건 별로 없는데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고, 노력 없이 먹은 나이들이 부끄럽다.


여전히 캐럴도 신나지 않고 오는 연락도 반갑지 않지만,

특별하지만 평범한 오늘 하루, 행복해져요 우리:)

괜히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고, 환하게 웃을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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