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싹 속았수다의 판타지 같은 남편, 관식이 잡는 오징어

해양인이 본 폭싹 속았수다.

by 서민혜


앞선 폭싹 속았수다 후기에서는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봤는데, 이번엔 조금 다른 시선에서 드라마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드라마 초반, 학씨 부상길 선장의 배를 타게 된 관식이의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온몸이 멍투성이에 손가락까지 다친 걸 보며 단순히 “불쌍하다”는 감정을 넘어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배를 타는 일 자체도 녹록지 않은데, 거기에 폭력까지 더해진다면? 나는 지금은 유학 와서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어업 행정 업무를 맡으며 어선 점검도 다니고, 항구에서 어업인들과 부딪히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관식이의 멍든 팔보다, 내가 기억하는 거칠고 조용한 어업인들의 말 없는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이 글은 그런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이자 드라마와 현실 사이, 오징어와 규제, 그리고 어업인의 삶에 대한 작은 기록이다.


Open Ai챗 GPT로 만든 지브리 스타일의 포스터 (왼쪽),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오른쪽)




오징어에 대한 단상


우리가 흔히 ‘오징어’라고 부르는 생물. 정확히 말하면 ‘살오징어’다. (쫀득한 갑오징어나 한치와는 다른 종이다.) 그런데 이 오징어의 생산량이, 해마다 급격히 줄고 있다.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금어기, 금지체장, 총 허용 어획량(TAC), 낚시 규제 같은 여러 제도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 보면 이런 규제가 선량한 어업인들을 옥죄고 있다는 반발도 크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이상적인 자원 관리 방안과 현실의 사이에서 타협하며 중간 지점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때때로 줄어가는 오징어의 개체수를 보면 아프더라도 자원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오징어를 많이 잡아먹었다. 1993년, 내가 태어난 해에는 20만 톤 이상의 오징어가 어획되었다. 금명이 대학 보내려면 관식이가 오징어를 꽤 많이 잡았어야 했을 텐데. 그가 제주 바다에서 혼자 배를 몰고 조업하는 모습을 보면, 연안어업—그중에서도 당시엔 따로 허가가 있던 ‘연안 채낚기’ 방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93년도 연안 채낚기는 약 2만 5천 톤 정도의 오징어를 잡았다. 이후로 한 10년 정도 연안 채낚기(이후 연안복합으로 통합)는 오징어를 제법 어획했지만 그 이후의 오징어 어획량은 뚝 떨어진다. 양관식의 어업일지에서 오징어와 관련한 부분들이 다음 선장에게 도움이 안 되었을 확률도 크다. (관식이가 제때 배를 잘 판 걸까?)



그렇다면 누가 오징어를 많이 잡았을까? 채낚기와 트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채낚기는 불을 밝혀서 오징어를 유인해서 길게 늘어진 낚싯줄로 오징어를 잡고, 트롤은 그물을 쭉 끌어서 물고기들을 잡는다. 2003년까지는 연 20만 톤을 웃돌던 오징어. 그런데 그 뒤로는 끝도 없이 줄어들었다. 최근 5년간의 생산량을 보면, 그 하락세가 얼마나 가팔랐는지 실감할 수 있다.


* 연도별 살오징어 생산량 : ('19) 51,817 -> ('20) 56,989 -> ('21) 60,880 -> ('22) 36,578 -> ('23) 23,375 -> ('24) 13,546


내가 일을 시작했던 2018년에도 오징어는 금징어였고, 해수부는 총알오징어를 먹으면 안 된다는 캠페인을 반복했고 채낚기와 트롤의 공조조업을 집중 단속하면서 꺼져가는 오징어 생산량을 어떻게든 끌어올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껏 어업 생산량의 추이를 살펴보았을 때 이런 작금의 사태는 몇 십 년간 잡아 올린 오징어의 눈물의 복수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회유성 수산자원은 국경을 넘나 든다는 점이다. 러시아, 일본, 한국, 중국—동아시아 바다를 훑고 다니는 오징어를 우리가 혼자 지킨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https://youtu.be/CHIQqtAHkl0?feature=shared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어린 오징어를 잡지 않는 것 또는 먹지 않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총알오징어다.


총알오징어가 살오징어의 새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알려주는 이도, 알려줄 창구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수산자원 보호 캠페인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해수부, 자원공단, 어촌어항공단 등에서 열심히 콘텐츠를 제작해도 대중에게 제대로 닿는 건 드물었다. 유튜브, 방송, 포털 메인에 노출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단지 '좋은 뜻'만으로는 전달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가수 윤도현 씨는 거의 페이도 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해 주셨다. 정글의 법칙에서는 직접 수산자원 보호 팔찌를 소개해주기도 했고, 우리가 기획한 캠페인을 공중파에서 방송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도움 덕분이었다. 참고로 모 유튜버는 콘텐츠 제작에 삼천만 원을 요구했지만, 우리는 그런 예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진심 어린 참여가 더 각별했다.


https://youtu.be/oA-bq_Q-Ti4?feature=shared


그렇기에 나는 드라마 속 대사 하나에도 쉽게 감동받는다. 파친코에서는 원작에 없던 다음과 같은 대사가 삽입되었다.


“큰 건 다 잡아가고, 우리는 찌끄레기 가지고 싸운다.”
“작은 거 잡아서는 안 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는 이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겠구나, 싶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진짜 방어(!)를 잡으러 금은동호를 탄 관식, 충섭, 금명이가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금명이와 충섭이가 구명조끼를 딱! 입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바다에서 조업 중 관식은 작은 고기를 풀어주고, 이를 본 충섭은 “착한 어부”라며 미소 짓는다. 하지만 금명은 이렇게 말한다.


“죽으라고 보내는 거다. 미끼 되라고~”


풀어준다고 모두 살아남는 건 아니다. 몇 마리는 미끼가 되고, 몇 마리는 공기 때문에 부레가 터져 죽고, 몇 마리는 간신히 살아 바다로 돌아간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했을까.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다시 배워야 할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