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의 수면: 다운타임이 허락되지 않는 곳

[State as Runtime Mode] 2화 - 우주에서의 수면

by 공인식

수면 편을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인터스텔라》의 투명한 포드. 《에이리언》의 하얀 캡슐. 《아바타》의 관 같은 수면 장치. 영화 속 우주비행사들은 수십 년의 항행을 눈을 감은 채 건너뛴다. 깨어났을 때 몸은 멀쩡하다.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것처럼.

이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실제 우주에서 자는 것은 어떤 일인가.


주의

이 글은 비전공자의 창의적 해석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생물학적 사실은 공개 학술 자료를 참고했으며, 의학적 조약이나 진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건강 관련 판단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AI 정보


우리 몸은 하나의 중앙 서버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각자의 역할을 가진 노드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합의해 나가는, 분산원장 네트워크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그 노드들이 어떤 순서로, 왜 등장했는지를 따라간다.


우주에서 잠을 자는 것이 왜 어려운가

지구에서 수면을 작동시키는 조건들을 먼저 정리해 보자.


24시간 일주기 리듬. 빛이 있으면 각성, 어둠이 오면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수면으로 전환된다. 중력. 누운 자세에서 몸의 긴장이 풀린다. 고요함. 외부 입력이 줄어들며 뇌가 내부 유지보수 모드로 전환된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이 조건들이 전부 무너진다.


ISS는 90분에 한 번 지구를 공전한다.[1] 하루 24시간 동안 일출과 일몰을 16번 맞는다. 빛-어둠 신호가 90분 주기로 반복되면, 멜라토닌 분비를 조율하는 생체시계는 기준점을 잃는다. 중력은 없다. 누워도, 서 있어도, 떠 있어도 신체 감각은 같다. 그리고 정거장 안은 항상 소리가 난다 — 대기를 순환시키는 팬이 무중력 환경에서는 반드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숫자로 나온다. ISS에 6개월 체류한 우주비행사 24명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비행 중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미만이었다.[2] NASA는 수면 부족과 일주기 리듬 장애를 장기 우주비행의 **1등급 위험 요소(Category 1 risk)**로 분류한다.[3] 우주비행사의 약 45~71%가 비행 중 수면 유도제를 복용했다.[1]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잘 오지 않는 환경. 펌프를 강제로 켜려는 시도가 계속 실패하는 곳이다.


```mermaid

flowchart TD

A["지구의 수면 조건"] --> B["24시간 빛-어둠 주기\n→ 멜라토닌 분비"]

A --> C["중력\n→ 신체 이완"]

A --> D["야간 고요\n→ 외부 입력 감소"]

B & C & D --> E["수면 전환 성공\n글림프·기억공고화·면역 회복"]

F["ISS 환경"] --> G["90분 일출/일몰 16회\n→ 생체시계 기준점 소실"]

F --> H["무중력\n→ 신체 이완 신호 없음"]

F --> I["팬 소음 상시\n→ 외부 입력 차단 불가"]

G & H & I --> J["수면 부족\n평균 6시간 미만"]

```


우주가 뇌에 남기는 흔적

수면 부족이 누적되는 동안, 우주 환경 자체도 뇌를 바꾼다.


장기 우주비행 후 우주비행사의 MRI를 찍으면 구조적 변화가 관찰된다.[4] 뇌실(ventricle)이 확장된다. 뇌척수액 부피가 늘어난다. 뇌 조직 자체가 두개골 안에서 위쪽으로 이동한다.


원인은 무중력이 만드는 체액 역류다. 지구에서는 중력이 혈액과 체액을 아래로 당기지만, 무중력 환경에서는 체액이 상체와 머리 쪽으로 쏠린다. 이것이 뇌척수액 순환을 교란한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서보다 얼굴이 부어 보이는 이유, 그리고 일부에서 시신경이 압박되어 시력이 저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5]


수면 편에서 다룬 글림프 시스템의 맥락으로 읽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뇌척수액이 제대로 흐르지 않으면, 글림프 세척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수면의 질도 낮다. 노폐물을 씻어낼 펌프도 약하고, 흘러야 할 뇌척수액도 교란되어 있다.


```mermaid

flowchart LR

A["무중력\n체액 두부 쏠림"] --> B["뇌척수액 순환 교란"]

C["수면 부족\n글림프 비활성"] --> D["노폐물 세척 감소"]

B & D --> E["뇌 구조 변화\n(뇌실 확장, 조직 이동)"]

E --> F["인지 기능 저하\n시력 변화\n전정 기능 이상"]

```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방사선이다. 지구 대기와 자기장 밖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지속적으로 고에너지 입자에 노출된다.[5] 이 방사선은 뇌혈관 장벽을 손상시키고 신경 회로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NASA 연구에 따르면 방사선 노출이 알츠하이머 발병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6]


6개월 ISS 체류 후 인지 기능 저하가 관찰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 다만 귀환 4일 후 회복되었다.[7] 뇌가 지구 환경으로 돌아오면서 스스로를 재보정한 것이다. 뇌 편에서 다룬 신경가소성의 회복력이 여기서도 작동한다.


영화 속 동면의 진짜 이름: 토포르

영화 속 포드 안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취하는 상태는 토포르(torpor)라 불린다.


토포르는 대사율이 기준치 아래로 깊게 떨어지는 에너지 절약 상태다.[8] 체온, 심박수, 호흡이 정상의 일부 수준으로 감소한다. 일부 포유류는 이 상태를 자연적으로 수행한다 — 다람쥐, 곰, 박쥐가 겨울 동안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적인 토포르 능력이 없다.


인간에게 토포르를 인공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 실제로 연구되고 있는 질문이다.


NASA는 2024년 NIAC(혁신적 우주 개념) 프로그램에서 STASH(우주 건강을 위한 동물 토포르 연구) 프로젝트에 Phase I 개발 자금을 지원했다.[9] ISS에서 설치류의 토포르를 연구하는 실험 장치다. 장기적 목표는 인간 합성 토포르(synthetic torpor)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ESA(유럽우주국)도 MicRA 연구를 통해 토포르를 심우주 임무의 핵심 전략으로 검토 중이다.[10] ESA 관계자는 자금이 확보된다면 2030년대 중반에 첫 인간 토포르 시험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11]


```mermaid

timeline

title 인간 토포르 연구 로드맵

section 현재

2024년 : NASA NIAC, STASH 프로젝트 Phase I 승인

2024년 : 알파-2 아드레날린 수용체 작용제 임상 1단계 완료

section 근미래

2025~2030년 : ISS에서 설치류 토포르 실험

2030년대 초 : 비인간 영장류 모델 검증

section 장기

2030년대 중반 : 인간 토포르 시험 가능성 (ESA 추정)

2030년대 후반 : 화성 임무 대비 적용 검토

```


토포르가 수면과 다른 이유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토포르는 수면이 아니다.


수면은 뇌가 외부 연결을 차단하고 내부 유지보수를 실행하는 능동적 상태다. 글림프 세척이 일어나고, 기억이 공고화되고, 시냅스가 최적화된다. 뇌는 바쁘다.


토포르는 대사 자체가 대폭 감소하는 상태다. 뇌 활동도 줄어든다. 유지보수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저전력 모드로 진입하는 것에 가깝다.[8]


그렇다면 토포르 상태에서 글림프 세척은 일어나는가. 이것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자연 동면 동물에서는 토포르와 각성을 반복하는 주기 안에서 뇌 청소가 일어난다는 연구가 있다 — 토포르 중간의 단기 각성 구간에 집중적으로 세척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12] 즉, 동면 동물도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잠시 깨어나, 쌓인 것을 씻어낸다.


영화 속 포드에서 수십 년을 잠든 채 깨어나도 멀쩡한 캐릭터들은, 이 청소 주기가 해결된 미래를 전제하고 있다.


실제 우주비행사에게 수면은 무엇인가

영화의 동면과 달리, 실제 우주비행사들은 잠을 자야 한다. 그리고 그 잠이 너무 부족하다.


이것이 단순한 피로 문제가 아닌 이유를 시리즈 맥락에서 읽으면 명확해진다.


수면 편에서 다룬 것처럼, 수면 중에는 뇌 청소, 기억 공고화, 면역 회복, 코르티솔 재설정이 병렬로 실행된다. 우주 환경에서 이 유지보수가 만성적으로 부족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인지 기능이 저하된다. 판단 속도가 느려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임무 중 오류 위험이 높아진다. NASA가 수면 부족을 1등급 위험으로 분류한 이유다.[3]


면역 기능이 교란된다. 흉선과 비장 편에서 다룬 면역 인력들은 수면 중 재정비된다. 만성 수면 부족 상태에서 면역 회복이 안 된 채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은 — 방어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공격을 받는 것과 같다.


코르티솔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게 유지된다. 신장 편에서 다룬 것처럼, 뇌의 긴장 상태가 신장을 통해 전신 인프라의 기본값을 바꾼다. 수면 부족이 만드는 이 상태가 우주 환경의 방사선·무중력 스트레스와 겹친다.


복합 스트레스다. 각각의 요소가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며 네트워크 전체의 기본 설정값을 흔든다.[13]


뇌척수액이 지구로 돌아오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연결이 있다.


림프계 편에서 다룬 고규영 팀의 발견 — 뇌척수액이 얼굴 아래 림프관을 통해 배출된다는 것 — 은 우주 의학의 맥락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주비행 중 뇌척수액 순환이 교란된다. 체액이 머리 쪽으로 쏠리면서 뇌실이 확장되고, 뇌척수액 배출 경로에도 압력 변화가 생긴다. 고규영 팀이 노화에서 발견한 것 — 뇌척수액 배출 채널이 좁아지면 노폐물이 쌓인다 — 이 우주 환경에서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재현될 수 있다.


실제로 The Lancet Neurology(2024)는 우주비행 중 혈관 주위 공간(perivascular space)의 변화와 뇌척수액 역학(CSF hydrodynamics) 이상을 보고했다.[5] 글림프 경로와 뇌막 림프관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아직 연구 중이다.


수면이 만드는 펌프, 림프계가 만드는 배수구 — 이 두 시스템이 동시에 교란되는 환경이 우주다.


영화가 풀지 못한 문제

영화 속 동면 포드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전제한다.


하나. 근육과 뼈의 소실. 실제 우주비행사들은 6개월 체류만으로도 근육량의 최대 20%를 잃는다.[11] 자연 동면 동물들은 이 소실을 막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 그 메커니즘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STASH 연구의 목표 중 하나다.


둘. 뇌 노폐물 축적. 토포르 중에도 대사는 일어나고, 노폐물은 생긴다. 세척 주기가 유지되지 않으면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인다. 수십 년의 토포르에서 깨어난 뒤 인지 기능이 정상이려면, 이 문제가 해결되어 있어야 한다.


셋. 방사선. 합성 토포르의 유력한 부작용 중 하나가 방사선 방어 효과다.[14] 대사가 줄면 활성산소(ROS) 생성도 줄고, 방사선에 의한 세포 손상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영화 속 포드가 해결한 것이 사실은 이 부분일 수도 있다.


```mermaid

flowchart TD

A["영화 속 동면 포드\n전제하는 세 가지 해결"]

A --> B["근육·골밀도 소실 방지\n→ 동면 동물 메커니즘 적용?"]

A --> C["뇌 노폐물 청소 유지\n→ 토포르 중 청소 주기 유지?"]

A --> D["방사선 방어\n→ 저대사로 ROS 생성 감소?"]

B --> E["STASH 연구 진행 중"]

C --> F["미해결 — 현재 연구 중"]

D --> G["동물 모델에서 증거 있음\n인간 적용 미확인"]

```


이 네트워크가 우주에서 보내는 신호

시리즈를 따라오면 하나의 원칙이 반복된다. 이 네트워크는 환경 신호에 반응하여 자신을 조정한다. 빛이 오면 각성하고, 어둠이 오면 수면으로 전환한다. 위협이 오면 면역이 활성화되고, 안정되면 회복이 일어난다.


우주는 이 신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환경이다. 24시간 리듬이 없고, 중력이 없고, 방사선이 끊이지 않는다.


그 결과가 숫자로 나온다. 뇌실이 확장되고, 수면제 복용률이 71%에 달하고, 근육이 매달 줄어든다.


영화 속 포드는 이 모든 문제를 '잠든 채 건너뛴다'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실제 연구자들이 묻는 질문은 다르다. 잠든 채 건너뛰는 동안에도, 이 네트워크가 필요로 하는 유지보수를 어떻게 계속 실행할 것인가.


수면이 펌프이고 림프계가 배수구라면 — 우주라는 환경은 펌프도 약하고, 배수구도 교란되고, 그 위에 새로운 손상 요인이 더해지는 곳이다.


영화가 못다 한 이야기를, 지금 연구자들이 이어가고 있다.




참고

[1] Barger LK, et al. Prevalence of sleep deficiency and use of hypnotic drugs in astronauts before, during, and after spaceflight. Lancet Neurology. 2014.
[2] Basner M, et al. Sleep deficiency in spaceflight is associated with degraded neurobehavioral functions and elevated stress in astronauts on ISS. Sleep. 2022.
[3] NASA Human Research Program. Risk of Performance Decrements Due to Sleep Loss, Circadian Desynchronization, and Work Overload. 2016.
[4] Riascos R, et al. Quantitative MRI changes in astronauts after long-duration spaceflight. 2019.
[5] Hupfeld KE, et al. Effects of spaceflight on the brain. The Lancet Neurology. 2024.
[6] NASA-supported study: Radiation may harm the brain and accelerate Alzheimer's onset. 2024.
[7] Moore NE, et al. Reduction in motor functions following 6-month ISS mission. 2019.
[8] Choukér A, et al. Hibernating astronauts — science or fiction? npj Microgravity. 2019.
[9] Sprenger R, et al. STASH: Studying Torpor in Animals for Space-health in Humans. NASA NIAC Program. 2024.
[10] Ngo-Anh J, et al. European Space Agency's hibernation (torpor) strategy for deep space missions.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 2021.
[11] Space.com. Hibernation for long human spaceflights is not sci-fi. 2023.
[12] Bhatt DL, et al. Glymphatic clearance in hibernating mammals during torpor. (emerging research, under active investigation)
[13] Strangman G, et al. Impact of spaceflight stressors on behavior and cognition.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 2022.
[14] Tinganelli W, et al. Synthetic torpor is radioprotective in non-hibernating mammal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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