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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Aug 21. 2021

수프,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뷔페를 가거나 레스토랑에 가면 제일 먼저 골라 먹고, 제일 먼저 나오는 음식이 수프다.

보통은 애피타이저로 메인 요리를 먹기 전 입맛을 돋운다. 혹은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달랜다.

한 끼 대용으로도 적합한 수프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음식이다.


방역 수칙이 갈수록 강화돼 서로 간 따뜻한 인사를 나눈지도 오래다. 만남 자체가 별로 없으니 인사를 나눌 사람도 손에 꼽는다. 예전 같으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들에게도 인사한 법 건넸을 법 한데, 요즘은 멀찍이 떨어지는 게 더 익숙하다. 그리고 차가운 침묵마저 낯설지 않다.


게다가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니 서로를 알아볼 여유도 없다. 사람이 사람을 인식하는 대부분의 경우가 눈이라지만, 눈만 보인 상태로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기도 어렵고, 모른 척하기도 쉽다.


익명에 기대어 사는 기분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익명이 존재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음으로 이끌 악플도 서슴지 않게 달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익명의 세상이 마스크를 쓴 현실과도 같으니, 우리 역시 따뜻한 인사는커녕 날 선 눈빛만 오가는 것 같다.


수프는 따뜻할 때 먹어야 가장 맛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는 수프는 크루통이 살짝 올라간 양송이 수프다. 바삭한 크루통보단 수프에 젖어 살짝 눅눅해진 상태로 먹는 걸 좋아한다. 눅눅해진 크루통은 용서할 수 있어도 차가워진 수프는 용납 불가다.

수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먹기 좋은 온도다. 너무 뜨거우면 혀에 데어 먹기 힘들고, 그렇다고 또 너무 식어버리면 수프의 고소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수프는 적은 양으로도 큰 행복을 준다. 식전에 먹는 수프는 그리 많은 양은 아니어도 적당히 포만감을 준다. 수프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작은 말 한마디, 따듯한 눈길과 관심으로도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매일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택배 물량을 받고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그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를 느끼고, 뒤늦게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지그시 눌러주는 작은 움직임은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몇 년 전과 다르게,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 비대면 소통에 익숙해지면서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서인지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감정 대신 무뚝뚝한 반응들이 많아졌다. 어쩌면 대면이 주는 따뜻한 교감적인 소통이 벌써 낯설어서이지 않을까.


나 역시 비슷한 것 같다. 얼굴 전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환경에 더 뾰족하고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내가 따듯한 사람이 되기도 전에 남에게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못하듯, 수프를 먹을 때도 내가 누군가에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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