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꿈이란 무모해야 제 맛

tvn, 『나빌레라』 , 연출 한동화, 2021

by Minimum


저는요... 한 번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먹고 사느라 처자식 건사하느라 언감생심 꿈도 못 꿨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했고요. 이제야 겨우 하고 싶은 걸 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저도 잘 알아요. 제가 늙고 힘없는 노인이라는 걸... 그래도 하고 싶어요.

져도 좋으니까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이제 막 칠순을 맞이한 덕출(박인환)은 왜 발레를 배우고 싶냐는 승주(김태훈)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어린 시절 연습실에서 한 마리 새처럼 날아오르는 발레리노를 몰래 훔쳐보며 발레리노의 꿈을 가슴에 품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먹고 사느라 평생 그 꿈을 잊고 살았다. 은퇴 후 일상은 지루하기만 하고 24시간은 너무나 길기만 하다. 외딴 요양원에서 홀로 외로이 지병과 싸우던 그의 죽마고우 교석. 그 또한 이루지 못한 간절한 꿈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배 '전진호'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꿈. 그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덕출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덕출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낸다.


넌 가슴에 품은 게 있냐
지금이다 덕출아, 넌 아직 안 늦었어.
다리에 힘 있고 정신 말짱할 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칠순의 노인이 발레를 시작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덕출의 자식들처럼 부상에 대한 걱정 반, 볼썽사납다는 뒷담화 반일 것이다.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번듯하게 자라 대기업의 임원이 된 장남 성산(정해균)은 아버지의 꿈이나 진심보다는 자신의 체면이 더 중요하기에 극구 반대를 한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인 덕출이 발레를 한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이다. 덕출의 아내 해남(나문희)의 말처럼 번듯하게 자란 자식 앞에서 해준 것 없는 부모는 늘 작아진다. 번듯한 명함을 가진 자식일수록 본인이 기성세대가 되고 부모가 노년에 접어들게 되면 부모를 아랫사람보다도 못하게 대하고 큰소리치며 다그치는 자식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번듯한 자식보다는 가진 것 없어도 부모의 진심을 세심히 들여다볼 줄 알고 따뜻한 자식으로 살아야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꿈이란 이룰 수 없기에 늘 애틋하고 멀기만 하다. 체면과 편견 때문에, 나약함과 현실 때문에 포기하고 버려지는 수많은 꿈들이 우주를 부유한다. 나이가 몇이든 재능이 있든 없든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꿈을 향해 도전해 본 인생은 별처럼 빛난다. 성공해서 번듯하고 큰 행성이 되든 실패해서 작은 혜성이 되든 둘 다 빛나는 별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덕출의 표정과 몸짓에는 빛이 발하고 날개가 달린다. 발레 손동작을 연습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의 발걸음은 곧 날아오를 새처럼 가볍다. 하지만 가족의 극렬한 반대로 발레를 그만둔 덕출은 이내 빛나는 생기와 아름다운 날개를 잃어버린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노 채록(송강)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방황하며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얼떨결에 덕출의 발레 스승이 되면서 가족보다도 따뜻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덕출과 교감하면서 상처가 치유되고 서로를 응원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꿀케미를 보여준다.



언젠가부터 담백하고 순수한 마스크(소위 의느님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의 여배우들이 각종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그 트렌드만큼 반가운 것, 그것은 젊고 뛰어난 외모를 지닌 주인공들이 판을 치던 무대의 중심으로 노년의 주인공들이 점점 걸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 <윤스테이> 등 예능컨텐츠는 물론이고 <눈이 부시게>, <디어 마이 프렌즈>, <꼰대 인턴> 등의 드라마에서도 어느 순간 당연했던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이라는 편견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이 컨텐츠들은 그동안 조금은 소외되었던 노년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박인환, 김혜자의 깊은 눈매와 주름을 통해 작품의 감동은 배가 된다.

채록 : 할아버지 무용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거 알고 있죠? 근데 발레가 왜 하고 싶어요?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말 진심이에요? 왜요?

덕출 : 죽기 전에 나도 한 번은 날아오르고 싶어서...
채록아, 내가 살아보니까 삶은 딱 한 번이더라. 두 번은 아냐.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반대를 하셨고 지금은 집사람이 싫어하는데, 솔직히 반대하는 건 별로 안 무서워. 내가 진짜 무서운 건 하고 싶은 데 못하는 상황이 오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상황인 거지.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 할 수 있을 때 망설이지 않으려고... 끝까지 한번 해보려고..


또 손수건을 준비해야하나 ㅜㅜ 안타까운 복선들이 흩어지고 있다. 덕출은 그토록 꿈꾸던 백조의 호수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자고로 꿈이란... 무모해야 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