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 Amelie Oct 20. 2024

15. 미국 초등 교사가 강조한 것

선생님이 강조한 한 가지, 1학년도 5학년도 책 읽기

9월에 시작한 아이들의 새 학년도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할 무렵, 학교에서 ‘오픈 하우스’에 참석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오픈 하우스는 부모가 아이들의 새로운 교실을 둘러보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1년 학습 계획을 들을 수 있도록 양육자를 학교로 초대하는 행사이다. 아이들은 동반할 수 없고, 양육자만 참석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최고 학년인 5학년, 작은 아이는 유치원생 꼬리표를 떼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해라 이번 오픈하우스에 참석하면서 긴장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온 만큼, 이번 오픈 하우스는 의미 있는 행사로 다가왔다.


교과서 없는 미국 학교, 담임 선생님은 동아줄 같은 존재


미국 초등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각 주(스테이트, State) 교육부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학교들이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년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학습 목표가 정해진다. 주요 교과목은 영어(읽기 및 쓰기), 수학, 과학, 사회이고, 예술, 음악, 체육(PE), 도서관 활동 등이 추가된다.


교과서는 없지만, 선생님들은 워크북(workbook), 온라인 자료, 수업 자료 등 다양한 학습 도구를 활용하고, 프로젝트 학습, 그룹 활동, 실험 등의 다양한 학습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집에서 참고할 교과서가 없기에 오픈하우스에서 담임 선생님이 해당 학년에서 배울 주요 개념과 목표를 설명하는 것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방과후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도시락 가방을 꺼내어 주방에 가져다 놓고, 책가방을 내팽개친 뒤 간식을 먹기 시작한다.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제대로 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 있었어?”


1학년 어린이는 별생각 없다는 듯 짧게 대답한다.


“몰라.”


5학년 어린이는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느라 귀찮다는 듯 툭 던진다.


“그냥 공부하고, 체육 했어.”


알림장이 따로 없어, 아이들의 숙제가 궁금할 때는 직접 물어봐야 한다. 5학년 어린이는 20분 이상의 독서와 한 페이지 분량의 수학 문제 풀이를 매일 해야 한다고 했다. 1학년 어린이는 숙제가 없어서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러하니 새 학년이 시작되자마자 열리는 오픈 하우스, 1년에 두 번 있는 선생님과의 개별 면담, 학년말에 치르는 매사추세츠 종합 학력 평가 시스템(MCAS, Massachusetts Comprehensive Assessment System) 결과 등을 통해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학습 습관은 어떤지, 친구 관계는 좋은지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다. 미국 학제를 처음 경험하는 나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 제공자는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이고, 이들을 신뢰하는 것은 내게 아주 중요하다.  


작은 아이는 자기 전에 아빠와 함께 책을 읽는다. 아이가 골라오는 책을 통해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관찰할 수 있다.


선생님이 강조한 한 가지, 1학년도 5학년도 책 읽기


저학년, 고학년의 오픈하우스가 하룻저녁에 차례로 열렸다. 작은 아이의 교실을 둘러보고, 아이의 책상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책상 위에는 방문한 양육자에게 남기는 아이의 짧은 글이 놓여 있었다. 이제 막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작은 아이의 지렁이 같은 알파벳은 그저 사랑스럽게 보였다.


선생님은 1학년 한 해의 커리큘럼을 설명한 후, 양육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고 했다.

 

“이 시기 어린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읽기 능력을 천천히, 제대로 쌓는 것입니다. 읽기 능력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매일 꾸준히 조금씩 읽기 연습을 해야만 아이들이 학습에 필요한 읽기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읽기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육자들이 집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숙제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앞으로 아이들은 하루에 한 권씩 읽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책을 집에 가져갈 것입니다. 제가 나눠 드린 읽기 방법을 참고하시고, 아이와 함께 읽는 연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선생님의 손짓을 따라간 곳에는 학급 문고가 있었고, 이제 막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책들이 책장에 가득했다. 앞으로 저 책장 앞에서 매일 읽을 책을 골라 가방에 담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작은 아이의 선생님이 나눠준 읽기 방법. 자기 전에 읽기, 병원이나 식당에서 기다릴 때 읽기, 집에서 키우는 동물에게 책 읽어주기, 아기에게 읽어주기, 인형에게 읽어주기 등이 있다


큰아이의 교실은 2층에 있었고,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 친구 엄마와 함께 큰아이의 교실로 향했다. 교실 곳곳에 아이들의 흔적이 있었고, 큰아이의 책상 위에는 나를 환영하는 메시지와 함께 아이의 책과 필기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5학년’이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올해는 학습량이 많아질 중학교 생활을 미리 준비하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방과후 스스로 숙제를 챙기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일 읽고 쓰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독서를 한 후에는 관련된 글쓰기도 빠짐없이 진행됩니다. 반 전체가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기도 하고, 소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로 책을 읽고 매주 금요일마다 토론할 예정입니다. ”


큰아이가 곧 중학생이 된다는 말에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선생님이 독서에 대해 설명하자 나는 학생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아이들의 읽기 능력을 쌓기 위해 매일 20분 이상 독서가 아이들의 주요 숙제가 될 것입니다. 읽기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매일 꾸준히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꼭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1학년과 5학년 담임 선생님 두 분 모두 아이들의 독서 지도에 열정적이었고, 양육자들에게 아이들의 독서 습관 형성에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매일 아이들을 마주하며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독서’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니, 학습에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아이들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독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통해, 아이들도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것 같아 내가 새 학년이 된 듯 설렘을 느꼈다.


작은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간 어느 주말, 남편과 나는 큰아이와 카페에 앉아 두어시간 책을 읽었다. 각자 좋아하는 책을 한권씩 들고 카페에 갈 만큼 아이가 자란 것도 신기했다.


책 읽기와 함께 시작하는 새 학년


십 년 동안 두 아이를 키우며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나쁜 음식은 애써 멀리하고, 삼시세끼 챙겨 먹듯 좋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날이 좋든 흐리든 자연에서 걷고 뛰며 에너지를 얻는다. 판소리, 바로크음악부터 케이팝까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을 찾아 듣고, 모든 생명에게 다정해지려 애쓰며 그 어떤 생명도, 나 자신도 해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중에서도 평생 함께할 친구처럼 책이 아이들 곁에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학교 선생님들이 알아봐 주신 것 같아 든든한 우군을 만난 기분이다.


<다시, 책으로>에서 인지신경학자 메리언 울프는 인간의 읽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중 하나로, 다른 종은 가지지 못한 능력이라고 한다.


책 읽기를 통해 아이들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가 생기고, 깊고 넓은 사고와 공감,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아이들의 새 학년을 응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