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태도를 찾아가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나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나에게만 주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 살아가는 것보다 훌륭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무엇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앞에 문제가 닥쳤을 때마다 쉽게 결론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오늘 당장 대답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무리가 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나답지 않게 명확한 결론을 앞세우는 것이 왠지 위험하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그때마다 하루나 이틀 밤을 푹 자고 이삼 일을 별일 없이 보내버린다. 무턱대고 가만있는건 아니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다. 그렇게 시간을 끌며 버티는 도중에 최선의 대책도 아니고 결코 현명한 해결법도 아니지만 제법 나다운 결론, 훗날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대답이 나오는 것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경험해왔다.
우리는 가까이에 어울려 살아가더라도 바라보는 인생의 풍경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함부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넘겨짚지 말자고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타일러왔다. 그 다짐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변함없다. 상대방을 위해 나의 희생을 감수하며 수고한 일이더라도 그가 고마움을 모른다고 해서 서운해한다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럴 수도 있음을 인식하며 미리 각오해둬야 한다.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형태는 서로 간에 뜻이 맞지 않고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오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관계가 틀어진다.
칭찬받았다고 해서 나의 실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듯 비방당했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훼손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나만의 방식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는 나의 삶이 누구보다 올바르다는 신념과는 다르다. 자기 자신에게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져야 된다는 말도 아니다. 현재와 같은 모습이 최선이라는 최소한의 당당함이다.
서로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신상을 털어놓는 그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착각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엔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더불어 그에게 품었던 나쁜 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고 오히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궁금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