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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NL Aug 02. 2024

네덜란드에서 혼인신고하기

최종보스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혼인신고가 필요하다. 네덜란드에서는 보통 결혼식 순서의 일부분으로 시청 공무원의 입회 하에 부부가 혼인증명서에 서명하는 절차가 있다. 주중에는 500유로 이하의 수수료를 받지만 주말 결혼식인 경우 1,000유로가 넘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등록파트너이기 때문에 그냥 시청에 가서 등록 파트너십을 혼인으로 변경하기만 하면 됐다. 우리 결혼식보다 이틀 빠른 5월 2일 목요일 오전에 시청 방문 예약을 잡았다.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여서 출근하기 전에 얼른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청 근무 시작시간인 9시가 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들어갔다. 작은 방으로 안내받은 후 우리는 신분증을 내고 등록 파트너십을 혼인으로 바꾸고 싶다고 얘기했다. 시청 공무원은 네덜란드 말로 남편과 얘기했는데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계속해서 한 단어를 반복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변경’이라는 단어였다.


공무원의 요지는 우리 결혼은 새롭게 시작되는 결혼등록이 아니라 등록 파트너십에서 결혼으로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가족등록에서 업데이트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혼인증명서를 발급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려면 혼인증명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당황했다. 공무원은 계속해서 국가에 따라서는 가족등록 수정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확실히 결혼으로 변경하고 싶냐고 재차 물어봤다.


남편이 대충 영어로 설명해 줘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일단 한국대사관에 전화해서 물어보겠다고 하고 방을 나왔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금방 전화연결이 되었다. 대사관에 여차저차해서 혼인 증명서가 아니라 수정된 파트너십 증명서(?) 밖에 발급이 안되는데 혼인신고할 때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직원분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결혼(marriage)이라는 단어와 결혼날짜가 쓰여있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시 방에 들어가서 이러이러하게 안내받았고 결혼으로 변경해도 괜찮다고 하니까 공무원은 정말 확실한 거 맞냐고 거의 윽박지르듯 물어봤다. 이 여자는 거의 우리가 결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훼방꾼 같았다. 그러면서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자기한테는 책임이 없고 우리나라에서 수정된 파트너십 증명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법적인 이혼절차를 밟은 후 다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면 지금 당장 결혼으로 변경하지 말고 공증인을 통해 등록 파트너십을 파기한 후 결혼등록 절차를 다시 밟으라고 했다. 물론 이 모든 설명에서 나는 소외되었고 남편이 영어로 간략하게 얘기해 주었다.


우리의 결혼을 완강히 방해하는 이 여자에게 나는 차갑지만 단호하게 우리는 오늘 등록 파트너십을 결혼으로 변경할 거야.라고 얘기했다. 그러자니 공무원은 서류를 뽑고 우리 신분증을 복사한 후 어디 어디에 서명하라고 했다. 당황한 상태였던 나머지 나는 서명을 틀리고 말았다. 공무원은 자기가 본인들이 서명하는 것을 봤으니 괜찮다고 했다. 단 15분간의 짧은 미팅이었지만 그 사이 감정은 당황-불쾌-안도를 넘나들었다.


공무원의 태도도 그랬지만 남편과 둘이서만 네덜란드로 얘기하고 당사자이기도 한 나는 이 중요한 문제에 완전히 소외되고 있었다는 것이 속상했다. 남편은 물론 상황을 파악해서 최대한 해결할 방법을 찾고자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는 했지만 바로바로 통역해주지 않은 그에게 서운했다. 시청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이 났다. 우리가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똥물을 뿌리려고 한 그 공무원 여자가 싫었고 짜증 났다.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집으로 가는 길 우리 둘은 그 여자를 놓고 신나게 욕했다. 분명 자기가 불행하니까 남들의 행복한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둥 아시아인 인종차별자라는 둥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둥 인격모독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집에 거의 다다를 때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이로부터 3주 뒤 결혼증명서를 온라인으로 신청했다. 그 불쾌한 마녀 공무원의 말처럼 결혼증명서가 아나라 등록 파트너십을 혼인으로 변경한 증명서가 우편으로 일주일 만에 배달되었다. 이것을 잘 번역해서 우리나라 혼인신고서와 그 외 필요서류를 가지고 6월 7일 헤이그에 있는 대사관에 갔다. 처리 경과와 결과는 이메일로 안내될 거라고 했다. 우리의 혼인신고는 6월 17일에 서류접수가 되었고 그로부터 열흘 뒤 처리가 완료되었다. 거의 두 달 만에 네덜란드와 한국 모두에서 법적으로 인정받는 부부가 된 것이다. 함께 걷는 걸음걸이에 알 수 없는 당당함과 꼿꼿함이 추가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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