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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08. 2023

연명치료와 호스피스에 대한 이야기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장소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 엄마를 면회 온 사람들이 있다.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가던 날 엄마를 면회 온 사람들이 있다.

나를 포함해 엄마를 면회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3명의 삼촌들, 큰 이모, 외숙모, 아버지(였던 사람) , 나

모두는 연명치료에 반대하거나 거부신청을 하였다.

당시 엄마의 팔다리는 보라색이었고, 손 발은 퉁퉁 부어올라 관절을 접는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고열로 인해 이마엔 온통 땀방울이 맺히고 움직일 수 없게 결박된 팔다리는 볼 때마다 그 아픔이 전해지는 기분 탓에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아프게 했다.

그런 것 말고도 온몸에 연결된 이런저런 라인들과 기계들은 연명치료 사전동의서에 거부를 찍고 오기에 충분했던 거다.

이야기로만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던 3월 어느 날,

나는 엄마의 휴대폰을 뒤적거리다 유튜브 시청 기록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검색기록에는 중환자실이라던지, 기도삽관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검색어들이 담겨있었다.

그 영상들은 친절한 말투와 나긋나긋한 태도로 ICU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마네킹을 대상으로 기도삽관 하는 것을 보여주고, 환자가 느낄 고통이나 이런 것에 대한 경각심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연명치료라는 단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작년 9월부터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엄마의 멱살을 끌고 돌아온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 앞으로 또다시 이런 식으로 폐렴에 걸리거나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중환자실에 가야 할 수도 있어요.

어머님 폐 기능이 너무 안 좋으시다 보니까요. 그래서 추후 이런 일이 또 발생했을 때 연명치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미리 의논해 두세요.

중환자실에 어머님이 가시게 되면 기도 삽관이라는 걸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어머님은 못 깨어나실 확률이 더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 미리 이야기해두셔야 해요. "



뭔지도 모르고 일반병실에 올라가던 날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이 해줬던 말을 그대로 전하자 엄마는 당연히 해야지!라고 이야기 했으나 지금의 엄마에게 다시 물어본다면 엄마는 안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34년을 보아왔기에 엄마의 대답이 뭔지 짐작이 가는 거다.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거나 눈으로 보기 전 까지는 연명치료가 어떤 것인 가에 대해 그 어떤 느낌조차 받지 못한다.

나는 엄마의 일을 겪고 난 후부터는 호스피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중환자실이라던지 병원에 관한 프로그램은 전혀 보지 않게 되었다.

가까운 이가 아파하는 걸 눈으로 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심각하고 아픈 것인지를 깨달아 버린 것이다.



나의 이모나 삼촌들도 마찬가지였다.

까만 발등, 퉁퉁 부어올라 보라색으로 변한 손발이라던지, 의식 없이 콧줄을 끼고 눈동자가 하염없이 천장으로 까뒤집어져 흰자만 눈에 보이는 엄마를 보고 나서야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급하게 한 명 두 명씩 서울에 올라와 엄마를 보고 내려갔다.

그리고 다들 사전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하러 떠난다.

얼마 안 될 인간의 생을 붙들고 지옥문 앞에서 부터 끌고 이승으로 돌아오는 의료인들은 대단하지만, 그와 동시에 환자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라는 걸 체감하게 된다.





웰다잉이 왜 한동안 화두에 올랐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암 환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가 더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 엄마의 병명으로는 호스피스 입원이 가능하지만 호스피스 입원에도 기준이 있고, 대기라는 개념이 있다.

병원에서 계속 이어주는 연명의 끈들이 엄마에게 괴로운 길이라면 그저 편하게 마지막까지 엄마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게 더 맞지 않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엄마에게 마지막 단계가 죽음뿐이라면, 그렇다면 엄마가 덜 아프고 덜 힘들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선택을 가지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더 힘들었다.

엄마의 의식은 어딘가로 깊게 깊게 떨어지고 주무시는 시간이 늘어가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더더욱 길어졌던 터였다.

재우는 약을 쓰는 것도 아닌데 계속 주무시는 엄마를 볼 때마다 죽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사람이 나이가 들었을 때 늘 죽음을 대비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엄마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굉장히 큰 사람이었고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도 싫어하면서 준비는커녕 병원에 가면 무엇이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입버릇처럼 나는 병원에서 죽고 싶어라고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면 어쩌면 가족인 나보다 가운을 걸치고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의료진 곁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엄마의 입장에선 더 좋은 불안감치료제였던 것 같다.

그들이 수명을 다루는 신이라도 되어서 엄마를 언제든지 살려낼 수는 없는 노릇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뇌 질환으로 일반병동에 있을 때 노발대발 하며 화를 낸 적이 있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엄마는 언성 높여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지인이 엄마에게 유서를 미리 쓰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될지 모르니 경우를 대비하여 모든 재산과 관련된 것을 일반병실에 있을 때 변호사를 불러 처리하는 것에 대해 권유했단다.

그 말을 듣고 바짝 약이 올라 언성을 높여 신경질적으로 나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꼴 보기 싫어서라도 나는 무조건 살아남아야지!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빨리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죽긴 왜 죽어 라며 한참을 서운해하고 화를 표출했었는데...

그게 당장 죽으라는 의미가 아님에도 뇌 질환이니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미리 적어두는 것이 좋다는 조언에도 엄마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얼마 안 가 중환자실로 가버렸다.

이후 나는 엄마가 처리하지 못한 서류적인 문제들로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예를 들어 호적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엄마의 보호자임에도 서류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마가 의식불명이라는 진단서를 뗄 수도, 엄마의 의무기록사본을 발급받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서류처리들은 한동안 정체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도중 운이 좋아서, 신이 도와서, 아주 잠시 엄마의 정신이 깨었을 때 엄마의 동의를 얻어 서류 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순전 운이 좋아서였다. 

사인을 받는 것조차 힘들었다.

 




의식이 있고 건강할 때부터 죽음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보는 건 남은 사람들을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남은 자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인 것이다.

그래야만 오롯이 이 내 가족과의 이별에 몰두할 수 있고,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엄마의 의사를 물어볼 수조차 없는 상황.

나는 호스피스에 대해 더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지금 시점에 와서는 호스피스로의 이동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자꾸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비록 호스피스에서 모두가 만족하지는 않았더라도 요양병원보다는 엄마에게 더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기인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 끝에 내가 호스피스로의 전원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엄마가 전원 할 컨디션이 아마도 안될 것이다라는 생각에서였다.

10여 분도 힘겹게 왔는데, 어느 호스피스에서 COPD 말기 환자의 입원을 허용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전원 하다가 돌아가시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엄마와의 이별은, 조용한 공간에서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아래에 엄마와 나 두 사람 손 꼭 잡고 엄마의 귓가에 안녕 잘 가 엄마 많이 사랑했어, 고생했어, 우리 다음생에 또 만나하고 인사하며 울음은 참고 밝게 인사해 주는 것인데 구태여 전원을 해서 (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실질적으로 COPD 말기 환자가 호스피스에서 완화의료의 혜택을 보는 케이스는 거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찾아본 바로는.

암환자들도 호스피스에 대기를 걸어놓고 기다리는 마당에 COPD 말기 환자에게 입원장을 과연 수월하게 내줄까?

나는 거기서부터 한번 더 절망한다.

그저 우리 엄마 입원시켜 주세요가 아닌, 엄마와의 이별에 최소한 그에 걸맞은 장소로 요양병원이 타당한가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호스피스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남은 삶에, 남은 숨에 집중할 수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병동으로 문턱이 더 낮아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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