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소형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읽히는 대로 적어본 시의 호흡

하려는 말은 많으나 정작 간결하게 담긴 듯한 장을 따라가며

마디마다 헤매다가 비로소 해설의 말로써 해소됨을 느낀다

​​

간결한 형식과 파편적인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여백의 아우라 / 자신의 마음을 집중해서 바라보지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 듯하다 /

주목해야 하는 것이 시인 특유의 ‘고백체’와 ‘관찰자 시점’ /

특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기보다는, 어떤 기억과 감정을 함께 느껴보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

얼마나 많은 말들을 ‘마음속에서’ 발화하고 나면,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말들을 문장 속에 감추고 나면 이렇게 간소하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

화법과 시점의 불일치로 인해

책장을 덮고 나면 시인의 절절한 고백을 들은 듯하기도

간절한 누군가의 나날을 지켜본 듯하기도 하다

덜 말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시

빌리는 말로, 시는 의미 이전에 또는 감각 이전에 마음에 먼저 와닿는 것이라는 소박한 사실

나는 오늘도 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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