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간다. 딱 기다려라.
H를 떠올리면 반전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멍한 표정을 짓다가도 금방 밝게 웃는 사람, 무거운 분위기에 웃음을 전파시킬 수 있는 사람, 진한 화장에 어렵게 느껴지다가도 선뜻 다가와 친구가 되는 사람. H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항상 웃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 곁에서 같이 웃던 나까지도. 짧은 만남에도 당신의 세상을 반으로 나눠줄 수 있었던 H. 그 주변에서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H를 향한 마음을 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7년 전의 일이다. 같은 남자여도 반해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감미롭게 노래하는 진별이 형과 색채가 매혹적인 한복을 입고 무대 뒤에서부터 웅장하게 바이올린 켜며 등장하던 김빛날윤미 누나가 같은 '공간'에서 공연을 하던 날이었다. 그 '공간'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물씬 카메라에 집중하며 사진을 찍어대던 나는 처음 합을 맞춰보는 진별이 형과 빛날윤미 누나의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각자의 스타일대로 주먹을 부딪히는 장면에서 끓어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표현하기 힘든 그런 부류의 뜨거움이었다. 압도된 감정에 젖은 눈과 마음으로 카메라를 겸허히 내려놓았다. 이런 무대와 공간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싶었다. 주원이 형과 꿈톡 멤버들이 만들던 세상을.
그들을 다시 보기 위해 두 번째로 꿈톡 모임을 찾은 건 그 '공간'을 주원이 형이 운영하게 된 날이었다. 조금은 쌀쌀했던 밤에 아직은 낯설었던 서울을 지도앱과 눈에 보이는 건물을 비교해 가며 걸어야 했다. 선릉역 1번 출구에서 내려 포스코센터를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됐다. 늦지 않게 도착해 주원이 형과 인사하자 주원이 형은 이번에도 사진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주원이 형의 부탁보다 나의 바람으로 그 공간의 시간을 멈추었고 그럴 수 있다는 게 황홀했다. 아름다운 것을 멈추어 잡는 일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니까. 뭉근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과감하게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저번에 공연하던 김빛날윤미 누나도 보였다. 한정된 장소와 부족한 조명에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을 담는 게 힘들었지만 내가 찍은 사진으로 웃던 이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들 틈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문득 당신을 만나게 됐다. 마틸다를 닮은 예쁜 얼굴과 정말 대비되는 쉰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던 너를. 반전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H를.
단발머리에 짧은 꽃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던 H는 화장실 앞에서 처음 본 나를 멈춰 세웠다. 특별히 아는 사람이 없었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 가득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고, 나를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린 H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사진 찍어줄 수 있어요?"
처음 보는 여자의 부탁에 두 가지 의미로 놀랐는데 먼저 H는 정말 예뻤기 때문이다. 동그랗고 작은 얼굴에 귀를 덮는 정도의 짧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던 그녀는 긴 속눈썹이 눈에 띄고 생기 있는 입술과 대비되는 하얀 피부가 매력적이었다. 작은 키에도 비율이 좋아 키에 비해 늘씬해 보이고 강점을 잘 살린 코디가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 한 마디로 그냥 예뻤고, 예쁜 사람 앞에 서면 어려워지는 마음과 부탁받으면 부담스러워지곤 하던 당시의 나는 H에게만큼은 정말 해맑게 웃어줬던 기억이 난다.
놀랐던 두 번째 이유이자 그녀의 부탁에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H의 목소리가 쉰 것처럼 갈라지고 굉장히 걸걸했기 때문이었다. 냉소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남자다움이 묻어나는 H의 언성은 묘하게 친근했고 매력적인 것을 뛰어넘어 그녀의 첫인상을 단번에 반전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어려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목소리에 흔쾌히 H를 벽에 기대 세우고 자신 있게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포즈를 잡지 못해 어색해하는 H에게 편하게 핸드폰을 보라고 하며 다시 찰칵. 몇 차례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 화면에 나온 H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잘 나왔어요?"
H의 입에서 나온 명확한 단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식의 표현이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난다. 반전 목소리에 이은 반전 언행이었으므로.
우와! 개쩐다!
지금 생각하면 차가워 보이는 사람에 대한 섭입견이 있었기에 H가 아주 잠깐 불편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친근한 말투와 정직한 표현에 금세 H를 향한 마음을 완전히 오픈시킬 수 있었고 짧은 시간에 우리는 가까워졌다. H는 그 뒤로도 청년광복 페스티벌에 강사로 나오셨던 분과 꿈톡 멤버들을 불러 모으며 같이 사진을 찍었고 그때마다 아까와 같던 감탄사와 함께 소감을 남겼다. 호쾌한 탄성에 신이 난 나도 열심히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그렇게 H는 주원이 형에게 예쁜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주게 된 밑거름이 됐다.
한 순간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가고 그날은 H와 또 다른 접점이 없었지만 느껴지는 게 있었다. 다시 만나도 H는 나를 커다란 미소로 맞아줄 거라는 확신 같은 게 들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H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나보다 한 살 많다는 것. 타인의 영역에 쉽게 발을 들여놓고 그 안에 녹아든다는 것. 녹아든 마음을 웃게 만든다는 것. 올망졸망 예쁜 외모보다 훨씬 넓고 선하고 예쁜 마음을 가졌다는 것. 조금 과격한 표현마저도 애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내 예상대로 H는 꿈톡을 찾아갈 때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몇 번을 만나도 그녀는 변함이 없었고 낯선 서울에 친구가 없었던 만큼 나는 그 배려에 편하게 기대곤 했다. H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편하게 다가가 금방 친구가 됐다. 그녀가 가진 마성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H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가득했고 H 만큼이나 즐겁게 웃고 있었다.
H는 알아갈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었다. 어느 날의 뒤풀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매력에 헤어 나오지 못해 밤을 지새운 기억이 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주원이 형과 꿈톡을 위해 한쪽 눈을 감고 열심히 셔터를 눌렀고, 준비한 강연이 끝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한바탕 소란이 이어진 뒤 갈 사람은 가고 끝까지 남을 사람만 남은 딱 그런 시간이었다. 나도 더 지체하면 심야버스를 놓치고 첫 차를 기다려야 했다. 정리하고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며 가방이 놓여있던 복층으로 갔는데 그곳에 H가 있었다. 더없이 큰 소리로 깔깔 웃으며 나를 붙잡는 H가.
그 뒤에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H에게 붙잡히고 나는 남자 두 명과 H가 있던 그 자리에 합석했던 거로 기억한다. 심하게 취해있던 H와 적당히 취해있던 남자 둘은 주변이 떠나가라 크게 웃고 있었다. 드문드문 그날의 대화를 기억하면 정말 별 거 없는 대화가 오갔었는데 왜 그렇게 웃어댔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디 살아요 하고 누가 이야기하면 H가 나도 거기 알아요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옆사람 어깨를 두들겼고, 누가 뭐 좋아해요 하면 H가 그거 졸라 맛있다며 또 호탕하게 웃었다. 듣기에도 참여하기에도 이상한 대화가 이어지자 조금 덜 취했던 남자가 이게 무슨 대화냐고 의문을 품자 H는 대화가 무슨 상관이냐며 보다 더 크고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처음에 어색하게 같이 웃어주다가 나중에는 H의 웃음이 예뻐서 그 안에 빠져들어 같이 웃고 말았다. 그래 그게 다 무슨 상관이었을까 싶다. 이토록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면 대화가 무슨 상관이었을 거고, 누구와 함께 있던 것이 무슨 상관이었을까. 그곳에 있던 모두는 H에게 전염돼 같이 웃었고 나는 그 밤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같이 있던 남자 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때 나는 행복해서 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H와 함께 실컷 웃고 나서 술을 깨기 위해 잠깐 나왔을 때 찬 바람에 마음이 녹았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세상이 정지된 채였다. 나는 힘없이 풀린 육체를 계단에 의지하여 주저앉았고 다리 사이로 고개를 처 박고 엉엉 눈물을 흘렸다. 영문을 알기 힘든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고 지나가던 누군가의 토닥임이 느껴졌다. 나는 다 큰 이십 대의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고 그동안 울지 못해 속에 쌓인 사람처럼 한 없이 감정을 토해냈다.
지금 와서 가늠해 보면 그곳에 가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의 불행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사람들의 미소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이 보기 좋게 뒤섞이던 곳. 그런 사람들이 웃던 곳. 얼마간 울다가 진정이 돼 찬 공기로 세수를 하고 다시 돌아간 그 안은 여전했고 따뜻했다.
H는 그래 그게 다 무슨 상관이냐는 듯 또 그렇게 웃고 있었다. 나를 토닥여주던 사람이 H였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얼마간 행복하게 지냈던 서울을 떠나고 H를 다시 만난 곳은 제주였다. 나는 주원이 형이 안부 전화를 하던 그 밤에 반짝이던 별을 뒤로하고 세상과 잠시 단절하기로 했었다. 사정이 깊은 긴 싸움이 예상됐다. 그걸 알 리 없는 H는 언니와 함께 제주에 왔음을 알렸고, 어디에 머물고 있냐 묻고는 단번에 내가 머물던 협재해수욕장으로 오는 데 까지 긴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2층의 카페에서 만나 우리는 지나간 이야기와 안부를 묻고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잠깐의 이별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H는 달라진 것도, 다를 것도 없었다. 다음 날 나는 그녀들의 사진기사를 자처해 제주 곳곳을 누비기로 했다. 단 하루였지만 H와 함께할 수 있었다.
하루 코스 치고는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을 보냈는데 H의 언니 재력이 한몫했다. 아직 이십 대 초중반이었던 나는 H 언니의 씀씀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H는 괜찮다고 했다. 언니가 예쁘고 벌이가 좋다면서 부담 갖지 말라는데 그게 더 부담됐었지만 한편으로 안도됐다. 여행은 계획이 없던 그녀들을 위해 내가 알고 있던 곳들로 데려갔다. 그녀들은 어디를 가던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저 따라왔고 안덕에 있는 한정식 집에서 점심을 먹고 안덕계곡을 산책한 뒤 카멜리아힐에서 사진을 찍고 소정방폭포에 갔다. 마무리로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거리 부근에서 술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넘치던 에너지가 소진되어 지친 H를 보면서 ‘누나도 사람인데 지치긴 하는구나’ 색다른 모습을 보는가 싶었는데 잠깐 소파에 누워있던 걸로 다시 재충전되는 H의 천성이 놀라웠다.
H와 H의 언니는 죽이 잘 맞고 사이가 좋아 보이는 와중에 사소한 이유로 싸우고 토라지고 다시 친해지는 과정을 반복하곤 했다. 카멜리아 힐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H와 언니는 서로 껴안기도 하고 서로의 머리에 감귤을 올려주면서 누가 보면 이렇게 사이좋은 자매도 있구나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서로에게 사랑의 화살도 쏘고, 양팔과 다리를 벌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하며 곁에 있기 부끄러운 자세를 아무렇지 않게 취했다. 주변 사람들이 돌아보면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그렇게 친해 보이다가도 둘은 갑자기 서로 말도 없이 따로 걸었고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는 나만 영문 모를 표정으로 어려워했다. 몰래카메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파악될 때쯤 되면 둘은 사이좋게 흡연장에서 담배를 폈다. 담배를 피울 때만큼은 자매가 꼭 같이 있는 것을 보며 잘 이해되진 않았지만 이것이 가족이라는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았다.
그렇게 일정을 대부분 마치고 서귀포에서 술을 한 잔 한 다음 날이었던가 언제였던가 H와 H의 언니 둘 다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서로가 싸웠다면서 서로를 향한 비난과 애정 섞인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왜 싸웠느냐 물으면 "아, 몰라!" 하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던 게 기억난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 사이인데 싸웠다고 누구 편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라는 흔한 위로를 양쪽에 보내고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가족이란 관계는 왜 그런 걸까 하며. 어떻게 하루도 필요 없이 십 분이 다르게 얽히고설키고야 마는 걸까? 애증의 관계는 다 이런걸까? 역시 이해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H와의 마지막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는 딱 그렇게 헤어졌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만났던 다른 사람들처럼 육지로 돌아간 H는 우리를 가로막는 사소한 사건들과 물리적 거리에 의해 마음과 마음이 멀어졌다. H는 아마 서울로 돌아갔을 거고 그곳에서 다시 자신의 일상대로 살아갈 거였다. 그것은 순리고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H는 가끔 쉼이 필요해 낯선 섬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였기에 천만 명이 사는 도시가 훨씬 어울렸다.
꼭 가까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먼 곳에서의 인연은 자주 연락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끊기게 되는 날이 있고 각자의 바쁜 삶으로 그마저도 잊히곤 한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이미 게스트하우스에서 많은 인연들을 떠나보내면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도 H가 없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떠난 사람은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거고, H는 좀 멀리 있을 뿐이었으며, 나도 나대로의 인생에 충실해야 했다.
때때로 H의 밝은 모습이 그리웠던 적은 있다. 한없이 울적한 날에, 우울감에 허덕이던 날에, 깊은 밤에도 조용히 혼자 술 마실 때에. 그럴 때 항상 같이 웃어주던 H가 필요했다. 걸걸하고 호탕하지만 거짓 없이 순수한 행복으로 점철된 H의 미소는 주위를 밝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차라리 기다리는 편을 택했다. 수천 명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 하나,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그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을 빌리든, 인연이라는 이름을 빌리든, 어떻게 해서든, 꼭.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기 위해 잘 지내고 있어야 함을 여행을 통해 이제는 안다.
H는 그렇게 짧지만 강렬하게,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으로 반짝 찾아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나는 H를 여전히 예쁘게 기억한다.
떠난 사람을 다시 맞아주기 위해 잘 지내고 있어야 함을 아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잘 지내고 있지만은 못했다. H가 떠나고 군대체복무를 끝내기 위해 외국인근로자보다도 어려운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다니던 회사와 법적 다툼이 있었고, 치열한 공방에서 겨우 이겼기 때문에 잠깐의 여유가 있었을 뿐 팍팍한 삶은 여전했다. 나라가 옭아맸던 3년이라는 시간은 무덤덤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이 시간을 잃어버린 3년이라고 생각한다. 외롭고 고통스러웠고 울고 싶었지만, 한 번 울면 그동안 지켜온 게 무너질까 독기를 품고 버텨야만 했던 시간.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하면 무엇이 이런 상황들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불가해함을 느끼곤 한다. 회사와 싸우기 위해 기숙사를 박차고 나가 게스트하우스에 머문다는 이유로 탈영이라고 욕지거리를 내뱉던 사람들. 외국인근로자들에게도 보장해 주던 휴게시간에 대체복무라는 이유로 쉬지 못하게 했던 공장장. 그리고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그래도 군대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 비아냥되며 이쑤시개 물고 침 뱉던 사람들.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민간인이었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고 그런 일들이 나에게 벌어졌던 걸까. 아니 벌어져야만 했던 걸까. 내가 고향을 떠나 제주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갈 곳이 없는 외톨이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을 사람이라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힘없고 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달랐을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그저 상황만 남았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른 병역지정업체를 찾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함께 찾은 마트에서 나를 괴롭히던 공장장을 만난 일이 있다.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 점심을 먹지 않던 나에게 짬밥 먹을 거 회사가 주는 밥도 먹지 않는다고 비아냥되던, 나 같은 건 먹을 가치도 없다고 욕하던 공장장. 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흠칫하던 그도 분명히 나를 알아보았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떨지 않으려 애썼다.
그와 그들에게 걸었던 소송은 정당했고, 심판은 정의로웠다. 내가 나쁜 건 없었고, 당신들이 나빴던 일이었다. 조사를 했던 사람도, 심판을 내렸던 사람도, 우리를 보호하는 행정절차도 모두 그렇게 판단했다. 왜 멀쩡한 회사에 니 같은 쓰레기가 찾아와서 이렇게 시끄럽게 만드느냐고 종용을 요구하던 협박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까지 그러고 싶냐는 호소와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고 분에 못 이긴 외침까지 모두 당신이 아닌 내가 했어야 할 말이었지만, 나는 침묵하고 견뎠다. 말하지 못한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내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내가 옳았던 일이라고 합리화하고 있는 듯한 나는 당시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주눅 드는 심경을 들키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끝까지 노려보았다. 그가 자리를 피할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고 곁에 있던 딸인지, 손주인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무엇을 감추기 위한 발걸음이었을까? 작고 말랑한 손과 큰 눈망울을 가진 여자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그의 손에 이끌렸다. 저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그가 다른 것을 파괴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알고 있을까. 나를 바라보던 적대감 가득한 눈과 아이를 바라볼 때 짓는 온자한 표정을. 같이 있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멀어지던 그와 나를 번갈아보고는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멀어지던 작은 손에 데고 대답했다.
"아뇨, 내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네요."
지독하게 길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날들은 다른 지면을 빌려 기록하고 기억하겠지만, 잠깐이라도 말하고 싶었다. 모멸감과 억울함을 버텨야 했던 나에 대해. 불가해한 세상을 혼자 맞서 싸워야 했던 순간들에 대해.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런 순간에도 당신들이 생각났던 눈물에 대해.
군대체복무가 끝난 이후의 삶도 마냥 순탄하진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지금은 어느 정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벌써 5년이 지난 일이다. 시간은 의외로 빠르게 흘렀고 그간의 역사는 나를 많이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좋은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회사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주말마다 바다를 보며 풀 수 있을 정도가 됐고, 그동안 이 섬에 정착해 보려 애쓰다 보니 국가기술자격증도 15개 취득해 지금의 삶이 또 어긋나더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싶은 마음으로 살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더 큰 폭풍이 몰아쳐도 극복할 수 있게 틈틈이 공부도 멈추지 않는다. 더 이상 내가 부서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나만의 탑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런대로 살아지고 있다.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로 풍비박산 났던 시기도 지나고 잃어버려야만 했던 시간도 지났다. 바람이 섬을 뒤흔들고 지나간 것처럼 이제는 파도가 잔잔하게 일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었기에 선택해야만 하는 독기가 아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이란 뭘까. 무료하면서도 혼란하고, 잔잔하면서도 흔들리지만 그런 게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려나. 주말이면 공사판의 흙먼지를 꼭 뒤집어쓰던 시간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시간으로, 더위가 가신 저녁에도 전문서적을 넘기던 시간은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늦은 밤 술 한 잔에 억지로 취하던 잠은 고양이를 품에 안으며 잠드는 생활로 바뀌었고, 이 글을 쓰는 날도 보름달이 뜬 새벽으로 창가에 환하게 들어오는 빛을 보며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어느 날에는 나도 모르게 달빛을 따라 걷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날에는 당신이 생각날 거다. 달이 참 밝다고 인사하고 싶을 거다.
어쩌면 나도 다시 가져보는 중이다.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이 완곡한 평화에 나의 심장 소리를 키운 건 이번에도 H.
맑은 하늘에 예보 없던 소나기가 몰아치듯 정말 어떤 일말의 징조도 없이 H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것도 수년 전부터 운영하지 않고 방치했던 SNS를 통해서. H는, 6년 만이었다. 다른 사람의 소식을 들여다보는 작은 창구로 이용하던 인스타그램에서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 울렸고 H의 이름이 보였다. 가끔 연락 없던 동창들이 돈을 빌려달라거나 청첩장을 보내곤 해서 속상했는데 H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안부인사를 보내왔고 오랜만의 이름에도 먼저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게 굉장히 고마웠다.
H가 보낸 DM은 문자로 읽어도 그녀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느껴졌고, 나는 수년이 지났어도 그녀를 쉽사리 떠올릴 수 있었다. DM창이 스위치였는지 H의 서클렌즈, 단발머리, 웃을 때 옅어지던 눈, 무엇보다 독특한 H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 H와의 추억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그 문자가 문자로 읽히는 게 아닌 H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재생됐다. 그 목소리에서도 웃음이 넘치는 것은 덤이었다.
'ㅇㅇ아!!! 잘 살아있었냐!!!!! 엄청 오래 무소식이다가 스토리에 며칠 전부터 조회한 거 뜨길래!!! 반가운 마음에 메시지를 보내봄!ㅋㅋㅋㅋㅋㅋ'
스토리에 올라오는 걸 습관처럼 누르면서 옛 친구들의 일상을 훔쳐보다 H의 것까지 닿았었다는 사실과 스토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몰랐던 나는 내가 조회한 것을 스토리의 주인이 알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으며 답했다.
엄살과 반가움을 더한 나의 진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표현으로.
'죽지 못해서 살아있어요!!'
그 뒤로 H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사이답게 서로의 생활을 묻고 답하면서 무시무시한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됐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쁘고 냉소적으로 보였던 H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누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빠른 년생으로 동갑이었고 그래서 이제 누나가 아닌 H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됐다. 도대체 몇 년을 속인 거지? 또 내가 다니고 있는 그룹 회사에 대해 H도 인연이 있어 같이 욕할 수 있게 됐는데 서로가 회사에 대해 욕하는 부분이 비슷해서 속으로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그 회사의 사무실에 있었다.
그렇게 반가움을 표현하고 서로의 옛날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정말 가볍고 농담처럼 시작한 말이 번져 하나의 사건이 생길 징조가 느껴졌다. 바로 H가 제주에 다시 오겠다고 한 것. 파워 P라는 H는 무계획으로 가면 놀아주는 거지? 한마디로 포문을 열었고 특별한 일이 없어 여태 연차를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나는 흔쾌히 날짜만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정말 다였다.
H는 곧 비행기표 예매한 인증 사진을 보내고 기분 좋은 말을 들은 하루였다면서 나와 나눈 DM을 캡처해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시간은 분명 흘렀지만 그 결정과 행동은 찰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고 왠지 모를 마음이 간지러웠다. H가 다시 온다니 무엇보다 웃음이 났다. H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깜박할 뻔했다. 한다면 하는 그녀. 나도 연휴가 끝나면 곧바로 연차 인증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데 있다. 10년을 제주에서 여행 중인 나에게 이런 변화는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고 며칠간 그냥 웃음이 났다. H가 온다고? 이렇게 뜬금없이? 하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게 H다웠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몇 주 뒤에 H가 바다를 건너 섬으로 온다. 누구나 여행 올 수 있는 섬이기에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가족끼리도 오고, 친구끼리도 오고, 연인끼리도 와서 영롱한 빛을 내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높고 울창한 삼나무가 가득한 숲을 걷고, 화산 활동으로 솟구쳐 오른 오름을 걷는 건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의 여행 패턴과도 같다. 그런 일을 H와 한다고 하여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H와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건 우리가 공유하던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H가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보고 여태껏 찍어 온 사진이 모두 모여있는 외장 하드를 연결해 보았다. 16년 가을부터 17년 지나지 않은 겨울까지. 꿈톡에서 참 많은 사진을 찍었고 그 안에는 H의 시간이 많이 멈춰있었다. 복층에서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H. 단상 앞의 사람에게 활짝 웃어주는 H. 노래하는 이들을 위해 양손을 흔들어주는 H. 서로의 커피 맛을 비교하며 쓴 맛에 인상 쓰는 H. 무엇보다 술에 취해 세상에 빠져버린 미소로 가득한 수많은 H. 사진 속의 H는 정말 많이도 웃고 있었다.
H는 이렇게 이렇게 썼다.
기분 좋은 말을 들은 오늘, 그리고 되새겨보는 ㅇㅇ이와 함께했던 기분 좋은 순간들. 8년 전 꽤 오래, 꽤 자주 ㅇㅇ이의 카메라에 참 많이도 담겼다. 2015년? 2016년? 2017년? 사진이 다 섞인 거 같은데, 나 좀 늙었나 그대로인가? 저 시절, ㅇㅇ이가 찍어준 사진을 유독 좋아했었는데, 아무래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녀석이라, 그 시선 끝에 걸린 내 사진에도 그 온기가 묻어있기 때문일까.
제일 중요한 건 지난 8년 동안 내가 누나인척 했는데 동갑인 거 걸림 ㅇㅅㅇ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다가 파워 P를 입증하며 5년 만에 ㅇㅇ이 보러 제주에 가기로 했다. 비행기표 무지성으로 끊어버림!
'누나가 간다. 딱 기다려라.'
우리가 나눴던 대화와 옛날 사진을 첨부한 H는 말도 참 예쁘게 했다. 푼수처럼 굴면서도 속이 깊은 H. 그러나 H는 알까? 내가 따뜻했던 게 아니라 당신이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다시 사진 속 과거의 H를 본다. 온기는 내 마음이 아닌 그녀의 입술과 눈가 끝에 걸려있다.
몇 주 뒤면 H와 약속한 날이 온다. 6년 만에 보는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마 나의 이런 고민은 쓸데없을 것이다. H는 공항에서 기다리는 나를 곧바로 알아보고는 옛날처럼 한껏 해맑은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현할 테니까. 의심할 필요가 없이 H는 그런 사람이다.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고 서로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사람. 나는 어울리지 않게 H와 손깍지를 끼고 펄쩍펄쩍 뛰며 이게 얼마만이야 호들갑을 떨지도 모른다. 그렇게 체면 가리지 않고 반가워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2박 3일 동안 H와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일까 온종일 고민했다. 바다 앞에서 회국수와 덮밥을 먹을까, 해물 한 상을 차려 방파제에 앉아 이전처럼 술과 함께 수다를 떨까, 유명 TV 프로그램에 나온 맛집에 줄을 서 볼까, 내가 좋아하는 바다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낼까, 그때처럼 예쁜 곳에 사진을 찍으러 다닐까. 무엇을 해야 H가 좋아할까. H는 그저 웃을 테지만, 제주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아본다. 다시 또 연락이 끊기고 5년 뒤 10년 뒤 H가 돌아온데도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도록. 같이 있는 동안 행복할 수 있도록.
H 덕분에 또 깨닫는다.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 그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을 빌리든, 인연이라는 이름을 빌리든, 어떻게 해서든, 꼭.
H가 온다. 한땐 누나였고, 지금은 친구인 H가.
섬으로? 아니, 내게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