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내 시간 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by 김소형
수이는 단 한 번도 자기 상처를 과시한 적이 없었다. 자기 상처로 누군가를 조정하는 일이 가장 역겹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런 가능성 자체를 차단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려 했고, 그게 무엇이든 모든 것을 삼켜내려 했다. 그런 수이가 소리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울고 있었다.
초가을이었지만 새벽 공기가 쌀쌀했다. 어릴 때처럼 주희는 이불을 발로 밀어내고 있었다. 윤희는 주희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불을 들어 덮어줬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윤희는 주희가 추워하지 않기를, 추워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따뜻한 단잠을 자기를 바랐다. 쌀쌀한 밤, 이불이라도 덮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주희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윤희의 마음에 작은 빛을 드리웠다.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자아를 부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 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영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슬픔을 느끼니까.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블록 하나가 빠진 거야. 아주 작은 블록이었는데 그게 빠져버리니까 중요한 부분이 무너진 거지. 근데 본인은 자기가 엉망인 된 것도 모르는거야.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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