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을 맞은 늦깎이 대학원생의 하루
시험과 과제가 휘몰아치는 기말고사 기간에는 여름 방학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하지만 웬걸 그간 바빴던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국에서부터 이어진 1학기 온라인 수업도 마무리하니 시간이 붕 떠버렸다. 나는 바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붙잡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을까? 부지런히 글을 쓰고 영어 공부도 하며 시간을 보내야지. 여행계획도 세우고 미시간 호에서 수영도 좀 해야지. 공원에서 바비큐도 하고 가끔 도서관에 피아노 치러도 가야지. 지난여름에도 비슷하게 다짐했던 목록이 이번 여름에도 산뜻한 척 노트 구석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정말이지 알찬 여름을 보내고 싶다. 아마도 이 여름은 미국에 살며 보내는 공식적인 마지막 여름휴가일 테니까 말이다.
요즘은 시간이 나면, 아니 시간을 내서 아침 수영을 한다. 이사 온 아파트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다. 처음 수영장에 왔을 때 조그만 온탕에 떠다니는 땟국물을 보고 기절할뻔한 뒤로는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 수영장은 온실 같은 공간이라 주변에 나무와 식물들이 자라고 거기서 날아온 벌레들은 왕왕 물길을 따라 떠다닌다. 숨을 쉬다가 실수로 벌레를 먹을지 모른다는 건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다. 둥둥 떠다니는 작은 벌레들을 보며 매번 내일부터는 좀 멀더라도 학교 수영장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편도 30분 거리의 학교 수영장은 훨씬 깨끗해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 같은 느림보 수영인도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게 된다면 바로 갈 테다. (전화 한 통이면 알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미룬다. 사실 나는 멀리까지 수영하러 가기 싫은 걸까?)
오후에는 집 앞 공원의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친다. 랠리를 같이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랠리를 하고 최근 테니스를 시작한 친구와 같이 있다면 나도 그다지 고수는 아니지만 테니스 자세를 알려준다. 어이. 발리로 몸을 좀 풀자고!라고 말해도 친구는 서비스 라인 근처에서 허둥지둥 바쁘다. 나는 네트 근처에 붙어서 공을 튀기지 말고 통통 왔다 갔다 하자는 뜻으로 말했지만 듣는 쪽은 아직 '발리'가 뭔지 배우지 않은 탓이다. 한 시간 반 정도 테니스를 치고 나면 부지런하게 랠리를 했든 반쪽짜리 레슨을 했든 간에 땀이 쭉 빠진다. 25도에서 30도 정도 날이 따뜻하니 운동하기에 딱이다. 그을린 피부가 부지런히 보낸 여름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집엔 최근에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생겼다. 세록 언니가 시카고를 떠나면서 싸게 넘겨준 스텝퍼, 끼워준 폼롤러와 필라테스 링이 어느덧 우리 집에 편히 자리를 잡았다. 세록언니는 글을 읽어오는 과제들을 하면서 스텝퍼를 하겠다며 야심 차게 이놈의 운동기구를 샀단다. 하지만 내게 올 때까지도 새것같이 태그를 달고 있었다. 나도 티브이볼 때나 강의 들을 때 스텝퍼를 좀 할 요량으로 들여왔다. 글을 쓰며 확인해 보니 일주일 간 657 스텝을 걸었다! 열심히 타다가 나도 산 가격의 반값 정도에 팔고 떠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