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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Mar 21. 2024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단 한 번도 자기 외에는 남을 책임져보지 않은 그를 위하여 나는 오늘 포도주 한잔.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왜 이렇게 마음은 자주 어지러운지, 제 마음의 어느 골목이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가지고 있는지.

날씨라는 게 얼마나 사람 마음을 변하게 하는데요. 주위 환경에 민감한 게 뭐 잘못된 것도 아니구요. 저는 제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아주 인심이 후하답니다.

삶의 조건을 넓히는 일은 죽음의 조건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마당에 올라온 잡초를 뽑다가 에이, 하는 생각이 든다. 잡초와 잡초 아닌 것. 처음에는 다들 잡초였다. 사람들이잡초들을 제 집에서 기르기 시작하면서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이 생겼다.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풀이 꽃을 피우는가.

사는 힘도 힘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힘도 힘인 것을.

착한 사람이 있는 곳은 푸근하다.

이성을 사랑하나 이성만을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채꽃밭, 환한 웃음, 터질 듯한 젊음. 시간은 우리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고, 그 우리들 가운데 하나는 다시 오지못할 곳으로 간다.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일, 자랑거리로 삼을 일들은 다들 쉬쉬하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은근히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행동하죠. 그런데 가라앉는 이야기에는 거리낌이 없어요. 어느 자리에서든 그런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죠.

들리거나 보여지는 이야기는 결국 이런 거예요.

사람 마음 한 곳에 말랑한 구석 하나 쯤은 있지 했던 생각이 글을 쓸 때 박차를 가해요. 이렇게나 연하고 말랑한 구석이 숨어있을 줄이야.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랑한 마음만 가지고 살기엔 세상은 가혹하고, 관계는 복잡하며, 사람 마음의 변덕엔 끝이 없으니까요.

단단하고 곧은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요즘엔 뱉고나면 그저 말인 것들이 자주 제 입가를 맴돌아요. 쓸데없는 말이었다면 흘러 어딘가에 버려졌으면 좋겠는데, 누군가의 말랑한 구석 어딘가에 박힐까 무서워요.

분명 그들에게도 단단하고 곧은 마음이 존재하리란 걸 알지만, 이 연하고 말랑한 구석 하나가 사람을 오만한 겁쟁이로 만든다니까요.


이 글을 쓰기 전 제 모습은 어땠을까요. 눈물을 머금고 웅크린 채로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랬을까요. 침대에 누워 영상을 보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냉장고 문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는지 몰라요. 맞아요.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 간 것, 어쩌면 제 깊은 곳에서 속삭이던 것에 잠시 귀기울였을 뿐입니다. 글을 마친 후에는 달라질까요. 마찬가지겠지요.

이것 저것 남긴 글이 많아 보고 있자면 다중이 같아 웃음이 나요. 별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늘상 그렇게 보이더라도 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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