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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Apr 29. 2021

김치찜, 기다림이 필요해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 같이 먹으면 맛도 좋고 기분도 좋다. 궁합이 맞는 여러 음식 중 단연 궁합이 가장 좋은 것은 삼겹살과 김치다. 고기에 김치만 있으면 어떤 음식이든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고, 어느 때보다 흰쌀밥 가득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고기와 김치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든, 김치찜이든 어느 음식에나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엄마의 손 맛이다. 요리를 하는 누군가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아무리 공을 들였어도 제 맛을 낼 수 없다. 1년을 위해 고생고생 해 만든 김장 김치를 꺼내고, 맛 좋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김치찜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궁합을 자랑한다.


평소 아무리 많은 밑반찬에 식탁에 차려져 있어도 메인 요리가 없으면 아쉬웠다. 김치찜은 조리 과정도 복잡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었고, 그 어떤 반찬보다 손이 자주 가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 메인 요리 특성상 한 끼에 한 번 먹으면 금방 사라지는 음식이었지만, 한 끼를 든든하게 먹고 알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김치찜은 충분한 음식이었다.


김치찜은 조리과정은 복잡하지 않지만, 기다림을 알게 해 준 음식이다. 무슨 음식이든 완성되기 전까지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냄비 밑바닥에 돼지고기를 깔고 그 위에 잘 익은 김치 1/4쪽을 얹은 후 약간의 양념만 넣어 주면 김치찜 요리는 끝이다.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김치찜을 먹기 위해서는 최소 두 시간 정도는 푹 끓여 줘야 한다. 고기가 익고, 김치가 어느 정도 숨이 죽고, 양념이 고기에 베어 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인내의 시간이다. 배고픔에 입맛을 다시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완벽하게 푹 익어 맛있는 김치찜을 먹기 위해서는 버텨내야 한다. 아무리 불을 세게 해 봐도 소용없다. 냄비 밑바닥에 있는 고기만 탈뿐, 전체적으로 맛의 조화를 이루려면 적당한 불 세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늦었다고 생각했다. 멈춰 있을 시간이 없으니 뛰어가도 모자라다 생각했다. 재수를 했으니 남들보다 빨리 졸업해야 한다 생각했고, 졸업도 하기 전에 준비도 안 된 상태로 취업 시장에 발을 들여야 했다. 남들은 취직을 하는데 여전히 나는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을 때, 누구는 취업 준비에 매진하는 데 다시 학생으로 되돌아 갔을 때도 그랬다. 나이는 점점 쌓이는 데 이뤄놓은 경력이 없는 것 같을 때, 친구는 결혼 준비를 하는데 모아 놓은 자금이 부족해 보일 때, 월급은 쌓이기도 전에 새어 나가는 것만 같을 때도 비슷했다. 남들보다 뒤처져 있으니 빨리 끓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이 끓기 위해서도 100도까지 올라가는 데도 단계가 있는데, 과정은 생각도 않고 속도에만 신경 썼다. 맛있는 김치찜을 만들기 위해서는 김치찜이 완성되는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오히려 더 오래 푹 끓일수록 맛은 깊어졌다.


나도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요리 레시피처럼 몇 분, 몇 초의 시간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몇 시간이 더 걸린다 해도 그것은 온전한 맛을 내기 위한 시간일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있고 진한 맛을 내는 사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끝이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끓을 것이고, 요리는 완성될 것이기에 그 기다림의 과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김치찜은 나에게 그 기다림의 미학을 알려주었다.



https://www.instagram.com/essay_1_spoon/

https://youtu.be/MaLxwSUthww 


오늘도 맛있게 먹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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