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무관한 앎

[읽고 쓰는 삶 190일 차] 박치욱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by 윤서린

요즘 일하면서 팟캐스트를 듣는다.

평소 음악을 듣고 내가 쓴 노랫말로 만든 노래를 노동요처럼 듣는데 루틴을 바꾼 것이다.

오늘은 팟캐스트를 듣다가 영업당해 읽기 시작한 책을 소개한다.


박치욱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봤던 제목과 표지.

제목이 마음에 걸려서 책 내용과 목차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책이다.

왠지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있으면 '삶이 괴롭다'는걸 들킬 것 같고, 딱히 '공부'는 머리 아파서 하기 싫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어찌나 신나서 이야기하는지 나도 모르게 책 내용에 빠져들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치욱 교수는 생화학과 약리학을 가르친다.

어려운 분야를 쉬운 언어와 흥미로운 예시로 전달해서 약학대학 교수진 100여 명 중 유일하게 '올해의 명강의상'을 받았다고 한다.


일상은 도서관, 세계는 실험실

그는 일상은 도서관, 세계는 실험실이라고 생각하며 분야를 막론하고 매일 숨 쉬듯 공부한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가치와
무관한 앎을 추구하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연구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전문분야가 아닌 음식, 언어, 자연, 예술, 사회, 퍼즐, 인체라는 7가지 주제를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을까?


'쓸데없는' 공부를 하지 못하면
삶이 무료하고 갑갑하고 괴로웠다.


내가 요즘 뭔가 계속 허한 느낌이 드는 것, 내 안의 내가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런 느낌과 비슷할까? 나도 무용하지만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새롭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박치욱 교수는 아이들의 음식을 만들어주다 매번 달라지는 맛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왜 망쳤는지, 어떻게 해야 더 맛있을지를 고민하고 언제 누가 해도 똑같은 맛을 내기 위해 "재현성과 정량화"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 집요함은 무려 4년간 트위터에 올린 계란 실험글에서도 나타난다.


계란 삶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삶는 게 아니고 찌는 거예요


그가 생화학 실험에서 사용하는 분석 방법을 기록하는 "프로토콜(Protocol)"을 예시로 실었는데 우리가 요리할 때 참고하는 레시피와 같은 느낌이다.

필요한 재료와 실험순서가 차례대로 요약되어 있는데 계란 껍데기를 잘 까기 위해 '숨겨진 변수'를 찾아 수십 차례 실험하고 데이터화 한 사진도 있다.

교수님의 연구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껍질이 잘 까지는 계란 찌는 레시피'를 알게 됐으니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요리할 때 티스푼과 저울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인데.... 음식의 재현성과 정량화는 나한테 맞는 공부는 아닌 것 같다. 대신 "자연" 공부는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꽃 이름과 생김새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그리면서 내 삶이 풍요로워졌다.

살면서 그저 바쁘게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던 여러 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니 산책하거나 걷는 일이 즐거워졌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내 몸이다.

뻣뻣하고 움직임을 싫어하는 내 몸과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내 목소리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졌다.

말이 아닌 울림으로 낼 수 있는 소리. 온몸을 움직이며 표현하는 몸짓 같은 것.

그중에 하나가 '낭독'이다.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내 글과 시를 소리 내서 읽을 때면 쑥스러우면서도 좋았다.

휴대폰으로 영상일기를 찍고 틀어보면 내 표정, 내 목소리, 내 손짓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아쉬워했다. 늘 가족들, 친구들 사진과 영상만 찍었는데 이제는 나 스스로 나를 찍고 기록한다.

그동안 내가 어떤 모습으로 말하고 어떤 목소리와 속도로 대화하는지 나는 나를 잘 몰랐다.

하지만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니 못나보였던 나의 모습도 자신 없던 나의 행동도 조금 사랑하게 되었다.


책 제목처럼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특히 "나"를 알아가는 공부가 그중 최우선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배워서 성공하고 성장하는 가치추구를 위한 앎이 아닌 내 삶을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앎으로 내 남은 시간들을 가득 채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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