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대신 현실을 기록한 한 여성의 벨기에 생존기
이 책은 해외 이주 성공담이 아니다.
살아남은 기록이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는 낯선 나라에서 “버텨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해, 결국 “그래도 잘 살고 있다”라는 단단한 결론에 도착한다. 미화도, 겸손한 포장도 없다. 그래서 더 믿게 된다.
벨기에는 낭만의 배경이 아니다. 이 책에서 벨기에는 언어가 네 개나 되는 나라이고, 외국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행정과, 차가운 공무원 시스템과,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공간이다. 송영인 작가는 그 안으로 노빠꾸로 들어간다. 국제결혼이라는 선택 이후, ‘외국인 아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삶은 곧 ‘보통의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으로 변한다.
책의 초반부는 벨기에라는 사회에 몸을 밀어 넣는 과정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의 아무것도 모르는 언어” 앞에서 좌절하고, 벽만 보고 있어도 돈을 준다는 회사에 놀라면서도, 그 구조 안에 외국인이 설 자리는 얼마나 제한적인지 체감한다.“낭만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버팀은 설명이 필요하다.”
벨기에 공장 취직기,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 그리고 ‘외국인 추방을 결정하는 건 머리 좋은 공무원’이라는 문장은 이 책의 태도를 정확히 보여준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말한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개인 에세이를 넘어선다. “외국인에게 시스템은 친절하지 않았다. 대신 기준은 분명했다.”
중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깊어진다. 출산과 산후조리, 육아 시스템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은 어디서나 같다. “산후조리는 한기 가득 냉바닥”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벨기에의 복지 시스템이 결코 개인의 고통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체온으로 증명한다. 아이를 키우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인사팀 참교육을 겪고, ‘청천벽력 같은 부적격 판정’을 마주하는 대목에서는 이 책이 왜 생존기인지 분명해진다. “체력은 조언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작가가 피해자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력은 모든 것의 기본”이라는 문장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이 삶을 통과한 사람의 결론이다. 감정 소모 대신 시스템을 분석하고, 분노 대신 다음 수를 계산한다. 그래서 “경력직 지원자 1등이 되다”라는 후반부의 장면은 통쾌하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기적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버티는 동안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되었다.”
이 책의 미덕은 솔직함이다. ‘용의 꼬리 VS 뱀의 머리’라는 질문 앞에서도 작가는 멋있는 답을 고르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방인으로서,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자식 키우는 최종 목적”에 대한 서술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국적, 언어, 학벌이 아니라 삶을 견디는 태도가 아닐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어떤 세계를 통과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에필로그의 제목처럼, 이 책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잘 살고 있다.
그 말은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다. 도망치지 않았고, 부러지지 않았고, 여전히 자기 몫의 하루를 살고 있다는 선언이다. 해외 이주, 국제결혼, 워킹맘, 커리어 단절을 고민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위로보다 먼저 현실적인 지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도가 거칠수록, 신뢰도는 높아진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는 화려한 해외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책이다. 그러나 떠날 준비가 아니라, 버틸 각오를 묻는 책이라는 점에서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기록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다른 나라로 가고 싶은 마음보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다시 서볼 용기가 생긴다. 그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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