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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면, 두 개의 세계

다름 속에서 같음을, 비교 속에서 이해를 찾는 여정의 기록

by Jasmine

나는 석사 논문을 비교 연구로 썼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어떻게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의식이 탄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제도화되어 정책으로 발전했는지를 비교했다. 비교 연구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 유학을 결심한 이유가 자연스레 나를 비교하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프랑스가 한국보다 '앞서 있다'라고 믿었다. 그들의 제도, 시스템, 시민 의식, 교육 방식, 문화 향유 태도까지, 모든 것이 더 세련되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선진의 학문을 배워 한국에 심어야 한다, 그 인식이 나의 유학의 출발점이었다.


처음에 공부하려고 했던 분야는 문화정책이었다.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나라'라고 불린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그 해답이 정책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정책보다 그 정책을 낳은 의식과 역사가 더 궁금해졌다. 예술을 보호하고, 유산을 지키려는 사회적 합의는 제도 이전에 형성된 문화적 DNA였다. 그 뿌리를 알고 싶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책의 표면에서 역사의 층위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방향 전환은 옳았다. 정책은 결과이고, 역사는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역사를 단순한 틀 안에서 비교하려 했다는 점이었다. 프랑스와 한국은 출발점이 다르다. 혁명과 식민, 공화주의와 근대화, 시민의식과 국가주도의 의식—비슷한 듯 보이지만 결코 같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길들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학문이라는 형식 속에서 두 나라를 나란히 놓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남은 건 ‘차이’가 아니라 ‘불균형’이었다. 석사 논문 발표할 때, 교수는 차라리 식민지끼리 비교하는 게 더 낫지 않았겠느냐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수치와 제도로는 문화의 깊이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비교는 표면을 보여주지만, 내가 원하던 그 안의 의식과 경험까지는 닿지 못했다. 프랑스의 문화예술이 한국보다 “낫다”거나, 한국이 “늦었다”는 식의 판단으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묻기 시작했다.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 안에 빠져 있던 나 자신—내가 정말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은 더 이상 논문으로는 쓸 수 없는 것이었다.



Logo_monument_historique_-_rouge_ombré,_encadré.svg.png 궁극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던 프랑스의 문화유산 보호제도, 역사적 기념물 Monument historique






그래서 글의 방향을 바꾸었다. 논리로 증명하는 글이 아니라, 사유로 탐색하는 글. 객관적 분석이 아니라, 두 도시를 오가며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의 기록. 한국의 일상에서 불현듯 프랑스가 겹쳐지고, 파리의 거리에서 한국이 비칠 때, 그 교차의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이해’에 다가가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앞서 말했듯, 예전의 나는 프랑스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두었다. 한국은 늘 부족했고, 한국의 모든 것이 유럽과의 비교의 대상이었다. 교육도, 문화도, 시민 의식도—어딘가 떨어진다고 느꼈다. 한국의 장점은 전세 제도와 외식비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단순한 이분법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내 시선의 방향이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기준이 바뀌었다. 내 안의 열등한 어둠이 물러나고, 다른 빛이 들어왔다. 그 빛은 우월감도, 국수주의도 아닌, 이해와 존중의 시선이었다. 나는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제 한쪽을 옳다 말하기보다 서로의 다른 얼굴 너머에 있는 같은 인간의 본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사이에 세상도 변했다.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한때 내가 '배워야 한다고' 믿었던 나라가 이제는 한국의 콘텐츠에 열광한다. 흐름이 거꾸로 이어졌다. 과거 한국이 프랑스를 바라보며 근대화를 꿈꾸었다면, 오늘날 프랑스는 한국 문화에 매혹된다. 문화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받아들이고, 변형되고, 언젠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이제 나는 그 거대한 순환의 흐름 속에서 두 나라, 두 시대, 그리고 나 그 사이를 오가는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서울의 재개발 거리에서 파리의 오스만가를, 덕수궁 음악회에서 복원된 노트르담의 종소리를, 개방된 청와대에서 역시 권력의 정점에서 모두를 위한 문화의 대표지가 된 루브르 박물관을 떠올린 순간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이 스쳐 지나가며 내 안에서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응답이자, 비교를 넘어서 이해로 나아가려는 시도의 기록이다.



violation-caveau-saint-denis-hubert-robert.jpg 프랑스 혁명 당시 반달리즘은 역설적으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낳았다. 이제는 파괴의 역사보다, 긍정과 회복의 역사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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