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늦은 나이인 서른일곱 살에 결혼해 그다음 해인 서른여덟 살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2014년 6월 20일 오후 5시 정각, 제 인생에 더해진 한 남자의 아내라는 타이틀에 한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이 더해졌습니다.
담당 원장님이 작게 낳아 크게 키우는 것이 좋다고 3kg과 3.3kg은 30분의 진통 차이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막달에 어떻게 조금이라도 출산 시 고통을 줄여보고자 아기의 체중을 중간 체크해 가며 관리를 했는데 고맙게도 어여쁜 공주는 2.99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 린아,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
오랜 산고 후 아주 작고 보드랍고 따뜻한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 느꼈던 그 벅찬 감동과 행복을 어찌 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 감동과 행복은 아픔과 힘겨운 시간 후에 찾아온 것이기에 더욱더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결혼 후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 찾아온 임신 소식에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으니 다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2세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5월 8일 어버이날 선물로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면 좋겠다 싶어 며칠 기다렸다가 테스트를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임신테스트기로 테스트했을 때 순식간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두 줄.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그 벅찬 감동을 함께 나누며 행복해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소식을 어버이날 선물로 드리고 싶은 마음에 혹시나 아닐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면서 임신인 것 같다며 소식을 전했을 때 어버이날 선물로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다라며 좋아하셨던 양가 부모님들. 참으로 행복하고 꿈만 같던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임신 진단을 받은 후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설마 제게도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바로 계류 유산.
다음번에 오면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란 원장님의 말씀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심장 소리를 듣기로 한 바로 전날 오후, 갈색 혈흔이 조금 비치는 걸 보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설마.. 하는 마음으로 혼자 병원에 갔습니다. 하지만 그 설마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아기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수술이 급한 건 아니니 마음 잘 추스르고 엄마가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 그다음 주쯤에 수술 날짜를 잡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5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에 가슴이 먹먹해져 침대에 털썩 앉았던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몸상태는 어떤 지 궁금해서 연락했던 첫째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전 그만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며 아무 말도 없이 한참 동안 대성통곡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을 뒤로하고 힘들고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게 많은 이들이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흘렀던 그 순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구나란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힘들고 아팠던 그 순간 제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을 해준 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둘째를 8개월 때쯤 조산해 키우다 태어난 지 100일쯤 아기를 하늘나라로 보낸 저보다 더 아프고 힘든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도 첫째 아기가 계류유산이 되었다고, 6개월 후 지금의 첫째가 생긴 거라고 그제야 처음으로 제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아파하고 슬퍼하면
아기가 편히 못 떠나.
그러니 며칠만 아파하고 아기를 편히 보내줘.
비록 한 달여의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시간과 감동을 선물해 주고 갔잖아.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해.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줘야
다음번에 건강해져서
다시 빨리 찾아올 수 있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 그녀가 해준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수술하기로 한 바로 전날 밤 갑자기 하혈과 함께 통증이 심해서 자정이 넘어 수술을 받고 새벽 2시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잠들기 전 저와 남편은 두 손을 배에 대고 우리에게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던 아기를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여보, 우리 미니미를 위해 기도해요.
미니미가 우리에게 부모가 될 준비를
잘하고 있으라고 테스트를 했나 봐요.
우리 미니미가 얼른 건강해져서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우리 그렇게 기도해요.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리는 눈물 속 기도로 아기와의 이별을 고하며 저만큼이나 아프고 슬플 텐데도 그 아픔을 삼키며 아내를 위로하는 든든하고 고마운 남편에게 나직이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도 많이 아프고 힘들 텐데 눈물이 나면 울어도 돼요. 나 며칠만 아파하고 기운 낼게요."
"아녜요. 난 남자잖아요. 강해야지요."
그렇게 말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2살 연하의 남편이 그 순간 어찌나 의젓하고 든든했던지. 우리는 그렇게 그동안 함께했던 아기를 보내는 이별의식을 마치며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던 새벽녘 오지 않는 잠을 겨우 청했습니다.
비록 그날 새벽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까지는 참을 수 없었지만, 엄마의 아픔과 슬픔이 떠나가는 아기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었나 봅니다.
그 이후 몸조리를 하고 거의 두 달간 일주일에 최소 5일 이상 하루에 1시간 30분씩 걸었습니다. 제 옆엔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가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정신 건강을 회복하고, 결혼 후 바로 임신이 되어 남편과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해서 대관령과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기를 보낸 지 석 달 만에 정말 고맙게도 우리의 바람처럼 아기가 건강해져서 다시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습니다. 사실 처음 아가가 생겼을 때 태명이 미니미였기에 다시 찾아왔을 때도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미니미라 불렀습니다.^^
한 번의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산모와 아기 둘 다 무척 건강하다는 얘길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 보다도 조심조심했습니다. 그리고 양가 가족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지냈습니다.
임신 3개월 정기검진을 받는 날 원장님이 이제는 너무 멀지 않은 곳은 다녀도 괜찮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사실 정기검진을 받던 바로 다음날은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전(前) 직장에서 저를 무척 따르던 직원의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남편과 가던 도중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블랙아이스 현상이라고 검은 아스팔트 위에 살얼음이 얼어 있었나 봅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신호등 사거리에서 황색 신호로 바뀌는 걸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만 쭉 미끄러졌습니다. 순간 당황한 남편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말했습니다.
여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엄마!"라고 소리치며 한 손으로는 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차 앞쪽을 잡았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던지..
뱃속 아기는 어떻게 하지.. 아, 이대로 어떻게 될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 떠오르는 엄마의 얼굴..
그렇게 우린 앞차를 들이받았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황색 신호로 바뀐 걸 보고 속도를 줄이고 왔기 때문인 듯합니다.) 대신 결혼 전부터 타고 다녔던 저의 첫차였던 애마가 우릴 대신해서 폐차장으로 갔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양쪽 차량이 SUV라서 그나마 큰 피해는 없었던 듯합니다. 교통사고 수습을 마치고 남편과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남편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셋 모두 건강한 것만으로도 하늘이 도운 거라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양가 가족들의 가슴을 또 한 번 들었다 놨다 해버렸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속에서도 아기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제 뱃속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 엄마~ 내 걱정 말아요~ 잘 놀고 있어요~ >
어머님은 그런 큰 사고 속에서도 온 가족이 무사한 것을 보니 아기가 복덩이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 속에서 이전보다 더욱더 강력해진 과잉보호 속에서 나머지 임신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잘 자라서 어느새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 엄마~ 나 미니미 많이 컸지요?>
2013년은 결혼과 임신, 유산, 그리고 교통사고로 제 인생에 있어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큰 일들을 경험함으로 인해서 저는 또 그만큼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한 아이의 아빠였던 직장 동료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결혼을 하고,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그때 그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저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도 조금씩 진정한 인간이 되어 가고 있나 봅니다.^^
얼마 전 과로로 몸이 힘들었던지 목과 어깨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얼른 침대에 누우라 하더니 로션 타입의 파스를 가져와서 마사지를 하며 발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쪼르르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잠시 후 딸이 제 팔과 다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차가운 이것은 무엇인고. 딸의 손에는 로션이 잔뜩 묻혀 있었습니다. 욕실로 가서 바디로션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침대에 엎드려 부녀의 마사지를 받는데 어찌나 행복했던지..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일이 많아 피곤한 저를 배려해 두 사람은 이번 주말도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퇴근한 남편은 제 얼굴을 쓱 한번 보더니 시댁에 다녀오겠다 했지만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선뜻 그렇게 해달라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바로 어머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일전에 어머님은 몸 상할까 걱정을 하시며 제게 매주 와도 좋으니 언제든지 보내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어머님은 이번엔 음식을 많이 못 만들어 사서 보냈다며 미안해하셨습니다.(손만두와 무생채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고기 한 근만 해도 우리 가족 배불리 먹는데 두 근이나 넘게 보내셨으면서도..)
< 어머님, 잘 먹었습니다~♥ >
모두가 잠든 이 시간. 곤히 잠자고 있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참으로 행복한 지금 이 순간입니다.^^
written by 초원의빛
illustrated by 순종
그림 속 사귐 - Daum 카페 : '그림 속 사귐'에서 순종님의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Andre Gagnon의 'Nocturne'
이상이님의 '행복했으면 좋겠어'
작가의 신작 에세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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