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
대부분의 한국 영화 사회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간다. 남성 중심의 서사가 강력하고 제작 현장만 해도 대부분은 남성이 많다. 뻔한 서사의 영화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의 나열에 어느 정도 지친 관객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예컨대 윤가은, 이옥섭, 김보라 감독과 같은 여성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여 꽤 흥행하고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여성 감독들의 시선으로 본 그들의 영화가 이전에는 소홀했던 여성의 감정에 주목하여 서사를 전개하기도 하고, 전형적인 영화 장르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것에 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굳이 여성주의를 앞세우거나, 페미니즘 영화로 불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전달하는 영화가 등장했다. 그 영화는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다. 소설이 출간된 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개봉했다. 영화화되기를 확정 짓고 영화가 개봉하기 전, 배우의 캐스팅 과정까지 국민청원까지 올라올 정도로 모두 논란거리였다. 개봉한 후에도 여전히 논란거리였다.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이슈였던 페미니즘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이렇게도 많은 논란의 중심이 된 이유에는 원작 소설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여성 주인공인 ‘지영’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성차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영화란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수백 가지의 감정과 감상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공감의 부재의 원인을 찾고,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의 장편 소설로 2016년 10월에 먼저 출간되었다. 1982년생 경력단절 여성인 주인공 김지영의 일대기를 쫓으며 김지영의 삶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맞닥뜨린 차별과 불평들의 문제를 그려내었다. 보통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은 2016년 이후 국내에서 페미니즘 대중화가 이루어지던 시점과 맞물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출간 2년 만에 100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돌파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포스터의 부제로 나와있듯 모두가 알지만, 자세히는 아무도 몰랐던, 모른 척 외면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젠더 이슈를 건드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만큼 예민한 문제라서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 원작의 감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소설 속 글로 읽었을 때 보다 영상 이미지로 재현했을 때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여 영화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이 겁이 나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1982년에 태어난 주인공 ‘김지영’을 중심으로 그녀의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그리고 또 담담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지영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 현재의 모습,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 시어머니, 직장동료들의 상황과 관계의 모습에서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지영의 마음이나 상황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하는 남성들의 시선들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다들 겪었던 일이며, 그렇게들 살아간다고 치부 해버 리거나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시대의 자신의 삶을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이며, 자신이 하고 했던 일들을 해나가려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로 볼 수 있었다. 이야기가 여성 인물들에 집중했다고 해서 이것이 젠더 갈등을 조장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로 보고 공감을 하지 못했던 부분이 이런 부분들이 아닐까 싶다. 남성, 여성 모두 자신이 지내온 삶을 통해 자신도 부당한 피해를 겪은 적이 있다든지, 자신만의 피해를 과장하여 표현한다든지 하는 것이 영화보다 오히려 더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 혹은 여성의 삶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한 채, 타인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그들 각자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이것을 보상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주인공 지영 이외에도 남편인 대현과 그녀의 가족들의 소통에 꽤 많은 비중을 두고 주고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손자인 막내아들만 챙기던 모습, 아들에게만 좋은 선물을 사주었던 아버지, 첫째 딸이라서 항상 배려하고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상황들을 보여주며 갈등의 요소를 보여주다가도 가족이기에 항상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필요한 순간엔 항상 서로 힘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지영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지영과 지영의 언니의 이야기를 담아내지만 이것을 보상하라고, 남성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영화가 현실적으로 내용을 바탕으로 인물들의 모습을 재현하기 때문에 젠더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영화를 보는 데 선입견과 잘못된 초점을 가지고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란 문제 상황에 처한 한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인물이 그 상황에서 어떠한 행위를 통해 진행되는 지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 영화가 지영이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서의 지영의 감정을 덤덤하게 말하며 진행시키기 때문에 젠더 갈등을 유발할 만큼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완전히 젠더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일상화된 성차별적 발언들을 하는 인물들 보여주며 영화가 그런 문제들을 꼬집어 낸다. 현실에서 성차별 문제들이 거대한 사건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체득된 일상에 공기처럼 내재된 것임을 현실적인 상황들로 보여준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선정적인 방식이 아닌 차분한 시선으로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풀어낸 영화라고 해서 작품성을 따졌을 때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굉장히 조심스러우며 고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소설 내부에 설계된 플롯을 망가짐 없이 영화의 시나리오로 옮겨야 하고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사 전부를 영상으로 옮길 수 없으니 중요한 부분만 남겨두고 전부 잘라내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원작을 대단히 감명 깊게 읽었던 이들은 실망하게 된다. 원작에서 등장했던 장면들이 삭제되고 필요하다면 새롭게 추가되기도 때문에 소설과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끈질기게 연관성을 파헤치기보다 소설의 주된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감독의 시선에 따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주의 깊게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의 플롯을 보면 지영의 과거의 시간부터 현재의 시간까지 지영의 피해 사실과 관련되어 지영이 겪어온 감정을 역순으로 전개해온다. 하지만 영화 속 플롯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영화의 핵심 소재로 떠오른 ‘빙의’를 활용하여 과거 지영의 모습과, 지영이 어린 시절 겪어야만 했던 차별받은 일화들을 에피소드 형식을 끼워 넣었다. 소설을 읽지 못한 사람이라면 ‘빙의’란 소재가 매끄럽지 못하고 감정 몰입을 방해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남편인 대현의 캐릭터도 지영의 감정을 대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서의 부수적 인물로 그려낸 비해 영화에서는 남편 대현의 캐릭터가 조금은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위해 휴직하고 육아에 전념하느라 지친 아내 지영을 위해 대현이 육아휴직을 낸다거나, 집안일 돕는다거나 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지만 빙의되는 듯 아픈 지영을 병원으로 유도하는 듯 힘든 지영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려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러한 부분들로 인해 영화적 만듦새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만듦새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아는 것이다. 우선 여성 인물이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그리고 또 제작되는 한국영화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만큼 영화 제작 현장이, 한국사회가 여성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 서툴고, 여성 인물들은 경찰이나 조직폭력배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 부수적으로 존재하는 인물로 재현되는 현실을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런 방식으로 등장하는 여성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리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작 조차 쉽지 않다. 젠더 갈등과 여성 혐오를 유발한다는 논쟁거리에도 불구하고 한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전한 것이 한국사회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분석하는데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이러한 영화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영화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여성의 감정을 깊게 다뤘던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 영화가 유독 남녀 차별을 조장할 정도로 여성 자신의 피해 사실과 감정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과장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피해사실을 주장하며 서로의 잘잘못을 가르기보다 한 번쯤은 상대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 데 한 발짝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한국사회에서 공감을 하지 못하는 두 이성이 같은 영화를 보고 대립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해결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영화를 보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